[경기=내외뉴스통신] 김현옥 기자 = “태양보다 냉철한 뭇 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그 똥,/짧지만,/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포기한 자/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중)

나전칠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우리나라 전통공예의 세계화에 한 획을 그은 김영준(60) 작가는 분명 궤도를 이탈한 ‘아웃라이어’(outlier)다. 10여 년 잘나가던 증권맨으로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내 일이 아니라는 판단에 사표를 던지고 찾은 곳이 친구가 운영하던 일산 가구공장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나전칠기를 하는 노인을 만난 것이 인연이 됐다. 오색찬란한 빛을 내는 자개에 반해 국내 내로라하는 장인들을 찾아 다녔지만, 배움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었다. 사라져가는 전통의 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듯 한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미 나전칠기는 아파트 주거문화에 어울리지 않은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이사하면서 버려야 하는 품목 1순위가 나전칠기 가구였다. 디자인의 혁명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1995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미국 LA아트&디자인아카데미스쿨, 이탈리아 도무스아카데미 디자인 특별과정을 이수한 후 옻칠로 유명한 일본 가나자와대학에서 칠기 기법을 공부했다. ‘이쯤 하면 됐겠지’하고 강남에 전시장을 열었다 쫄딱 망하고 빈털터리가 됐다. 궁여지책으로 두 달 동안 택시운전을 하기도 했다.

이때 비로소 작품이 아닌 세상에 대해 알게 됐다. 자신만 고통 속에서 사는 줄 알았는데, 더한 사람들이 많은 걸 보고 다시 시작했다. 형님에게 종자돈을 빌려서 혼자 묵묵히 작업에 매진했다. 전통 가구에서 회화, 생활용품 등 예술품으로 눈을 돌려 옻칠정제, 칼라옻칠 특허도 땄다.

10년 꼬박 열정을 쏟아 부은 결과, 해외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2006년 유럽전시를 시작으로 2007년 프랑스 문화부장관 주선으로 파리 파크하얏트호텔밴덤에서 동양인 최초로 쇼케이스를 열었다. 처음엔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빌 게이츠가 작품을 구매해 간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2008년 유명세를 탄 빌게이츠 엑스박스, 나비 문양을 넣은 스티브 잡스 핸드폰 케이스 제작 후 세계 각국 유명인들로부터 주문이 이어졌다. 태국왕실, ‘더 히스토리오브 후’ 화장품 케이스부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시 만든 의자까지 포천작업장에서 오로지 작품에만 매달렸다.

호사다마라고 했다. 2015평창비엔날레에 전시한 ‘코스모스’ 작품이 뜻하지 않은 표절논란으로 송사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 작가는 “예술가 작품의 저작권자는 자연과 우주”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이후 무리한 작업으로 왼쪽 팔까지 마비되는 증상이 오면서 세상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려놓고자 마음먹었다. 지인의 소개로 올 3월부터 양평군 옥천면에 작은 하우스 갤러리를 마련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주택을 개조해서 작품을 비치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흠이다. 20여 년간 앞만 보고 살아왔다면 이제는 지역사회 인재들을 키우고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더 커졌다.

김영준 작가는 “남들이 가지 않는 ‘험난한 꽃길’이 내게 주어진 삶의 궤도라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면서 “초기 초충도 작품을 아끼는 것도 ‘작은 풀과 벌레에 우주가 담겨 있다’는 나름의 철학을 오롯이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작가는 또 “자개는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지극히 동양적인 예술”이라며 “가녀린 날개로 천근만근 빗방울을 털어내며 가는 한 마리 나비처럼, 남은 생을 양평에서 이웃과 함께 나누고 비우면서 가벼이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영준 작가는 '2018평창동계올림픽 초대개인전' 강릉과 서울 동시개최, 중국 알리바바 대표 마윈 연회장 전시를 비롯, 강화도 전등사, 전주 한옥마을 전시 등 최근 국내외 크고 작은 전시회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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