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한국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보다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듯하다. 북한 핵 문제는 ‘남북한 문제’가 아니라 북한과 미국 간의 문제라는 북한의 ‘허위 선전’이 우리 사회에서 보편적인 ‘일반인식’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북한은 자기들의 ‘선전’이 한국에서 그대로 먹히는 현상을 보면서 쾌재를 부른다. 최근  대남정세를 ‘앙양기’로 밝히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북한이 주장하는 ‘한국사회=앙양기’는 혁명전략에서 특정한 전술적 ‘시기’를 규정하는 용어이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북한이 의도하는 대로 한국사회가 움직여주고 있고 그들이 한국사회에서 이루고자 하는 혁명전략을 실현하는데 더없이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돌이킬 수 없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한국사회의 지배적인 담론이자 정서였는 데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이 그 자리를 꿰 찾을 뿐 아니라 북한의 대남전략 목적을 실현하는데 최적의 상태를 낳고 있다. 토마스 쿤의 말을 빌리자면 한반도 문제를 규정하는 주류 담론과 시각의 ‘패러다임 전환’이 이룩된 것이다. 

  북한은 한국사회의 주류 담론이 자기들이 의도한 대로 전환되자 이에 한껏 고무되어 한국의 정치, 경제, 외교, 국방, 사회 모든 분야의 핵심 쟁점을 빼놓지 않고 간섭하는 논평과 해설, 선전 선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신들이 의도한 대로 움직여 줄 땐 찬사와 고무 추동을, 입맛에 맞지 않을 땐 거침없는 독설과 저주를 쏟아내고 있다. 최소한 북한 언론매체에서는 한국이 마치 북한의 ‘속국’인 양 다루어지고 있다. 한국정부와 시민이 북한의 ‘통치대상’으로 전락 된 느낌이 들 정도다. 

  왜 이렇게 되었으며 북한의 이런 오만과 자만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들 말대로 표현하자면 핵무기고도화와 정상회담 전략을 통해 “세계 최강대국도 쩔쩔 매개하며, 세계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위대한 원수님의 탁월한 능력”을 전지전능한 신적 권위로 믿는 ‘북한적 특수신념’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제 시계는 아니 지만 지구 종말을 경고하는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가 올 초 ‘운명의 날’ 2분 전으로 조정되는데 북한 핵 개발이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최대의 ‘적국’인 미국과 정상회담까지 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됐을 것이고 이를 면밀하게 계산하여 정세를 규정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현안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짧은 기간에 신속하게 진행된 배경에는 한국의 대북 접근방법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한국 안보정책의 핵심이고, 한국은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밝혔듯이 60개에서 100개로 추정되는 북한 핵의 직접적인 위협대상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북 핵 문제의 핵심당사자이다. 그럼 에도 북한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협박’에 유연한 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북한과 국내 언론 및 국민에게 잘못된 신호를 준 결과, 초래된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 이런 담론경쟁의 패착은 북한 핵의 ‘위협’ 평가보다는 ‘개발 목적’ 평가에 치중한 결과와 대응책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북한의 핵을 “체제 생존을 위한 안전장치,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대응한 안보 및 국방 수단, 북미 관계개선을 위한 협상 카드”라는 핵 개발 ‘목적’에 치우친 평가는 외교적 협상을 ‘해결수단’으로 한정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런 평가에 기초한 대북정책은 북 핵 문제 초기에는 합리적이었을지 모르지만, 북한이 ‘핵 포기를 바라는 것은 바닷물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다’라고 조롱하고 나섰던 올해 2월 이후부터는 ‘실질적 보유’로 전환된 북한 핵의 ‘위협’과 ‘위험’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다시 준비되고 실행됐어야 했다. 

  이런 정책적 사유를 감안하지 않은 채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이 일방적으로 추진될 경우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문제점은 무엇일까? 북한이 갑자기 ‘과거 국면’으로 회귀할 가능성과 이로 인한 한국사회의 심각한 혼란과 정책적 실패의 치명성이다. 북한은 국제제재를 자력으로 해결한 경험이 없다. 정책의 관성과 선거정권의 유한성으로 인해 북한 핵 무력에 대한 최적 대응은 또 다른 ‘실기’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한국이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에 ‘올인’ 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 지휘통제시스템’을 완성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된다는 점이다. 북한이 한국은 핵무기 사용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은 약소국이 핵을 몰래 숨기면서 만드는 과정만큼이나 어려운 ‘핵무기 지휘통제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한 술책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상대방의 정찰자산 운용을 제한하는데 진력한 속내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남북관계 진전’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북한은 ‘완벽한’ 핵무기 보유국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한국사회의 여론을 북한에 유리하게 ‘틀 짓기’하는 수법은 고강도 군사도발로부터 회담과 교류협력, 테러감행, 선전선동에 이르기까지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의 정세전환 수법은 ‘비상한 시기에는 비상한 일을 비상한 방법으로 비상하게 해야 한다’는 고착화 된 습성에서 나온다. 한국사회가 미래전망 없이 ‘돌이킬 수 없는 남북관계 진전’이라는 북한 담론전환 수법에 속절없이 무방비 상태로 끌려다녀서는 안 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병순 안보통일연구회 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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