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역사편찬원, 일본 와세다대 소장 '경복궁영건일기' 번역서 발간 예정
- 자료적 가치를 논의하는 전문가 심포지엄 추진
- 1월 29일 오후2-6시, 서울역사박물관 세미나실

[서울=내외뉴스통신] 강원순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이상배)은 경복궁 중건에 관한 유일본인 '경복궁중건일기'를 최초로 번역발간하고  자료적 가치를 논의하는 전문가 심포지엄을 내일(29일) 서울역사박물관 2층 세미나실에서 개최한다.

고종시대 경복궁 중건은 단순히 궁궐 하나를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궁궐 앞 광화문 일대에 ‘서울의 중심’ ‘나라의 중심’이라는 공간적 성격을 적극적으로 부여하며, 조선이라는 국가의 지향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경복궁 중건은 흥선대원군이 주도한 제도 정비와 정치 개혁의 일환이었으며,  ‘의정부 중수 - 삼군부 설치 - 육조거리 정비’로 이어지는 거대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세도정치기 이후 개혁정치를 추진했던 흥선대원군은 광화문 일대의 대대적인 공간 변화를 이끈 설계자였으며 개혁정치의 지향점이었던 ‘왕을 중심으로 한 조선’ 은 경복궁 앞 공간에 그대로 투영됐고 흥선대원군은 광화문 일대에 국가의 주요관서를 배치시켜 도성의 중심, 나라의 중심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번에 공개된 '경복궁영건일기' (총9책)는 고종시대 흥선대원군 주도로 진행된 경복궁 중건의 전체 과정을 보여주는 최초의 사료이자, 중건의 구체적인 실상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이다.

경복궁 중건이 역사적․도시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건과정 전체 내용을 담고 있는 자료는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등 연대기 자료에서 관련내용을 취합하거나, 파편화된 자료에서 일부 정보만을 취해왔을 뿐이다.

그러나 '경복궁영건일기'는 1865년 - 1868년까지 공사의 과정과 내용을 날짜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총9책의 완질형태로 남아 기존 자료와 비교했을 때 그 가치가 높다.

또한 공사가 진행된 1860년대 시점의 경복궁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1880-1900년대 경복궁 관련 도면과 자료들에서 알 수 없었던 정보도 파악할 수 있다.

'경복궁영건일기'에는 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에 남아 있지 않은 국왕의 전교나 신하의 계사 내용도 상당수 수록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재목과 비용을 마련하는 어려움, 돈을 들고 도망가는 사건들도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경복궁 중건에 대해 논의하는 국왕과 대신, 원납전 징수를 둘러싼 중앙과 지방 관료, 공사에 동원된 일반민들과 주변인들 등 경복궁 중건에 관여한 모든 사람의 다양한 양상을 담고 있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지난해 6월 '경복궁영건일기' 가 일본 와세다대학에 소장된 사실을 확인하고 번역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번 심포지엄은 그 일환으로 자료가치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첫 번째 자리이다.

서울사료총서 심포지엄은 김동욱(경기대 명예교수), 홍순민(명지대 교수) 등 궁궐 전문가가 토론자로 참여해, 그 어느 때보다 깊이 있는 논의의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천명’으로 합리화된 중건공사는 더위와 전염병, 심지어 병인양오에도 강행되었다. 이는 병인양요로 인해 공사가 지체되었을 것이라는 기존에 알려진 사실과 다르다. 또한 중건 과정에서 궁궐 주변의 대저택을 매입 혹은 원납 받은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궁궐 안팎의 물리적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경복궁 수문‧수도‧도회은구의 모습을 비롯해, 조선 초 경복궁과 어떻게 다르게 지어졌는지, 연길당과 응지당이 강녕전의 동서 퇴선간이었다는 점 등이 '경복궁영건일기'를 통해 발견된 사실이다.

원납전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 중수를 위해 받아들인 기부금으로 ‘원해서 납부하는 돈’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징수 과정에서 많은 민폐를 유발했기 때문에 ‘원통하게 납부하는 돈’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다.

중앙에서는 항상 원납전을 절대 강요하지 말고 자원에 의해 받아야한다고 공문을 보내지만, 이런한 문구 뒤에는 늘 각 군현에서 원납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 현실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내용으로 이어졌다.

중앙으로 원납전을 상납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폐해도 많았다. 서리배가 원납전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것은 물론, 모금된 원납전을 가지고 올라간 사람이 돈을 떼어 먹는 경우도 발생했다. 홍원현의 원납전 상납을 맡은 박동인은 배가 부서져 돈이 없어졌다고 거짓보고를 하고 개인적으로 흥청망청 써버린 뒤 발각되기도 했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경복궁과 광화문 일대의 공간적 상징성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현재 진행형의 역사이다. 따라서 고종시대 경복궁 중건에 관한 역사상은 오늘 그리고 미래의 광화문 일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했다.

한편 서울역사편찬원은 올해 6월 '경복궁영건일기' 번역서 발간에 맞추어 ‘경복궁 중건,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란 주제로 제18회 서울역사학술대회를 예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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