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니를 아냐고요? 내가 아는 타짜 중에 최고였어요” 전설적인 영화 <타짜>는 정마담(김혜수 분)이 고니(조승우 분)을 기억 속에 소환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런데 화투에 나오는 새 종류에 고니는 없다. 휘파람새, 두견새, 기러기는 고도리다. 이 밖에 두루미, 봉황, 제비가 등장한다. 영화 속 ‘고니’는 동명의 타짜 만화 1부의 주인공 ‘김곤’의 별명이다.

고니는 오릿과에 속하는 대형 겨울 철새다. 보통 기러기 거위 오리 고니 두루미 왜가리 황새 백로 등을 구별하기 힘들다. 두루미는 바로 학이다. 황새목에는 황새 왜가리 백로 해오라기 등이 속한다. 원래 백로의 순우리말은 해오라기다. 흰 오리라는 뜻. 요즘은 백로와 해오라기가 다른 새를 일컫는 이름이 됐다. 백로는 하얀 깃털로 덮여 있고, 왜가리는 전반적으로 회색이다.

오리·기러기·고니는 기러기목이다. 고니는 오리나 기러기에 비해 몸집이 크고 몸이 길다. 기러기는 철 따라 이동하며 야생의 삶을 산다. 인간세계의 기러기 아빠처럼 혼자 떨어져 살지 않고 가족과 함께 ‘V자’ 편대를 이루며 난다.

고니, 즉 백조(swan)는 순결의 색인 하얀 새(白鳥)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큰 덩치와 하얀 몸을 이끌고 우아하게 물 위를 유영한다. 때문에 작품마다 고상한 새로 나온다.

서양 동화와 음악에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새로 여긴다.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안데르센 동화 ‘백조 왕자’와 ‘미운 오리 새끼’,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에서 ‘백조’, 슈베르트 ‘백조의 노래’ 등등. 여름철 대표 별자리도 ‘백조자리’(Cygnus)다. 과연 오리 종류 중 왕과 왕비가 아닐까?

■ 뭣이라? 고니가 행운의 백조라고?

고니는 가을이 되면 추위를 피해 한반도 등에서 겨울을 난다. 봄이 되면 다시 북상해 캄차카반도에서 시베리아에 걸친 툰드라 지대의 먹이가 풍부한 환경에서 번식한다.

오리 종류 중 고니는 엄청난 행운의 새다. 인간에게 길들여진 기러기는 거위로 개량되어 가축이 됐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꿈은 사라진지 오래다. 청둥오리나 가창오리 종류는 조류독감 때문에 오해받는다.

집오리(duck)와 거위는 철 따라 이동하는 고생을 면했지만, 그 대가는 참혹하다. 집오리는 독성 물질인 유황을 먹고 유황오리가 되어 식탁에 오른다.

거위와 오리는 산 채로 털까지 뽑혀 이불과 옷의 재료로 쓰인다. 백조처럼 타고난 팔자가 편한 새가 아니라면, 차라리 인간에게 길들여지지 말았어야 했다. 고니는 진정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흙속의 진주였다.

<삼국사기>에는 지방에서 ‘백조’(白鳥)를 공물로 바친 기록이 보인다. 삼국시대 ‘백조’는 단어 그대로 황새나 백로, 두루미 등 ‘하얀 새’ 종류를 통칭할 수 있다. 그때만 해도 정확하게 ‘고니’를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자로는 백조보다 고니 곡(鵠) 자를 많이 쓴다. ‘곡곡’ 운다고 한자말도 곡(鵠)이다. 꾀꼬리나 뜸부기 혹은 소쩍새도 소리를 따서 새의 이름으로 삼는 일이 있으니 그러하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 시절 백령도는 곡도(鵠島), 곧 고니 섬이었다. 백령도는 온갖 철새들의 낙원이었다. 특히 고니가 많이 살았다. 나중에 고려 태조 왕건이 하얀 고니 깃에 뒤덮이는 섬이라 하여 백령(白翎)이라 하였을 터.

<조선왕조실록>에서 자주 인용되는 ‘홍곡(鴻鵠)’ 즉, 기러기와 고니는 큰 뜻을 품을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기러기와 고니(백조)의 크기가 다른 새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다.

■ 조선시대 종묘의 제사에 오르던 귀한 고니

조선시대에 고니는 학과 함께 귀한 동물로 취급했다. 왕실 제사에 바칠 정도였다. 세종대왕은 백마와 고니를 잡아 하늘에 제사 지내는 것은 북방 민족의 오랜 풍습으로 여겼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흥미로운 것은 몽골 위쪽인 바이칼 호수 주변에서도 ‘백조 처녀’ 신화가 내려온다는 점. 설화는 사냥꾼이 호수 위로 내려앉는 백조 세 마리를 발견하고 뒤따라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백조는 천신의 딸. 알타이 문명권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설화인데, 백조를 시조로 하는 부랴트족을 원조로 꼽는다.

부랴트족은 천신을 숭배하며 백조를 숭상하는 종족이었다. 현재 방영 중인 tvN 월화 드라마 <계룡선녀전>의 문화 원형이다.

<실록>에서 백조는 ‘하늘을 나는 거위’라는 뜻으로 천아(天鵝)라고 적었다. 중국에서는 천아(天鵝)와 백조를 함께 쓴다. 고니는 천아(天鵝)이고 백조는 고니와 백로처럼 흰 새를 통칭한다. 일본에서 고니는 백조라고 부른다.

매사냥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도 성행했다. 고려 충렬왕은 원나라에서 파견한 관리 ‘다루가치’등과 함께 매사냥에 나섰다. 충렬왕은 어떤 때는 두루미나 고니의 등과 배의 털을 뜯어서 날려 놓고, 매를 놓아 산 채로 쪼아 먹게 한 다음 그것을 보고 즐기기까지 했다.

매사냥 마니아였던 태종은 수시로 한강에 나가 매사냥을 즐겼다. 주로 고니와 기러기 등 대물만을 노렸다. 동호대교 북단이 태종의 주요 사냥 포인트였다. 태종은 잡은 고니를 종묘에서 쓸 제물로 올리고, 왕실에서 음식으로도 먹었다. 요즘도 팔당 양수리 두물머리에는 일부 고니 떼가 찾아온다.

고니는 덩치가 7kg까지 나가는 비교적 큰 새다. 고니를 잡기 위해서는 송골매 ‘해동청’이 필요했다. 매보다 훨씬 덩치가 훨씬 큰 고니를 어떻게 잡았을까? 송골매는 사냥감을 낚아채 일격에 목뼈를 부러트려 즉사 시킨다. ‘해동청’은 참매 보다 힘이 세고 사냥 능력을 최고로 쳤다. 조선 초기 명나라에서는 사냥개와 해동청을 수시로 요구했다.

매의 사냥 훈련과 종묘 제물로 쓸 고니나 기러기는 정기적으로 조달했다. 공물로 기러기를 잡아 바치는 ‘생안간’(生雁干), 고니를 잡는 ‘천아주인’(天鵝主人)이라 해서 사람을 따로 지정했다.

태종 때는 계약직 공무원 신분으로 취급했다. 연산군 시절에는 참새 사냥꾼을 9급 공무원에 특채했다. 잡은 참새는 궁궐에서 많이 키우던 사냥매의 먹이로 줬다.

때로는 고니를 공물로 바쳐야 하는 백성의 어려움을 걱정하는 상소가 올라가기도 했다. 고니는 주로 전라도와 황해도의 진상품이었다. 아마 강과 갯벌이 만나는 습지가 고니의 주서식지였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 인조 시절부터 왕실 제사에 고니 대신 기러기로 대체했다.

■ 모두 다 사랑하리...사슴, 송골매, 원숭이, 낙타, 고니 등 모든 동물을 사랑한 성종

조선 역대 왕 중에 동물과 관련한 가장 많은 일화를 남긴 임금은 성종이다. 그다음은 성종의 아들 연산군이다. 실제로 성종 연간에는 다양한 동물이 등장한다.

사실 성종의 동물 사랑은 유별날 정도였다. 성종이 기른 동물들을 꼽아보면, 거의 동물원 수준이다. 앵무새, 고니, 송골매, 해동청 매, 공작, 원숭이, 사슴 등 수많은 동물을 키웠다. 그러나 ‘낙타’만큼은 중국에서 수입하는데 실패했다.

성종은 일본에서 보내온 원숭이에게도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원숭이가 겨울을 맞이하자 추울 것을 염려해 흙집을 지어주고 사슴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히려다 대신들과 논란을 벌였다. 또 많은 돈을 들여 중국에서 낙타를 사려다가 쓸데없는 짐승을 사려고 돈을 쓴다는 대신들의 반대에 뜻을 굽힌 적도 있다.

성종은 사슴을 궁궐에서 길렀고, 애완용으로 새를 좋아하기도 했다.

1487년(성종18) 9월 22일, 느닷없이 성종은 전국에 ‘새 진상 명령’을 내린다. 여러 가지 새를 암수 한 쌍씩 바치라는 것. 비서실 승정원에서는 “모든 새를 빠짐없이 잡아 바치게 하면, 백성들의 폐단이 적지 않을 것”이라면서 걱정한다.

그러자 성종은 “내가 새를 좋아해서 애완동물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고 슬그머니 딴소리를 한다. 그리곤 “근래 화법(畫法)이 참다운 모양을 잃어 매우 서로 같지 않았으므로 본떠 그리려는 것이다. 백성의 피해가 염려되면, 다만 잡는 대로 바치게 하라.”고 능청을 피운다.

풀이하면 이렇다. 전국에 새 진상 명령을 내린 것은 조류 백과사전 그림에 쓰려는 것이다. 제각각이라 그렇다. 내가 좋아해서 바치라고 한 게 아니니 오해하지 마라. 또 잡기 어려운 것은 굳이 바칠 것 없다는 것.

그러나 애완동물에 관한 한 성종의 말 바꾸기는 한두 번이 아니다. 바로 1년 전 1486년(성종17) 9월, 명나라에서 낙타를 사 오라고 할 때도 그렇다. 군수물자 수송용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원숭이 역시 성종은 “외국(유구국)에서 선물로 보낸 것을 얼어 죽게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라고 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안타깝게 어떤 종류, 얼마만큼의 새가 궁궐로 들어왔는지는 기록에 없다. 아마 조선 8도에서는 때 아닌 새 잡기 경진대회가 벌어졌을 터.

그해 11월 6일 성종은 경상도 관찰사에게 “지금 올린 각종 물새 종류는 다시 올리지 말고, 다만 붉은 부리 고니(백조)만 산 채로 잡아 올리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역시 성종은 애완동물에 관한 한 일가견이 있었다. 성종이 탐냈던 ‘붉은 부리 고니’는 지금도 희귀종에 속한다.

이에 앞서 1442년(세종24) 3월 세종은 강원도 관찰사에게 진기한 새 들을 바치게 한 적이 있다. 세종이 총애했던 막내 영응대군에게 하늘다람쥐와 독수리 새끼 등과 같이 주려던 것이었다. 당시 ‘아홉 살 인생’ 어린 왕자님이 어떤 새를 키웠을까 궁금하다.

■ 에도막부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탐낸 고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나라에서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경제가 윤택해지고 번영을 구가하면, 그 나라의 지배 상류층들은 사치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덩달아 발전하는게 있으니, 바로 애완동물이었다. 이미 당나라 양귀비 시절부터 벌써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 목걸이가 있었을 정도다.

조선 초기부터 일본은 앵무새나 원숭이 등을 보내는 대신 두루미, 고니, 까치 등을 무역품으로 거래했다. 특히 에도막부 시절 3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미츠(德川家光)는 사치가 심했다. 1623년부터 1651년까지 쇼군에 재위했는데, 그 무렵 막부와 쇼군의 위세는 절정에 달했다. 조선으로 치면 인종(1623~1649)과 효종(1649~1659) 재위기와 비슷한 시기였다.

그는 진기한 동물과 식물 등을 많이 길렀다. 기록에는 1640년(인조18) 조선에서 좋은 말과 두루미, 사냥매, 꾀꼬리를 구해갔다. 1645년(인조23) 3월 7일에는 무역을 통해 사고 싶은 동식물 목록을 보냈다.

두루미 한 쌍, 꾀꼬리, 백조(白鳥) 20마리와 청모란·황모란·흑모란·백모란·적모란 등 기화 이초(奇花異草)를 원했다. 조정에서는 “이른바 ‘백조’(白鳥)라는 게 한 종류만이 아니니, 어떤 백조를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모란은 작약과의 식물로 우리나라에선 예로부터 부귀의 상징으로 쓰였다. 선덕여왕의 일화에 등장하는 식물이기도 하다. 선덕여왕이 공주 시절(당태종 시기), 당나라에서 보낸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지 않겠느냐”고 추측했다. 그런데 동봉한 모란 씨를 심었더니 실제로 향기 없는 꽃이었다는 일화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흔히 알려진(?) 화투의 6월 그림에서 볼 수 있듯, 일본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모란과 나비를 함께 그렸다. 잘 모르는 사람은 장미로 안다.

■ 한반도를 떠나 점점 일본으로 가는 고니

1649년(인조27) 4월 12일,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는 또다시 대마도주를 통해 두루미와 두루미 알, 고니, 흰색 원앙, 고슴도치 등을 구해갔다. 그 값은 조선에서 요구하는 대로 주겠다고 큰소리쳤다. 아마 두루미 알까지 원한 것은 부화를 시켜 새끼 때부터 애완동물로 삼기 위해서였을 것 같다.

그 해 7월 5일 효종 즉위한 직후에도 대마도주를 통한 일본의 동물 요청은 잇달았다. 그 무렵 쇼군 이에미츠가 새로 동물원을 만들어 진귀한 새와 짐승을 널리 모았기 때문. 매·개·비둘기·메추리·앵무·고슴도치·원앙·굴속에 사는 제비· 담비 등을 얻기를 원하니, 조정은 이를 허락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앵무새는 열대 조류다. 일본에서 구하기 더 쉬었을 터인데, 왜 굳이 조선에서 구해갔을까.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넷째 아들인 5대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은 유명한 ‘개 덕후’였다. 아버지의 애완동물 사랑의 유전자를 받아서 그런지 ‘개 쇼군’(이누쿠보)으로 불렸다.

과거 고니는 동북아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났다. 낙동강 하구에 많이 살던 고니는 우포늪과 주남저수지로 이주를 했다. 서산 천수만 간월호 고니 떼도 해마다 수가 줄고 있다. 그 중 한국이 싫은 고니는 아예 바다 건너 일본으로 갔다. 최근 일본엔 고니가 늘어나고 있다.

이미 상당수 두루미(학)도 우리나라를 버리고 일본으로 갔다. 4대강 사업 등 때문에 먹이가 없어지면서 굶어 죽을 위협에 처한 것이다. 이제 고니까지 전부 날아가 버리면 대한민국에는 진짜 별 볼 일없는 정치 철새만 남을 것 같다.

■ 검은 백조 ‘블랙스완’(Black swan)은 정말 있을까?

야생 백조는 줄어든 대신, 실업자 백수와 백조는 오히려 늘고 있다. 경제난이 지속한 탓이다. 백수(白手)는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빈털터리. 백수건달(白手乾達)의 줄임말이다. 빈손의 백수(白手)에 의미를 더해 남자는 백수, 여자는 백조로 표현한다.

그런데 검은 백조도 있다. 과거 서양 사람들은 백조는 모두 흰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믿음은 1790년 영국의 박물학자 존 레이섬에 의해 검은 백조가 발견되면서 깨졌다. 지구 남쪽 호주에 가면 온몸이 까만 ‘흑고니’가 야생에서 살고 있다.

서양 사람들에게 ‘검은 백조’는 엄청난 충격을 줬다. ‘블랙스완’은 이제 일반적인 상식에 대해 반대로 생각한다는 관용어로 쓰인다. ‘흑조 이론’이란 경제 용어도 생겼다. 2010년 나탈리 포트만 주연 <블랙 스완>이란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장르는 심리 스릴러. 무심코 일반적인 발레 영화인가 하고 봤다간 큰코다친다.

흑두루미, 흑비둘기도 상식과 발상의 전환을 깬다. 둘 다 천연기념물이다. 미국의 초음속 폭격기 ‘B-1B 랜서’(Lancer)는 ‘죽음의 백조’라는 별명을 얻었다. 동체 모습이 검다. 우리 주위에도 여기치 않게 검은 백조가 나올 수 있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비록 지금은 놀고 있지만, 언젠가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살지 모를 일이다.

실제 고니 새끼는 회색에 가까운 잿빛이다. 어른 고니가 되면, 희고 아름다운 백조로 변한다. 고니가 많이 찾아들면 좋은 세월이 된다고 한다. 그때가 오면, 이런 말이 다시 유행할지도. “고니를 아냐고요? 내가 아는 백수 중에 최고였어요”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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