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냥이 울음 따라 따라 간다. 별빛 차가운 저 숲길을.
시냇가 물소리도 가까이 들린다. 어서 어서 가자.
따라온 승냥이 울음소리만 되돌아서 멀어지네...” <정태춘, ‘탁발승의 새벽 노래’>

이 노래 속 승냥이가 바로 늑대 종류다. 늑대와 승냥이를 통틀어 한자로 이리 ‘랑·狼’으로 쓴다. ‘호랑(虎狼)’이란 원래 ‘범과 이리’라는 뜻. 승냥이는 늑대와 여우를 섞어 놓은 것 같다. 승냥이는 적랑(赤狼) 즉, ‘붉은 이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호랑지심(虎狼之心)’은 성질이 거칠고 사나운 성정을 이르는 말. 그런데 언제부턴가 범 대신 호랑이, 이리 대신 늑대란 말이 보편화됐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은 늑대에게도 통용된다. 이솝 우화 같은 설화나 미디어에 나오는 동물 이미지는 왜곡된 게 많다. 늑대는 ‘나쁜 동물’이자, ‘음흉한 남자’의 대명사다. 오히려 곰을 ‘착한 동물’로 여길 정도다. 그래서일까. 늑대는 울고, 개는 짖는다.

■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

사실 늑대는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순정파 동물이다. 갯과, 고양잇과 동물을 통틀어 손에 꼽을 정도다. 무리 생활을 하기에 어느 정도 ‘사회성’을 가진 동물이다. 사냥을 할 때면 더욱 그렇다. 늑대 무리는 뭉치면 살고, 따로 흩어지면 죽는다. 보통 우두머리인 알파 부부와 그 친자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늑대는 길들여지지 않는 특이한 동물이다. 서커스단에 호랑이와 곰, 사자까지 있지만, 늑대는 없다. 늑대가 영물(靈物)로서, 토템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이성보다 욕심이 앞서는 남자를 늑대에 비유하듯, 일본에서는 이런 사람을 두고 원숭이라고 부른다.

늑대와 개는 한 가족이면서도, 대략 1만 7천 년 전에 운명이 갈라졌다. 유전자분석 결과 진돗개와 풍산개 등 한국의 토종개들이 늑대와 가장 닮았다고 한다. 반대로 가축이 된 개가 다시 야생동물이 되기도 한다. 바로 호주의 ‘딩고’. 3000~4000년 전 동남아를 거쳐 호주로 건너간 개가 야생화됐다.

1990년에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는 한 마리 늑대가 등장한다. 인간 곁을 맴돌며 먹다 남긴 음식을 얻어먹으려 한다. 선사시대 최초의 개가 나타난 경우가 같다.

‘늑대와 함께 춤을’은 북군 중위(케빈 코스트너) 이름이다. 동명의 임창정 노래에는 늑대가 나오지 않는다. 영화 속 늑대는 발에 털이 흰색이라 주인공 던바가 ‘두개의 양말’이라고 부른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70년 만에 회색 늑대를 복원하자 생태계가 제 모양을 찾고 있다.

■ 몽골 등 유목 민족의 오래된 토템 늑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종교 활동은 ‘토템’이다. 선사 인류가 특정 동물이나 식물 등을 자신의 부족과 특수 관계로 여겨 숭배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들은 토템이 부족의 상징이자 보호자라고 믿었다. 그리하여 일부 토템은 한 부족의 시조 신화에 녹아들어 가기도 했다.

시조 신화는 대개 비범한 태생과 영웅적 행동으로 신격화된다. 동물 또는 동물과 인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시조 신화도 적지 않다. 선사 시대에 동물은 인간보다 신성하고 우월한 존재로 간주했기 때문.

토템숭배는 인류문화의 시원(始原)이기도 하다. 늑대의 이미지는 늑대를 토템으로 숭배하는 민족과 아닌 민족 간에 서로 크게 다르다. 어떤 민족은 늑대를 조상으로 숭배하고, 흉악하게 여기기도 한다.

‘나쁜 늑대’ 이미지는 야생동물의 가축화에서 비롯됐다. 단백질원을 사냥에 의존하다가 가축을 사육하는 시기로 넘어오면서 늑대를 약탈자로 보게 된 것.

대부분 유럽 지역에서 늑대는 증오의 대상이다. 동화 속에서 양이나 염소를 죽이고 어린아이를 헤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기독교에서도 늑대는 악마의 화신으로 인식된다. 성경의 곳곳에서 사악한 존재로 지목된다.

대개의 종교가 그렇듯 기독교 역시 절대 선이 존재하려면, 절대 악이 필요했다. 중세 시대 ‘늑대인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처형됐다. 영화 <인랑> 또한 그 연장선상이다.

서양의 시조 신화 가운데 늑대가 양육한 모티프가 내재된 로마의 건국 신화는 특이한 경우다. 베를린의 어원이 영어로 곰인 ‘베어’에서 비롯되었듯, 상당수 북유럽 민족은 곰 토템을 가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목 민족은 농경민족과는 달리 늑대에 대해 호의적이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300개가 넘는 부족 중 32개가 작은 늑대종인 코요테를 토템으로 숭배한다.

‘늑대와 함께 춤을’이란 영화처럼 늑대와 더불어 초원을 공유했던 유목민족에게 늑대를 숭배하는 토템이 싹튼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는지도.

■ ‘오랑캐’들의 늑대 시조 신화

우리나라의 단군신화처럼, 동북아 상당수 민족들은 곰을 매개로 한 시조 신화를 갖고 있다. 중국은 모두 56개의 종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다. 북방, 서방 변경에서 두각을 나타낸 소수 종족으로는 흉노(훈족) 돌궐(투르크) 몽골을 들 수 있다.

중국 소수민족인 묘족·요족·여족의 시조는 인간 여자가 개(반호)와 결혼한 경우다. 장족의 신화에는 원숭이가 천신(天神)과 결혼해 시조가 됐다. 현재 장족은 원숭이가 많은 중국 쓰촨성과 윈난성에 주로 분포한다.

늑대 시조 신화는 중국 서북부 민족에게서 흔하게 나타난다. 몽골을 비롯해 투르크계 민족인 위구르, 카자흐, 키르기스 등 중국 북서부의 여러 유목민족에게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유목민족들에게 늑대는 용맹과 지혜의 상징이자 전쟁 영웅이었다.

몽골에서는 하늘이 낸 푸른 늑대와 흰 사슴이 짝을 맺어 시조를 탄생시켰다. 몽골인들에게 늑대는 천신 탱그리가 보낸 사자이자, 민족의 인도자였던 셈이다.

흉노족과 돌궐족은 늑대를 상징으로 사용했다. 투르크 민족의 기원 신화인 ‘아쉬나’ 설화에 따르면, 인간과 암컷 늑대 사이에 태어난 후손들로 자신들을 늑대의 후예라고 부른다. ‘아쉬나’ 혹은 ‘아사나’라는 말은 고대 투르크어로 ‘늑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흉노족의 성립 신화는 이와 정반대다. 흉노의 왕 선우에게 딸 둘이 있었는데, 작은 딸이 늑대의 아내가 되어 나라를 일궜다. 지금은 이슬람 문화의 유입으로 늑대의 의미가 퇴색됐지만, 투르크 민족이 건국한 나라인 터키에서도 늑대와 관련된 많은 설화가 내려온다.

고대 위구르인의 선조는 전쟁에서 지고 산속에 갇혀 위험에 빠졌었다. 이때 늑대의 인도로 그곳을 빠져나와 대초원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카자흐족 설화는 암늑대가 소녀로 변해 인간 청년과 결혼을 하고, 남자를 도와서 왕위에 오르게 하거나 부유하게 살도록 도와준다.

프로이드는 동물 토템의 숭배현상을 살펴보면, 혈통의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중국의 서방 고원지대와 북방 초원지대에 살았던 유목민족들에게 늑대는 공포의 대상이자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동물이었다. 마치 옛날 우리나라의 호랑이처럼.

몽골과 돌궐, 즉 투르크 계통인 카자흐, 키르기스스탄의 주축인 키르기스족은 혈연적으로 가까운 집단임을 알 수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늑대

중국 한족은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해 주변의 종족을 방위별로 나누어 지칭했다.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동쪽의 동이족은 한민족의 조상이다. 잘 알려졌듯, 활을 잘 쓰는 민족이란 뜻. 동이족의 분포는 고대의 한민족이라 할 수 있는 예ㆍ맥ㆍ부여ㆍ고구려ㆍ북옥저ㆍ읍루 등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쪽의 융족은 늑대나 늑대개의 자손이라는 시조 신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융·戎’ 자와 개를 뜻하는 ‘술·戌 자’가 흡사한 점도 이유로 든다.

동이족 나라 중 고대 국가 ‘부여’도 늑대와 관련이 많다. 카자흐어로 늑대는 ‘봬르’, 원시 투르크어로 ‘붸뤼’라고 하기 때문. 부여는 현재 바이칼 호수 서쪽에 사는 ‘부리야트족’과의 친연성을 주장하는 학설도 존재한다.

늑대의 민족이라 불리는 부리야트족은 러시아 몽골 중국에 분포한다. 부리야트에서 ‘야트’는 복수형이고 부족 명칭은 ‘Бур부리’가 된다. 부여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 역시 늑대 토템을 가졌다.

일본 홋카이도의 아이누족 또한 곰 숭배와 더불어 자신들을 흰 개의 자손이라고 여긴다. 흰 개가 인간에게 시집와 세 아이를 낳았다는 것. 여기서 흰 개란 하얀 늑대를 뜻한다. 근세까지 홋카이도는 아이누족의 독립된 땅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통해 사할린의 아이누, 심지어 쿠릴 열도의 아이누와 하나로 연결된 북방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는 아이누족의 존재를 알리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홋카이도에서는 최근까지 새끼 늑대를 기르거나 개와 늑대를 교배한 늑대개 ‘울프독’을 사냥에 데리고 나가는 일이 흔했다고 한다.

고기가 부족한 농경민족은 개를 식량으로 취급한 반면 고기가 풍부한 유목민족은 개를 친구로 여겼다. 대부분 세계 역사는 유목민족과 농경민족의 싸움이었다. 동아시아 역사도 마찬가지. 고구려와 수·당의 싸움은 늑대와 용의 싸움이기도 하다. 불과 100여 년 전만 해도 늑대를 숭배했던 만주족은 용을 숭배한 중국의 한족을 지배했다. 전쟁에 진 늑대는 점차 사라져갔다

■ 조선 후기부터 나타난 늑대

1399년(정종1) 조선은 북방 오랑캐로부터 늑대 한 마리를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조선에서는 늑대가 매우 희귀했다. 이 늑대는 왕실 후원 상림원에서 키웠는데, 얼마 못 가서 궁궐에서 내쫓기는 신세가 됐다. 왜냐하면 한 달에 닭 60마리를 먹어치우는 엄청난 식욕 때문에 도저히 키울 수가 없었던 것.

조선 초기 늑대 가죽(大狼皮)은 고위 관료의 말안장이나, 중국 사신에게 몇 장씩 주는 선물용으로 쓰였다. 특히 늑대 꼬리(狼尾)는 화살집 장식용으로 인기가 높았다. 평안도와 함경도에 각각 1년에 10개씩 공물로 요구했으나, 잡히는 게 없어 수시로 경감해줬다.

중종 때는 1년에 1개씩 설날에만 진상 받았다. 국경의 수령들은 말과 소, 농기구 등을 주고 여진족으로부터 늑대와 담비 가죽을 구매해 밀수품으로 들여올 정도였다. 1438년 세종은 경기 감사 황치신이 늑대 꼬리를 바치자 꾸짖기도 했다. 명종 시기에 이르러서는 “늑대 가죽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서, 비록 중국 사신이 청하더라도 다 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고 적었다.

우리나라에서 늑대 꼬리를 대체해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붓은 ‘낭미필’(狼尾筆)이라 하여 중국에서 특상품으로 쳤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늑대라는 짐승을 모른다고 했다. 하물며 ‘그 꼬리를 어디서 구할 수 있겠는가?’라는 의문을 품었다. 연암은 늑대 꼬리로 만든 붓 즉, ‘낭미필’은 허무맹랑한 소리로 여겼다. 그는 사나운 붓은 ‘장난꾸러기 아이 같다’고 폄하한 반면, 보드라운 붓은 ‘부모의 뜻을 잘 받드는 효자’같다고 찬미했다.

한반도에 늑대가 창궐하기 시작한 건 17세기 이후. 지구 전체적으로 소빙기로 인해 평균 기온이 하락했다. 취사와 난방을 산림에 의존하면서 숲의 황폐화가 가속화되자, 범과 표범의 수가 줄어들었다. 또 포호 정책으로 대형 포식자의 자리를 몽골, 만주 등지에서 남하한 늑대들이 메꾸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 호랑이와 범을 대신해 늑대가 아이를 물고 갔다는 일화가 널리 퍼졌다. 일제강점기 동안 공식적으로만 2625 마리의 늑대가 잡혔다. 남한에는 야생 늑대가 사라지고 전설만 남았다.

■ 유혈이 ‘낭자’한 늑대에게 ‘낭패’ 보는 경우

요즘 많이 쓰는 말 가운데 ‘대략 난감’ 또는 ‘대략 낭패’가 있다. 곤란함을 느끼거나 나서지도, 물러서지도 못할 사태를 이른다. 낭(狼)은 앞다리가 큰 용맹스러운 늑대, 패(狽)는 뒷다리가 긴 지혜로운 늑대다. 상상 속의 동물이다.

엽기적인 사건에서는 흔히 ‘유혈(流血)이 낭자(狼藉)’ 한 일이 발생한다. 낭자(狼藉)의 ‘자(藉)’는 풀을 엮어 짠 깔개 또는 자리라는 뜻. 낭자는 그러니까 ‘늑대의 잠자리’라는 의미다.

동물들은 가을이 되면 여리고 촘촘한 겨울 털로 새 단장을 한다. 집에서 애완견을 길러본 사람들은 누구나 다 털갈이를 경험해봤을 터. ‘추호’(秋毫)는 가을 추(秋), 가는 털 호(毫). 가을에는 짐승의 털이 가늘어진다.

아주 적거나 조금인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쓰인다. 붓을 휘두르거나, 글씨를 쓰는 것을 이르는 ‘휘호’(揮毫)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은 ‘추호’라는 말을 식은 죽 먹듯 한다. 사사건건 자신은 ‘추호’도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 바꾸기에 바쁘다. 그러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늑대는 더 이상 약탈자도 악마도 아니다. ‘늑대 같은 남자’라고 함부로 늑대를 비하하지 말자. 유혈이 ‘낭자’한 채 사라진 늑대가 다시 돌아올지도.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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