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셋 이상 모이면 가장 즐겨 한다는 화투.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이 즐기는 ‘완소 게임’은 바로 화투가 아닐까? 손님이 왔을 때 분위기가 좀 어색하다 싶으면, 바로 카키색 미제 군용 담요를 깔면 된다.

화투는 조선말부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일제 강점기 널리 보급됐다. 원래 포르투갈의 ‘카르타(Carta)’라는 일종의 딱지놀이가 일본으로 전해져 ‘하나 후다(花札:화찰)’라는 놀이로 되었다가 변형된 것. 화투가 대중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여러 가지다. 무엇보다 세상 이치가 담겨있다. 경쟁과 물신주의를 화투 규칙으로 담아낸다.

상대방의 패를 눈치 빠르게 짐작하여 게임을 운용하는 고도의 심리전도 중요하다. 또 피(홑껍데기)만 가지고도 많은 점수를 내어 광을 이기는 반전의 미학까지 갖췄다. 화투 용어 또한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정말 재밌는 용어가 많다. 쪽, 뻑, 쌌다, 나가리 등등···팍팍한 삶은 점점 로또와 도박이 되고 있다. 너도 나도 노름 박사 ‘타짜’에 가깝다. ‘화투 공화국’ 대한민국은 이렇게 시작했다.

화투 놀이 중 고스톱을 ‘고도리’라고도​ 한다. 일본 말로 고도리란 ‘다섯 마리 새​’를 의미한다. 그런데 그 다섯 마리 새는 어떤 새일까? 2월의 새는 휘파람새다. 봄의 전령사로 불린다. 일본에서는 2월이면 따뜻해진다.

보통 휘파람새 울음소리가 들리면 봄이 왔다는 것을 느끼므로 ‘매화나무의 휘파람새(우구이스)’라는 말는 말이 있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대에는 휘파람새 사육이 많았다.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은 인간의 욕망 때문이었다.

4월 문양 흑싸리가 아니라 등나무 꽃이다. 대개 흑싸리로 이야기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빗자루 재료로 활용되는 싸리나무는 녹색이다. 4월의 새는 종달새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일본에서 대중적인 두견새라고 봐야 한다. 8월의 억새 위로 날아가는 3마리 새는 바로 기러기다.​

화투장에는 이 밖에도 다양한 동식물이 있다. 1월에는 소나무와 학(두루미), 3월엔 벚꽃, 5월 문양은 난이 아니라 붓꽃(창포)이다. 난은 습지와는 상극 관계다. 붓꽃은 보라색 꽃이 피는 습지의 관상식물이다. 6월엔 모란, 7월엔 홍싸리와 멧돼지, ​9월엔 국화, 10월엔 단풍과 사슴, 11월엔 오동나무와 봉황, 12월엔 버드나무와 제비, 개구리가 등장한다.

■ 기러기가 8월에 나타난 이유

기러기는 겨울철새다. 음력 8월 추석 한가위 즈음이면 선발대 새들이 움직인다. 제비와 같은 여름 철새들은 강남으로 내려가고, 겨울 철새들이 남쪽으로 내려온다. 인간의 역사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부터 지속된 자연의 섭리다.

기러기는 신라 문무왕이 축조한 안압지(雁鴨池)란 이름에도 등장한다. 기러기와 오리가 드나드는 연못이란 뜻. 날아가던 세 번째 기러기의 왼쪽 날개를 맞혔다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도 유명하다.

조선 태종의 ‘최애’ 취미는 매사냥이었다. 주로 고니나 기러기 같은 대물만을 잡아 왕궁 제사에 쓰기도 했다. 태종 때는 나라에 산 기러기를 잡아 바치는 일을 맡아 보던 ‘생안간’(進上 生雁干)이라는 별정직 관리까지 뒀다.

기러기는 쇠기러기·큰 기러기·흰기러기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주둥이가 넙죽하고 물갈퀴가 달린 것은 오리와 비슷하나 목이 길고, 덩치는 오리보다 배 이상 크다. 큰 기러기는 시베리아의 습지에서 봄에서 여름을 나고, 9월께 기온이 내려가면 남하하기 시작한다. 두 다리를 바짝 뒤로 모으고 높은 하늘을 줄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행렬은 낭만적인 정취가 가득 있어 보인다.

일본에서도 음력 8월은 ‘오츠키미(달맞이)’의 계절이다. 음력 8월에 기러기를 기억하는 것은 처음 찾아오는 첫 겨울 철새이기 때문. 백로(白露)에 기러기가 내려오고, 우수(雨水)에 북으로 다시 올라간다고 했다. 매화도 처음 피는 매화꽃이 신문과 방송에 나온다. 눈도 첫눈을 기다리듯이 겨울철새 선발대도 늘 반갑게 기억되었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많이 불렀던 일본 동요 속에도 기러기가 나온다. ‘쎄쎄쎄~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엄마 계신 곳에 엽서 한 장 써 주세요.’ 이 노래 속 기러기도 한 겨울보다는 가을철 이동 시기 기러기를 노래한다. 영화 <아름다운 비행>에서도 기러기들이 이동을 하는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아동 영화로 ‘강추’

거위(goose)는 기러기의 변종이다. 오래전부터 가금으로 길러졌다. 야생 기러기는 ‘wild goose’라고 한다. 서양 동화에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의 꿈’은 사라진지 오래다. 가축화된 거위는 목구멍에 깔때기가 끼워져 억지로 사료를 먹고, 비대해진 병든 간은 인간의 식탁에 ‘푸아그라’로 오른다.

■ 풍년 길조 흰기러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우리 민족은 흰색 동물의 출현을 상서로운 일로 여겼다. 때문에 흰 동물이 출현하면 임금에게 진상한 기록이 많이 남아 있다. 신라 때는 임금이 흰 꿩을 바친 관리에게 곡식을 하사했고, 백제 때도 흰 사슴을 바치자 역시 곡식을 하사했다.

흰 사슴이 뛰놀았다는 한라산 백록담 설화는 사실이다. 고려 시대에도 흰 꿩, 흰 까치, 흰 황새, 흰 노루 등을 바쳤다. 이러한 인식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조선 초 명나라 사신 윤봉은 세종에게 흰기러기를 선물로 받았다. 1482년(성종13) 2월, 경기감사 손순효는 성종에게 흰기러기를 바쳤다. 사슴과 원숭이, 새 등 여러 애완동물을 좋아했던 성종은 기러기나 노루는 별로였던 것 같다. 그전에도 진상 받은 흰 노루를 깊은 산에 다시 놓아주라고 명한 일이 있었다.

성종은 흰기러기를 월산 대군 이정에게 선물했다. 그런데 한 달 후 다시 흰기러기를 한 군관이 진상했다. 성종은 그냥 놓아주고 싶어도 다른 사람에게 잡힐까 염려해 “경복궁 경회루 연못에 두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경회루에는 야생 기러기와 오리 등을 관상용으로 길렀다.

한편 1501년 11월 25일, 연산군은 느닷없이 ‘느시(너새)’ 한 쌍을 산 채로 진상하게 했다. 그 이유와 쓰임새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하고 있지 않다. 1504년에는 한꺼번에 살아있는 기러기 300마리를 진상하도록 명했다. 연산군이 그 많은 기러기를 어디에 쓰려고 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하지만 연산군의 행적을 살펴보면, 편하게 궁궐에 앉아 매사냥 장면을 구경하거나 실전 훈련용으로 쓴듯하다. 이에 앞서 연산군은 재위 3년 되던 1497년 4월 5일, 참새 잡는 사람들을 9급 공무원에 특채했다. 참새는 궁궐에서 연산이 키우던 사냥매의 먹이로 줬다. 황새는 연산군의 목숨을 노린 자객으로 오인받았다. 하마터면 일찌감치 멸종될 뻔했다.

조선시대 기러기는 우박에 맞아 떼죽음을 맞기도 했다. 1418년 9월 세종이 즉위하던 해, 경기도 일부와 함흥에 크기가 마치 주먹만 한 우박이 내렸다. 이를 맞은 오리와 기러기들은 모두 죽었다. 1551년(명종6) 9월 11일, 천둥 번개가 치고 우박이 내려 기러기까지 죽었다.

조정 대신들도 우박에 참새가 죽은 적은 종종 있었지만, 기러기가 맞아떨어진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왕실 잔치에 음악 등을 금하고, 재난을 두려워하는 뜻을 보이자고 건의했다. 그러나 명종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우박에 기러기는 맞아 죽는 일은 이후에도 종종 일어났다. 1694년(숙종20)은 8월 15일에는 황해도에, 1719년(숙종45) 8월 27일에는 평안도에 우박이 내려 큰 피해를 입었다. 큰 것은 거위 알 만하고 작은 것은 비둘기 알 만했다. 들에 쌓인 우박도 밤이 지나도록 녹지 않았다.

물오리나 기러기는 물론 참새 따위의 작은 새들이 숱하게 우박에 맞아 죽었다. 여염집의 기와·동이·항아리 등도 깨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곡식 또한 성한 것이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였던 영조 때까지는 기상이변이 잦았다.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사이먼&가펑클의 불멸의 팝송 ‘철새는 날아가고’(El Condor Pasa)는 남미 페루 민요에 가사를 붙였다. 우리나라 3대 겨울철새 절경을 꼽으라면 금강 하구의 가창오리 떼, 철원과 순천의 두루미 떼, 서산 천수만 기러기 떼가 아닐까.

이곳에서는 전 세계 탐조인이 꼭 보고 싶어 하는 절대지존의 철새 군무를 볼 수 있다. 한 마리, 한 마리의 아름다운 자태를 보는 것도 즐거움이고,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군무를 펼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자연의 장관이다.

기러기는 전통 혼례에서도 등장한다.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장가갈 때 기러기 한 쌍을 앞장세워 갔다. 이것을 목안(木雁)이라 한다. 신랑이 신부집에 기러기를 가지고 가는 의식은 왕실에서도 행한 풍습이었다.

전통 혼례 때 사용되는 기러기를 원앙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원앙은 일처다부제다. 암컷은 수컷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라도 갈아치운다. 즉 더 훌륭하고 힘센 수컷이 있으면, 더 나은 새끼를 얻기 위해 언제든지 짝을 버리는 것이 원앙의 진실이다. 원앙은 기러기처럼 상징적인 의미는 가지지 못한다.

우리 속담에 혼자된 사람을 ‘짝 잃은 외기러기’라는 말이 있다. 기러기는 한번 짝이 되면, 평생 그 짝과 지낸다. 만약 수컷이나 암컷 중 한 마리가 죽게 되면, 남은 기러기는 죽을 때까지 혼자 살아간다고 한다. 이러한 기러기의 습성 때문에 혼인에 기러기가 등장하는 것. 평생 동안 변치 말고 함께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기러기가 가면, 제비가 온다’는 속담처럼 기러기는 일정한 계절에 맞춰 이동을 한다. <춘향전> 같은 옛 문학 작품에서도 춘향은 곧잘 기러기를 빗대어, 한양 간 이몽룡 소식을 전해 달라곤 했다. 이 때문에 기러기는 이별이나 쓸쓸함의 상징으로도 많이 나타난다.

MB 정권의 4대강 사업을 전후로 모래톱과 갈대밭이 대거 사라졌다. 기러기와 고니, 겨울 철새의 먹이가 되는 수생식물도 씨가 말랐다. 빈들에 떨어진 곡식 낟알을 먹는 겨울 철새들은 볏짚을 모두 말아 가축 사료로 쓰는 바람에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황지우 시인의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라는 시가 생각난다. 어릴 적 동요 속 기러기는 점점 친숙하지 않게 되었다.

4대강 사업이 생태적 단절이라면, 엄마와 함께 유학 간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기 위해 혼자 남은 ‘기러기 아빠’들은 고독과 싸운다. 요즘 기러기는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정말 울고 다닐지 모를 일이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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