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방장산의 명당과 대길지에 대한 실체와 해설

[서울=내외뉴스통신] 우리 한반도는 백두산을 조산(祖山)으로 하여 백두대간을 비롯한 여러 정맥, 기맥 등으로 나누어지면서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많은 명당과 혈(穴)을 맺고 있다. 그리고 그 중 호남 최고의 명산인 방장산의 혈은 천장지비한 것으로 오랫동안 그 모습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았다. 때문에 수많은 풍수가들이 이 자리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그들이 안맹한 탓인지 아니면, 하늘이 감추어서 보여주지 않은 것인지 긴 세월동안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필자는 얼마 전 관계인의 요청에 의해 방장산을 답사하게 되었다. 당시 방장산으로 들어오는 용, 국세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 방장산이 감추어 둔 최고의 길지는 방장산 자체가 아닌 방장산에서 중심 출맥으로 개면한 전혀 다른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답사 시에는 방장산을 향해 개면한 곳을 지목하였으나 두 번째 답사에서 다시 보니 방장산과 장하귀인 등을 신하로 만드는 곳에 혈이 결작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산천은 열 번 가면 매번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는 옛 선현의 말씀과 산천의 변화는 무궁하다는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곳은 호남정맥이 백암산으로 진행하던 중 한 맥이 분지하여 입암산으로 개면하고 크게 과협과 결인한 후 방장산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맥은 크게 회룡으로 돌아나가면서 탈살을 거듭하고 난 후 평야지에 일월성신을 만들고 회룡고조로 개면한 곳에 대지(大地)를 결작하였다. 이곳의 혈처는 일월성신(日月星辰)에서 낙맥하여 삼공룡의 귀한 형체를 만들고 장신태음(長身太陰)의 성신을 세운 뒤 횡으로 낙맥하여 혈(穴)을 결작하였다. 그리고 이곳의 혈은 괴혈이면서도 유혈의 형태로 결혈하였으며, 음양조화로 만들어진 입수와 선익, 순전, 은미한 미사, 그리고 그 외에도 갖추어져야 할 혈로서의 조건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또한, 혈(穴)

뒤편에는 귀성(鬼星)이 존재하였고, 혈은 개좌가 받쳐주는 안정된 곳에 결혈되어 있어, 귀한 혈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혈(穴)옆에는 큰 소나무 등이 서 있었으며, 좌우와 그 아래 십여미터 떨어진 곳에는 다른 묘들이 존재하였다. 이곳의 혈심은 4자로 호랑이 무늬같은 오색토(五色土)가 출토되었으니 일명 오색토 명당으로도 볼 수 있을 듯하다.

이곳은 문중 땅 이지만 수백년동안 그 자리가 훼손됨 없이 지켜지고 있었던 곳인데, 이를 볼 때 이 자리는 분명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혈토를 확인하기 전날 밤, 이곳에 모셔질 분의 장남되시는 분이 꿈을 꾸었는데, 방안에 호랑이가 들어와 자기의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분이 호랑이를 만지니 호랑이가 가만히 있었으며, 나중에는 호랑이의 등을 타고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음날 혈토를 확인하기 위해 혈자리를 삽으로 1m가량 파들어 가니 그곳에서 호랑이 무늬의 혈토가 출토되었다. 이를 본 장남되시는 분은 어젯밤 꿈속에서 보았던 호랑이의 털 색깔과 같은 혈토가 올라왔다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자리의 혈토는 단단하고 질기며 윤기가 있고 기름기가 있는 것처럼 매끄러우면서도 밝은 홍황비윤의 모습으로 손으로 비비면 콩고물처럼 변하는 전형적인 혈토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혈 옆의 소나무 뿌리는 혈을 침범하지 못하고 혈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뻗어나가고 있었는데, 이는 필자의 많은 경험에 의하면 다른 혈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틀림없는 혈(穴)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이 혈은 회룡고조형 즉 산태극 수태극(山太極 水太極)의 형태로 결작하여 용이 크게 돌아들어오고 물은 좌수가 도우하는 형태로 유거하다가 다시 혈후를 포회하고 유거하는 회수성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의 안산은 삼태(三台)로 만들어진 옥대사(임금의 곤룡포에 두르는 허리 띠)로서 주변의 살(殺)을 모두 제거하였고, 그 안산 너머로 펼쳐지는 평야에는 암공수가 혈을 향해 완만히 조래하였는데, 이는 창판수와 구곡수(九曲水)로서 큰 부(富)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보기드문 수법(水法)이었다. 따라서 이 혈은 지기에 승하고 천기를 점하는 좌향법(坐向法)에도 합법한 천조지설의 자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산(祖山)은 천마(天馬)로 형성되었고, 그 천마위에 제성(帝星)이 올라앉았으니 천자가 청마(靑馬)위에 당당히 앉아있는 형국이다. 이를 보면, 후일에 천자의 위에 오르는 후손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후손 중에 용이 승천하는 태몽을 꾼 분이 있다고 하니 우연이 아닐 것으로 여겨진다.

이 혈의 좌청룡에는 상격귀사(上格貴砂)인 삼태(三台)로 정승들이 도열하였고, 우백호에는 안산 너머에서 흘러들어오는 배룡수(背龍水)가 포회하였으며, 용루사인 방장산과 장하귀인들이 배열되었다. 그리고 천기(天氣)인 水(물)는 우측에 위치한 저수지에 정고법(正庫法)으로 유거하였다가 혈후를 돌아 지현(之玄)굴곡한 후 유정한 모습으로 차문고(借文庫)로 유거하고 진수구(眞水口)에서 음양교합으로 생기(生氣)를 일으켰으니 용(龍)과 혈(穴), 수법이 모두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다.

방장산의 대혈인 이곳 반룡농주격(용이 몸을 크게 틀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격)의 주인은 장흥 고씨 문중의 인물이면서, 조선 말 정이품 정헌대부를 지내고, 면암 최익현 선생의 수제자이자 의병장으로서 일생을 바치신 수남 고석진 선생의 손자가 되시는 분이다.

이 분은 평생조부의 독립운동정신을 계승발전 시키는 숭고한 일을 해오셨으며, 풍수에도 관심이 있어 평소에 좋은 자리를 마련해 놓았으면서도 주변 친척들에게 자기의 자리를 모두 양보하는 미덕과 음덕을 베푸신 분이다. 그러다가 정작 본인은 변변한 유택자리가 없어 수목장에 모셔져 있었는데, 천명(天命)에 따라 그 장자께서 주관하여 부모님의 평생 유택지를 마련해 모시게 되었으니, 이는 큰 효를 행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면, 옛 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고전인 ‘비결, 결록지’ 등에 소개된 방장산의 용추혈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의 소견으로는 방장산 내에는 살기(殺氣)가 많아 큰 혈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방장산의 대길지는 살기를 벗고 귀한 용으로 개면한 곳에 생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었는데, 후에 ‘결록지’에 있는 대길지의 내용을 분석, 검토하여 보니 필자가 찾아 소점한 자리와 유사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비결, 결록지’ 등에 연연하지는 않고 있다. 왜냐하면 ‘결록지’에 기록된 자리보다 ‘결록지’에 기록되지 않은 곳의 명당 혈이 더 큰 것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한국 유일의 정법풍수 이론과 지식을 활용하여 소점한 이 반룡농주형의 자리는 방장산 제일의 혈이 아닐까 조심스런 생각을 해본다.

 

 

단국대(천안) 초빙교수

단국대(천안) 평생교육원 풍수지리 주임교수

삼한풍수지리학회 회장

인천 남동구 도시계획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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