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온달이 평강 공주를 만났을 때 첫눈에 반했을까? 오래전 로맨틱 코미디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도 첫눈에 반하진 않았다. 고구려 평강왕 시절, 온달도 평강 공주에게 ‘첫눈에 뿅’가지는 않은 것 같다.

<삼국사기> 인물 열전 ‘온달’편에 재미있는 묘사가 보인다. 평강공주는 고씨에게 시집보내려는 부왕의 권유를 물리치고, 온달을 찾아가서 결혼 이야기를 꺼낸다. 그러자 온달은 평강공주를 의심하며 한마디 내뱉는다.

“이는 어린 여자가 하기에 마땅한 행동이 아니다. 필시 너는 사람이 아니라 여우나 귀신일 것이다.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말라!” 온달은 미천한 신분인 자기에게 접근하는 평강공주를 둔갑한 여우로 취급했다.

온달(?~590)의 출신 성분은 여전히 화제다. 연세대 사학과 지배선 명예교수는 온달이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건너온 왕족의 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 여우가 ‘비호감’ 동물이 된 이유

해마다 여름이 되면 ‘납량특집’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다. 납량(納凉)을 한자 뜻대로 풀이하면, ‘서늘함을 맞다’라는 뜻. 피서(避暑)와 같은 맥락이다. 납량물 중 갑중의 갑은 과거 십수 년 동안 방송된 KBS TV ‘전설의 고향’. 단골 메뉴로는 ‘구미호’ 괴담 종합세트가 펼쳐졌다.

구미호(九尾狐)는 신통력을 가진 꼬리 아홉 달린 여우. 한·중·일 공통의 크립티드(미확인 동물)
다. 주특기는 남자를 잘 홀리는 치명적 매력의 ‘팜 파탈’.(Femme fatale) 변신 마술을 부려 유괴에다가 인신매매, 간 위주 장기 밀매, 엽기적 살인을 일삼는다. 수많은 동물 요괴 중에서 내공이 최고 레벨 ‘만랩’을 찍는 것은 바로 구미호가 아닐까?

서양에서의 여우의 이미지는 평범하다.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거나, 신적인 대상으로 비치지 않는다. 멕시코 영화 ‘쾌걸 조로’에서 ‘Zorro’가 스페인어로 여우라는 뜻. 가면 쓴 히어로의 원조 격인 캐릭터다.

생텍쥐페리 소설 <어린 왕자>속의 사막여우는 수많은 ‘명언 제조기’로 유명하다.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등. 그러고 보니 ‘흠좀무’(흠 이것은 좀 무서운) ‘구미호’스럽다. 실제 생택쥐베리는 <어린 왕자>를 쓰기 전 사막에서 살 때 사막 여우를 길렀다고 한다. 그런 경험이 소설에 녹아든 캐릭터라 할 수 있다.

동양에서의 여우는 굉장히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상서로운 상징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성적으로 아주 매력적인 대상, 또는 변신을 일삼는 교활한 존재 등 복잡하게 나타난다.

선사 인류는 토템 신앙을 바탕으로 모든 사물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유가 기저에 있기 때문.

처음부터 여우의 이미지가 그다지 나빴던 것은 아니다. 여우가 산신이나 인간의 수호신적인 존재로 나타난 경우도 많았다. 인간과 신,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신령한 힘을 가진 존재로도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여우는 교활하고 사악한 동물이라는 오명을 쓰기 시작했다. 여우의 보금자리가 주로 마을 주변이라는 원인도 크다. 최근 소백산에 방사한 여우도 마찬가지. 실제 여우를 산에 풀어놔봤자 다시 마을 근처로 내려오곤 한다.

그래서 송동주 종복원기술원장은 아예 자연 방사하기 전에 여우에게 ‘마을 투어’를 시켜줬다. 차에 태워 다니면서 ‘저 집은 어떤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이야’라고 말도 해준다. 투어를 반복하면 주민들도 여우를 친숙하게 여긴다는 것.

쥐 등을 잡아먹는 여우는 다른 포식 동물에 비해 가장 사람 가까이에 있는 동물이다. 특히 야산의 공동묘지를 파헤치는 여우 괴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많은 이야기의 소재가 됐다. 점점 여우는 술수나 부리며, 인간을 괴롭히는 동물로 낙인찍힌 채 사라져갔다.

■ 같은 듯 다른 한중일 여우의 이미지

한·중·일의 여우 이미지는 같은 듯 다르다. 그중 우리나라에서 여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유독 강하다. 전통놀이인 ‘여우야, 여우야 뭐 하니’ 속에서도 여우가 죽었는지를 묻는다. 우리 민족의 기본정서는 여우에 대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착한 여우’ 이야기는 거의 드물다. 그중 으뜸인 게 고려 명장 강감찬 탄생설화다. 강감찬의 아버지가 여우로 변한 여인과 합방해 태어났다는 것. 영웅으로서의 면모를 신화적 성격으로 강조한 동물 결혼 모티프의 일종이다.

중국에서 여우는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사람을 잘 홀리는 요염한 여인과 나이 많고 지혜로운 노인의 모습. 대부분 여우는 남자와 결혼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더래요~’ 버전을 시전한다. 유교보다 도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탓도 크다. 일본의 경우 신앙 숭배의 대상에서 남성을 유혹하는 요부까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베트남은 건국신화에 구미호가 등장한다. 우리 단군신화처럼 모든 베트남인들이 알고 있다. 천 년 묵은 여우의 정령인 구미호 ‘호띤(狐精)’은 밤이면 귀신이나 인간으로 변신해 굴에서 나와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이 괴물은 용신에게서 태어난 ‘락 롱 꿘’에게 제압당한다. ‘락 롱 꿘’ 아들들은 베트남의 시조가 된다.

베트남은 지형상 동남아시아 대륙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다민족 사회였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베트남 건국신화는 산악 세력과 해양 세력이 만나 고대국가를 형성하게 된 배경을 보여준다.

영국의 야생 여우는 길고양이 수준이다. 런던에만 1㎢ 당 8마리가 산다. 도시에 진입해 음식 쓰레기통을 뒤지는 청소동물 취급받는다. 영국의 오랜 전통이었던 사냥개를 이용한 ‘여우 사냥’도 거의 사라졌다.

■ 조선시대에도 살았던 흰 여우(白狐), 검은 여우(黑狐)

‘검은 여우를 산 채로 잡아 오면 쌀 50석과 면포 50필! 관청에 신고만 해도 쌀 30석과  면포 30필을 포상금으로 줌’ 1428년(세종10) 2월, 전국에 검은 여우 생포령이 내려졌다.

쌀 50석은 100가마(80kg). 지금 시세로 100가마×20만원=2000만원. 면포 값까지 합치면 백성 입장에서는 로또나 마찬가지였다.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때문인지, 한 달이 되지 않아 검은 여우가 평안도에서 잡혀 올라왔다. 세종은 이 여우를 왕실 후원에서 키우게 한다.

사실 세종이 키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중국 사신이 검은 여우를 내놓으라는 행패 때문이었다. 실록에는 ‘검은 여우’로 표기했는데, 완전 흑색여우인지, 회색빛 은여우(Silver fox)인지는 확실치 않다. 은여우는 시베리아에도 많다. 검은 여우는 붉은 여우의 유전적 결함으로 생겨난 돌연변이. 서양에서 악마의 화신으로 생각해 보는 대로 잡아 죽였던 흑역사가 있다.

조선 초기에는 드물지만 흰 여우도 존재했다. 1427년에는 명나라에 보낼 흰 여우 가죽을 진상하라고 어명이 내려졌다. 흰 여우 자체가 당시에도 워낙 귀한 동물이었기 때문에 그 가죽으로 만든 모피는 임금만이 입을 수가 있었다.

연산군은 명나라와의 무역품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흰 여우·검은 여우의 가죽, 흰 노루·흰 사슴의 가죽을 8도에 명하여 진상토록 강요했다. 조선 후기가 되면 흰여우는 불여우와 함께 요물의 대표주자로 올라선다.

우리 역사 문헌에서는 일찍부터 여우가 등장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역사서에 대부분 길흉을 나타내는 장면에서 여우가 출현한다. 고구려를 비롯해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려의 건국신화를 살펴보면, 대부분 여우를 사악한 동물로 규정한다.

서기 121년(고구려 태조대왕 69년) 10월, 숙신의 사신이 와서 자주색 여우 가죽 옷과 흰매, 흰말을 바쳤다. 148년(고구려 차대왕 3년) 7월에는 왕이 사냥하는데, 흰 여우가 따라 오면서 울었다. 이에 왕이 활을 쏘았으나 맞추지 못했다. 왕이 무당에게 물으니, 그가 말했다.

“여우는 요사한 짐승이어서 상서롭지 못합니다. 더구나 그 색이 희니 더욱 괴이합니다. 하늘이 그 말을 간절하게 전할 수 없으므로, 요괴로 대신 보여 주는 것입니다. 만약 왕께서 덕을 닦으면 화를 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자 왕은 “흉하면 흉하다 하고, 길하면 길하다 할 것이지, 네가 이미 요사스러운 짐승이라고 말해놓고 또 복이 된다고 하니 이 무슨 거짓말인가?” 화가 난 왕은 무당을 죽였다.

■ 흰여우 백호(白狐)는 더욱 불길해

백제 역사에선 기록상으론 최초로 여우가 사람으로 둔갑한 사례가 나타난다. 501년(백제 동성왕 23년) 1월에 왕도에서 노파가 여우로 변해 사라졌다. 당시 왕도는 충남 공주. 늙은 여자가 여우로 변했단 이야기다. 그해 12월 동성왕은 암살당해 죽었다.

백제와 고구려가 멸망할 무렵에도 여우가 나타난다. 659년(백제 의자왕 19년) 2월, 부여 사비성에 여우 떼가 궁궐에 들어왔다. 그중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 책상에 올라앉았다. 무리생활을 하는 늑대도 아니고, 여우가 떼로 들어왔고 그중 흰여우 한 마리는 국무총리 방에까지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다음 해 7월 백제는 멸망했다.

여기서 흰 여우는 북극여우가 아닌 돌연변이 알비노 종이다. 전통적으로 흰 사슴, 흰 기러기, 흰 토끼 등 털빛이 하얀 동물은 상서롭게 여겨졌다. 그러나 유독 흰 여우만은 ‘새 왕이 나타날 징조’라 하여 탄압받았다. 새 왕이 나타난다는 것은 왕이 바뀌거나 나라가 멸망하고, 다른 왕조가 세워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668년(고구려 보장왕 27년) 연초 평양성에 늑대와 여우가 성에 들어왔다. 두더지도 문에 구멍을 뚫어 인심이 흉흉해졌다. 그 해 9월 평양성이 함락됐다.

<삼국유사>에도 여우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삼국유사의 특성상, 삼국사기에 비해 판타지적 요소가 많은 게 특징이다. 신라 진평왕 시절에는 여우로 변한 ‘길달’이란 요괴가 등장한다. 진성여왕 때는 용의 간을 빼먹고 힘을 축적하던 여우가 있었다.

여우는 결국 용의 부탁을 받은 ‘거타지’에 의해 퇴치 당한다. 선덕여왕 시절에는 늙은 여우가 땡중과 짜고 행패를 부리다가, 밀본이라는 승려에 의해 제압당하는 이야기가 실렸다.

여우는 <고려사>의 첫 페이지와 마지막을 장식한다.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은 늙은 여우 때문에 두통이 심한 서해 용왕을 도와주고, 용왕 딸을 아내로 얻었다.

<고려사>의 마지막은 ‘신돈’을 구미호와 동일시했다. “신돈은 사냥개를 겁내고, 사냥을 싫어했다. 또 여색을 밝혀 매일 ‘오계’(검은 닭. 오골계인지는 불명확)와 ‘백마’를 잡아먹어 양기를 돋웠기에 사람들은 그를 늙은 여우의 화신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 작성한 <고려사>는 공민왕을 도와 개혁 정치를 펼치려 했던 신돈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했다. 신돈은 여종의 아들이라는 미천한 출신인 점과 이미 부패한 고려 권문세족들의 적대로 그 한계가 명확했다.

더구나 조선 건국의 정당화와 고려사 매도에 철저하게 이용됐다. 신돈은 남자인데 죽어서도 뜻하지 않게 ‘구미호’의 옷을 입은 요승으로 전락했다.

■ 곰하곤 못 살아도 여우하곤 살 수 있다

조선 시대에 접어들면, 여우의 성적 매력(?)이 한층 더해진다. <어우야담>등 야담집과 <전우치> 등 몇 편의 소설에서 여우의 흔적이 발견된다. 암컷 여우가 사람으로 변해 남자를 유혹하는 이야기, 혹은 수컷 여우가 남자로 변신해 여자를 유혹하는 이야기가 쏠쏠하게 등장한다.

대부분 여우 설화에 성적 요소가 들어가 있고, 이를 이용해 이성을 현혹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삼국시대나 고려 시대 보다 여우가 많아져서 그럴까? 조선 시대 여우가 갑자기 섹시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십여 년 전 문화평론가 김휘영은 여우가 유교 문화의 희생양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여우는 가부장적 조선 사회에서 남성을 유혹해 파멸로 이끌거나, 현모양처의 위치를 위협한다. 즉 유교 사회의 근본인 가정을 붕괴시키는 사악한 존재로 자리매김 된 것이다.

남존여비 사회에서 능력 있는 여성의 출현은 권위와 체제에 도전하는 불순 세력으로 간주된다. 여우는 온갖 둔갑술과 변신 마술을 부린다. 재주도 재주이거니와, 무엇보다 여우는 유혹의 ‘아이콘’이다.

게다가 “나는 인간이 되고 싶어요”라는 원초적 클리셰까지 가졌다. 적대적 희생양으로 삼기에 딱 적합한 대상이다. 결국 여우의 부정적 이미지는 우연이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주입되면서 ‘간 빼먹는 요물’이 됐다.

여우는 정말 인간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곰보다도 강한 것일까? 곰이 인간이 되는 날짜는 100일이 아니라 3×7=21일. 원래 100일 동안 마늘 쑥 먹고 수행해라 했는데 성질 급한 호랑이는 그 새를 못 참고 뛰쳐나갔다.

조선 시대 구미호는 1000년 동안 수행해도 인간이 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자칫하면 단군신화 속 곰은 여우에게 밀릴 뻔했다. 속담에 “곰 같은 부인 하곤 못 살아도 여우 같은 부인 하곤 살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여우는 애교 많고, 정이 넘치는 여인을 칭한다. 여우가 말했다. 우리 더불어 같이 살자고.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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