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은 듯도 하다. 이미 어둠이 어깨까지는 내려왔다. 앞을 봐도, 옆이나 뒤를 보아도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아무도 없다. 순간 내 오른쪽에서 소리가 들린다. 아주 작은 소리라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오른편을 바라보니 하얀 토끼 한마리가 까만 눈을 하고 날 바라보고 있다. 순간, 왼쪽에서도 소리가 들린다. 급히 왼편을 보니, 검은색 토끼가 코를 실룩 거리며 이쪽을 쳐다본다. 고민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모두 다 잡고 싶다, 둘 다 갖고 싶다. 흰색 토끼도 안아주고 싶고, 검은색 토끼도 만져주고 싶다.




나와 두 마리의 토끼는 서로를 발견하는 순간,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세상이 멈춰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슬쩍 오른 팔을 들어본다. 흰색 토끼도 살짝 움직인다. 가만있자 토끼도 멈춘다. 이번엔 왼쪽 다리를 움찔해본다. 검은색 토끼도 움직인다. 그제야 알아차린다, 나로 인해 그들도 움직이는구나. 내가 항상 먼저구나.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해서, 조금 느긋해진다. 생각한다. 방법이 있을 거야. 거리를 가늠해 보자. 흰색 토끼가 좀 더 가까운 듯 보인다. 게다가 검은색보다 조금은 둔해 보이는 듯도 하다. 그럼 흰색 쪽으로 발길을 돌려볼까? 팔을 좀 뻗어볼까? 그래도 검은 녀석이 움직이지 않을까? 끈이라든지 기다란 나무 막대기라든지, 도구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아무리 둘러봐도 발끝에 채는 흙밖엔 없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순간 각각의 토끼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니, 움직임을 보지도 못했는데 어느 순간 조금 멀어져있다. 이제 등에서 땀이 흐른다. 시간이 무한정 주어지는 건 아닌가 보다.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집중하자, 뭐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액션이 있을 거야. 하지만 내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다시 토끼들이 멀어졌다. 이렇게 한 두 번만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내 눈 앞에서 두 마리가 다 사라져 버릴 거야.




그래서, 생각한다. 안되겠다, 한 녀석은 보내야겠다. 내가 정말, 잡고 싶은 놈을 잡아야겠다. 한쪽을 향해 몸을 돌린다. 뒤통수가 따끔거렸지만 앞에 집중하기로 한다. 뒤에 있는 토끼는 잊기로 한다. 내 눈에 들어온 한 마리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조심스럽게 한 발을 들어 더 많이 갖고 싶은 토끼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다가선다고 해서, 그를 잡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내 손에 얌전히 잡혀줄 것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다. 금방 잡을 수도 있고, 아주 오랜 시간을 뒤에서 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행동이든 하지 않는다면 아예 아무런 희망도 없을 거라는 건 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보기로 결심한다.





*




나는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이것도 저것도 보내기 싫고, 이쪽도 저쪽도 시작할 수도 없어서 멍청하게 눈만 깜박거리고 있었다. 길 잃고 두 마리 토끼를 보며 고민하던 건, 바로 내 모습이었다. 한동안 날 괴롭혀오던 선택이었다. 욕심을 과하게 부리다보니 마음도 몸도 무거워 움직이지 못했던 발걸음이었다.




한쪽을 버리기로 했다. 한 길로만 가보기로 했다. 더 깊은 곳에서 바라고 있던 길로만 가기로 결정했다. 그 길 끝에서 내가 원하는 것과 만나게 될 지 아닐지는 모르는 일이다. 언제쯤 목표지에 다다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천천히 시작하기로 한다. 그래야 둘 다 놓쳐버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을 테니. 한 번에 하나씩만 노력해 보기로 한다. 나의 결정에 박수를.






임경애 기자



‘쓰는 자만이 옳고 세며, 쓰는 자만이 사는 것이라고. 온몸의 각 부위로 쓰라’는 고은 시인을 존경하는, 쓸 때가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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