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3년 7월 13일. 더운 여름날 저녁. 종로 탑골공원 뒤편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집에 사람들이 모였다. 이른바 18세기 박지원과 친박연대. ‘백탑파’로 불린 무리들이다. 조폭이 아니다. 그 시절 ‘386세대’이자 ‘지식인 밴드’다.

백탑은 탑골공원에 있던 원각사지 10층 석탑. 조선시대 한양의 랜드마크다. 멀리서 보면 하얗게 빛났다. 백탑파는 백수 시절의 연암과 그의 벗들이 이 근처에서 주로 살았기 때문에 생긴 명칭. 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모였다. 담헌 홍대용은 고문, 연암은 백탑파의 수장이었다. 연암의 집은 노아의 방주, 백탑은 ‘방외지사(方外志士)’들의 해방구였다.

그날 연암의 집에는 참판(지금의 차관)에 임명된 정조의 측근 서유린이 있었다. 미리 와 있던 손님 서유린을 내쫓다시피 한 이들은 이덕무·박제도(박제가의 형)·이희경·이희명·원유진 등이다. 연암과 어울려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

한양 도성에 통금이 있던 시절. 한밤중인 12시 30분. 통행금지 시간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술에 취해 하릴없이 종로 밤거리를 거닌다. ‘2차’도 하고. 술도 깰 겸 다른 이의 집에 들러 차도 마신다. 종각을 지나 수표교까지 쏘다녔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떼를 지어 다닌 게 영락없이 조폭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백탑파의 주 무대 탑골공원은 나중에 3.1독립 운동의 발상지가 되었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갔다.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 탑골공원은 지금 쓸쓸한 노인들과 비둘기들만 배회하는 적막한 공원으로 방치되어 있다.

■ 술에 취해 종로 주변을 거닐고 쓴 글

이 날 행적을 적은 연암의〈취답운종교기(醉踏雲從橋記)〉에는 연암과 벗들이 한여름 밤 종로에서 ‘호백(胡白)’이라고 부르는 개를 마주친 일이 나온다. 이 개는 ‘몽골리안 방카르’ 견종으로 보인다. ‘몽골리안 방카르’의 선조는 티베트에서 승려를 보호하고 양을 지키는 역할을 한 티베탄 마스티프다. 중국에서는 이 개를 사자견 ‘짱오’라고 부른다. 사자견은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개로 손꼽히며 중국 부호들 사이에 수억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하지만 시진핑이 집권하면서 부패 척결을 통해 최근에는 그 폭등세가 진정됐다.

“이때 3경이 벌써 지나 오싹하여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길거리에 개들이 어지러이 짖어댄다. 큰 개 한 마리가 동쪽에서 다가왔는데 희고 수척했다. 여럿이 둘러앉아 쓰다듬으니, 꼬리를 흔들고 오랫동안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

그 개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손길을 받았다. 자기를 귀여워해 주는 드문 손길을 좋아했다. 녀석은 아마 영조 말엽 졸지에 귀양가거나, 풍비박산이 된 집안에서 키우던 유기견인 것 같다. 가로등도 없던 시절. 달빛 아래 여럿이 크고 마른 흰 개 한 마리를 ‘쓰담쓰담’하는 모습을 상상해보길. 그 와중에 연암은 이 개에 대한 유식함을 뽐낸다.

몽골이 원산지이고, 말처럼 크고 사나워 길들이기 어렵다는 것. 중국에 들어간 것은 작은 종자이고, 우리나라에 온 것은 더 작은 종자라는 것. 그래도 보통 개보다는 크다는 것. 이상한 것을 봐도 웬만해선 짖지 않으나 한 번 성질이 나면 으르렁거리며 위엄을 보인다는 것 등등.

이어 보통 이 개를 ‘호백’이라 하고, 그중에 작은 종자를 ‘발발이’라고 하는데 중국 윈난에서 나온 견종이라는 것. 길들이면 사람의 뜻을 곧잘 알아듣는다는 것. 또 목에 편지를 묶어주면 비록 멀더라도 반드시 전하고, 간혹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반드시 그 집의 물건을 물고 돌아와 증표로 삼는다는 것.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이야기한다.

■ 떠돌이 큰 개는 연암의 자화상

그런데 왜 그리 연암은 떠돌이 개에 대해 자세히 기술했을까? ‘호백’으로 불린 그 유기견은 덩치가 큰 만큼 많이 먹여야 했다. 일반 백성은 키울 엄두도 못 낸다. 주로 왕실이나 권세가에서 길렀을 것이다.

그 개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희고 큰 개’는 연암의 ‘메타포(metaphor)’다. 바로 세상에서 버림받은 서얼 출신이거나, 세상을 등진 연암과 그의 ‘백탑파’ 밴드다. 동병상련이다. 야위고 외로운 거리의 방랑자. 그래서 자신들과 신세가 비슷한 개를 보자 둘러싸고 쓰다듬어 주며 진한 애정을 나타낸 것 같다.

연암은 “이 개들은 비록 매우 굶주렸으나 불결한 것은 먹지 않는다. 매년 사신들을 따라 우리나라에 들어오지만, 대부분 굶어 죽으며 항상 혼자 다니면서 다른 개와 어울리지 못한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연암의 백탑파 가운데 이덕무가 가장 개를 좋아했던 모양이다. 이덕무는 개에게 ‘호백’(豪伯)이란 이름을 지어 줬다. 술김에 ‘심쿵’ 했나 보다. 호탕하고 멋진 녀석이라는 뜻. 애당초 연암이 말한 개의 품종 ‘호백’(胡白)은 오랑캐 땅에서 온 흰둥이라는 뜻이다. 이덕무는 ‘흰둥이 오랑캐’를 ‘걸출한 형님’으로 패러디하면서 세상을 비꼰다.

이덕무는 책만 읽는 바보라는 ‘간서치’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 다운 작명 센스다. 조선 선비들에게 ‘오랑캐’ 청나라는 어느덧 백탑파 실학자들이 추구한 북학, 곧 선진 문화의 상징이 됐다. 한편, 그 와중에 어느 틈엔가 개가 사라졌다. 이덕무는 몹시 슬픈 표정이 됐다. 그리고 동쪽을 향해 서서 흡사 오래된 친구를 부르듯 “호백아!” 하고 세 번이나 불렀다. 일행이 모두 한바탕 크게 웃었다. 이 소리에 길거리 다른 개들이 마구 시끄럽게 짖기 시작했다.

■ 연암이 열하에서 본 러시아 개와 사도세자가 그린 개의 정체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사도세자가 그렸다고 하는 두 점의 ‘개 그림’이 전한다. 하나는 강아지가 어미에게 달려가는 그림이다. 엄했던 아버지(영조)의 사랑을 받고 싶은 사도세자의 심정을 표현했다.

영조는 42살에야 겨우 얻은 사도세자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줬다. 아버지 영조의 눈에 벗어난 사도세자는 진정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나마 사도세자는 유일하게 자기 마음을 헤아려 반기는 개를 사랑했다.

그림 속 개를 잘 살펴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날렵하고 균형 잡힌 몸매와 쭉 뻗은 다리, 긴 얼굴과 긴 꼬리. 한눈에도 보통 개가 아니다. 사냥개 견종이다. 동북아에서 오랫동안 사냥개로 유명한 라이카 종을 개량한 보르조이 견종으로 보인다.

영·정조 시대를 그린 영화 <사도>에서는 혜경궁 홍씨(문근영 분)가 세자빈 시절, 사도세자(유아인 분)에게 결혼 선물로 받은 ‘아프간하운드’를 안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영화 속 소품이지만, 잘못된 고증 같다.

1762년 사도세자가 27세에 죽은 후 18년이 지났다. 연암 박지원은 1780년, 중국 열하로 가는 여정에서 말만큼 커다란 러시아 개를 봤다. 그 개는 호랑이나 표범과 싸워도 결코 지지 않는다고 묘사했다.

“아라사(러시아) 개는 높이가 거의 말 턱에 이르고, 몸뚱이 뼈대는 가늘고, 털은 짧고 날씬한 것이 우뚝 서면 여위기는 학 같아 보인다. 꼬리는 뱀같이 놀고 허리와 배는 훌쭉하게 가느다랗고, 귀로부터 주둥이까지는 한자나 되는데 모두가 입이다. 범과 표범이라도 쫓아가 죽인다고 한다”<열하일기, 만국진공기 중>

러시아 수렵견 중 가장 유명한 견종은 ‘보르조이’다. 늑대 사냥에 주로 쓰여 ‘러시아 울프 하운드’라고도 불린다. 기품 있는 외모와 우아한 동작, 아름다운 털을 가진 매력적인 견종이다. 행동이 빠르고 용맹스럽다. 의젓한 체격에 우아한 자태를 지녔다. 한마디로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폭풍 간지’난다

보르조이는 18세기 무렵부터 출현했다. 표트르 대제가 1721년에 세운 제정러시아 귀족들에게 가장 사랑받았다. 1780년 연암이 봤던 청 황제의 생일 선물로 보낸 개는 보르조이가 확실하다. 톨스토이도 보르조이를 그의 대표작 '전쟁과 평화'에 등장시켰다. 니콜라이 공작과 나타샤가 사냥개를 동원해 늑대 사냥하는 모습이 가히 환상적이라고 묘사했다. <사기>에서는 토끼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잡아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보르조이는 사냥개 대신 반려견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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