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손들이 '조상공양=차례=제사'를 지내야하는 진짜 이유를 알아보자

[노병한의 운세코칭] 조상신(神)을 제사로 모시는 일을 일부 종교에서는 이를 우상(偶像)숭배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상이란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대상이나 자신과 무관한 동상 또는 미혹(迷惑)한 신령을 받들어 그에 대한 예를 표할 경우를 일컬어 사용하는 용어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피와 살을 나눠주고 낳고 길러 이 땅에서 살아가게 해준 선대 조상을 공경함을 우상숭배로 치부해 버림은 크게 잘못된 처사가 아닐까? 그리고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 성씨를 갖게 해준 같은 혈통의 조상을 예우 차원에서 우리는 조상신(神)이라 명명했을 뿐이고 과연 단순히 공경할 뿐일까?

선대 조상의 혈통을 이어받은 아버지의 뼈(骨)를 타고 어머니의 살(肉)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남이 연속되는 인간에게는 죽은 후에 저승의 영계(靈界)에 있는 조상신(身)의 영파(靈波)가 좋든지 아니면 나쁘든지 간에 이승에서 살아가는 자손의 가족들 건강과 운명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어찌됐건 간에 자손들은 누구나 자기 조상신(神)의 영파(靈波)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래서일까? 선대 조상께서 살아생전의 삶이 엉망진창이었기에 자손인 나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맹세했던 자식들이 있다고 가정을 해보자.

제아무리 다짐을 하고 맹세를 했을지라도 조상의 나쁜 영파(靈波)를 자손들이 전해 받게 되면 피할 수도 없음이고 어찌할 도리가 없이 선대 조상과 유사한 삶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즉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는 영역의 부분이라 할 것이다. 이게 바로 타고난 팔자이고 운명이다.

예컨대 주색에 빠져 평생 놀기나 하고 방탕하던 조상신의 영파(靈波)를 자손 중의 특정한 누가 이어받게 되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와 같은 행동이 몸에 습(習)이 되어 따라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게 나타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피(血)는 물보다 진하고 피는 속일 수가 없다고들 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러기에 정신병으로 거지꼴 행세를 하면서 이승을 떠돌다 저승에 가신 선망(先亡) 조상신의 나쁜 영파(靈波)가 어느 특정 자손에게 전해지면 그 자손은 반드시 그와 유사한 길을 걷게 됨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이러한 유형의 질병을 일명 자품병(資稟病)이라고 한다.

자품병은 선천적으로 중화(中和)를 상실한 상태로 태어난 경우이거나 아니면 선망(先亡) 조상신의 나쁜 영파(靈波)와 병염(病念)이 전해져서 생기는 질병이다. 이는 선천적인 불치병(不治病) 또는 기질병(病)이자 조상신의 나쁜 영파병(靈波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질병은 고칠 수 없는 질병이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를 고치려드는 의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에는 선망(先亡) 조상신의 나쁜 병염(病念)의 치유를 통해서만이 해당 자손의 치병(治病)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조상신이 영계(靈界)에서 처한 딱한 처지들을 얼마나 알고나 있을까? ■지옥과 감옥 속에서 참혹한 처지에 놓인 경우 ■못 먹어 피골이 상접해 있는 경우 ■매를 맞고 있는 경우 ■혀가 길게 빠져 있는 경우 ■눈이 안 보이는 봉사가 되어 있는 경우 ■훨훨 타는 불구덩이 속에서 몸이 타면서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경우 등 그 양태는 다양하다.

살아 있는 자손들이 조상공양과 진리공양을 충분히 해드렸다면 위와 같은 심한 고통에 처해 있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자기 조상들이 영계에서 이렇게 고통을 받고 있는 이상 그런 조상신을 둔 자손들이 이승에 결코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가 없는 법인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1년에 3번인 설•명절 추석•명절 제삿날만이라도 조상공양을 정성껏 봉양해 드려야함의 이유인 것이다. 산 자손들은 매일 하루에 3끼니씩을 먹고 살면서 영계에 계시는 조상신께 1년에 딱 3번인 3끼니(공양=제사)정도도 게을러터져서 못 올린다면 그건 말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삶의 출입문은 이중창 삼중창 등 다양하다. 인생은 2중(重)창문 3중(重)창문 4중(重)창문 5중(重)창문 등 다양한 창문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드나들면서 살아생전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살아생전의 삶터인 문안의 세상’과 ‘죽음 이후 영혼의 삶터인 문밖의 세상’은 서로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문안의 세상과 문밖의 세상’을 연결해주는 창문인 출입문은 또 뭐고 어떻게 생겼을까? 불가(佛家)에서 오랫동안 독송해오는 천수경의 시작 구절인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에 그 해답이 있어 보인다. 여기 구업(口業)에서 구(口)자는 본래 ‘내외출입문(門)’ 구(口)자이다.
 
이렇게 ‘문안의 세상과 문밖의 세상’의 경계선이자 들고나는 출입처인 문(門)이 바로 구(口)인 셈이다. ‘내외출입문(門)’을 통해서 온갖 것들이 들고 난다. 이런 문(門)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쌓여지는 게 바로 구업(口業)이고 업장(業障)이다.
 
이런 업장이 드나들며 만들어지는 곳으로 사람의 인체에서 출입문(門)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6개로 대별될 수 있다. 이러한 곳이 바로 ‘문안의 세상과 문밖의 세상’ 간에 드나드는 얼굴의 안면에 7성혈(星穴)과 신체 아랫부분에 은밀히 감춰진 배꼽을 포함한 3성혈(星穴)이 합쳐진 모두 10개의 구멍인 10규(窺)에 해당하는 곳이다.

사람이 거처하는 주택이나 활동하는 건물에서 업장이 드나들며 만들어지는 곳으로 출입문(門)은 대문(正門) 중문(中門) 편문(便門) 현관문(玄關門) 방문(房門) 창문(窓門) 천창(天窓) 등 크게 7개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출입문인 창문에는 자기 자신의 세상에만 국한된 독신의 홑(獨)창문도 있고, 자신과 상대방까지 연결되는 내창(內窓)과 외창(外窓)의 이중창문(二重窓門, Double Window)이 있는가 하면, 자신과 상대방은 물론 신명(神明)까지 포함된 삼중창문이 있듯 다양한 창문들이 존재한다.

상호간의 관계를 비유해보면 혼자서 살아가는 독신은 독창(獨窓)이라 할 것이고, 2명의 남여가 함께 살아가는 가정의 부부간은 이중창(二重窓)이라 할 수 있으며, 신혼가정에 자녀가 생기면 삼중창(三重窓)이 형성됨이고, 사회적인 공인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삼중창(三重窓)이나 다중창(多重窓) 등의 다양한 창문이 존재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은 대부분 욕망의 표류 상태에 놓여있다. 그런데 이런 욕망에도 이중창문 삼중창문 등 다양한 장애물들이 많다. 이러한 창문과 출입문을 들고 나는데 있어서 연결고리를 해주는 보이지 않는 힘(Power)이 있음이니 이게 바로 인간계(界)와 영계(靈界)를 이어주고 있는 조상신(神)이다.
 
내 조상이 가진 업장(業障)이 어떠한가에 따라 인간계(界)와 영계(靈界)를 이어주고 있는 창문(祖上神)의 크기가 다르고 또 저마다 가진 칼라(色相)가 다르기 때문에 그 역할과 순기능 역기능이 또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조상과 자손 간에 질서와 조화가 필요한 것이니 자손들이 행복과 복록(復祿)을 누리려면 효친(孝親)사상에 기본을 둔 조상공양(祭祀)이 필요한 이유이며 동기감응(同氣感應)의 이치라 할 것이다.

 

 

노병한 풍수·사주칼럼리스트

-자연사상칼럼니스트

-한국미래예측연구소장

-노병한박사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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