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3대 사기 관광지’를 가보셨는지. 브뤼셀의 오줌싸개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함께 덴마크 인어상을 꼽는다. 유명세에 비해 막상 가보면 썰렁해서 나온 얘기다.

코펜하겐을 상징하는 작은 인어상은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를 바탕으로 1913년에 만들었다. 로렐라이는 라인 강기슭에 솟아 있는 바위. 물의 요정이 그 위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뱃사람들이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암초에 부딪혀 난파당했다는 전설로 유명하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중 세이렌 신화와 흡사하다.

오디세우스 역시 세이렌의 유혹을 통과해야 했다. 세이렌은 원래 얼굴만 새인 ‘인면조(人面鳥)’였다. 화재 경보를 의미하는 ‘사이렌’의 어원. 그러다가 여성성이 점차 강조되면서 미모와 노래를 무기로 뱃사람을 유혹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커피 잔을 들고 전 세계 사람들을 유혹한다.

스타벅스는 세이렌 신화와 소설 <모비 딕> 이야기를 융합했다. 소설 속 일등항해사 이름이 ‘스타벅’(Stabuck). 커피를 무척 좋아한 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소문이다. 소설 속 그 누구도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인어는 옛날 어부들이 듀공이나 매너티, 물개 등을 보고 상상해 냈다. 모두 포유류라 새끼에게 젖을 먹인다. 이들이 바위 위에서 노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인어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보수적이었던 중세 유럽에서는 여성의 나체를 그리는 게 금기시됐다. 그래서 상상의 동물인 인어를 통해 여성을 표현했다는 설도 있다.

■ 우리나라도 인어가 살았다

인어 전설은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흔한 이야기다. 인어를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한 둘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엄연히 인어 전설이 전해진다. 2017년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전지현은 인어를 연기했다. 이 드라마는 조선시대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 <어우야담>에 나오는 인어 이야기가 모티프다. 만물편(萬物篇) 인개(鱗介) 부분에 인어가 나온다.

김빙령이란 사람이 강원도 흡곡현(지금 고성)의 현령이 되어 바닷가 어부의 집에서 묵었다. 어부에게 무슨 고기를 잡았느냐고 물으니 대답했다. “어떤 백성이 낚시를 하다 인어 6마리를 잡았는데 그중 둘은 창에 찔려 죽었고, 나머지 넷은 살아 있습니다.”

김빙령이 나가 보니 모두 네 살짜리 아이 같았다. 얼굴이 아름답고 고왔다. 콧마루가 우뚝 솟아 있었고, 귓바퀴가 또렷했다. 수염은 누렇고, 검은 머리털은 이마까지 드리웠다. 검은 눈은 빛났고, 눈동자는 노랬다. 몸은 옅은 붉은색이거나, 혹은 온통 흰색이기도 했다.

등 위에 옅은 흑색 문양이 있었으며, 암수 음양 형태가 사람과 한결같았다. 손바닥과 발바닥의 주름살 무늬, 무릎을 껴안고 앉는 것까지 모두 사람과 다름이 없었다. 사람과 마주하자 흰 눈물을 비처럼 흘렸다.

그가 불쌍하게 여겨 어부에게 놓아주자고 청하니 어부가 아까워하며 말했다. “인어에게서 기름을 취하면 품질이 좋아 오래되어도 상하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부패해 냄새를 풍기는 고래기름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김빙령은 인어를 빼앗아 바다로 돌려보냈다. 그랬더니 인어는 마치 거북이가 유영하는 것처럼 헤엄쳐갔다. 그가 이를 무척 기이하게 여기니, 어부가 말했다. “큰 인어는 사람 크기만 한데, 이들은 작은 새끼일 뿐이지요.”

■ 인어를 데려다가 성 노예로 삼다

유몽인은 또 다른 인어이야기를 이어 적었다. “일찍이 들으니 강원도 간성의 작은 포구에서 인어 한 마리를 잡았는데, 피부가 눈처럼 희고 여자 같았다. 어부가 농을 걸자 인어는 마치 오래 묵은 정이라도 있는 듯 웃었다. 마침내 바다에 놓아주니, 갔다 돌아오기를 세 차례 반복하더니 떠났다”고 한다. 어여쁜 인어에게 어부가 음담패설을 하면서 작업(?)을 걸자, 인어가 웃었다 한다. 풀어줬는데도 세 번이나 가던 길을 멈추었다. 왜 그랬을지 자못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유몽인은 서양의 인어처럼, 옛 책에서 읽은 인어의 성적 이미지를 떠올린다. “내가 일찍이 고서를 보니, 인어 남녀는 모습이 마치 사람과 같다고 한다. 바닷가 사람들이 암컷을 잡으면, 못에 기르며 더불어 교접하는데, 마치 사람 같다고 적어서 남몰래 웃었었다. 언제 동해에서 인어를 다시 보게 되려나.” 조선시대 어부의 손에서 풀려나 바다로 떠났던 인어는 그 후 어떻게 살았을까?

■ 동해의 인어는 바다사자?

인어가 두 번이 잡혔던 강원도 북부 지역이나 묘사한 모습을 생물학적으로 살펴보면, 어부가 잡은 것은 바다사자로 보인다. 독도에서 멸종된 강치는 물개과의 바다사자 종류다. 물개는 물개과 중에서 가장 날렵하고 작다. 특징으로는 귓바퀴가 또렷하다.

바다사자는 물개보다 몸집이 커서 굼뜨다. 물범은 앞발이 짧다. 물개와 달리 귓바퀴가 없는 대신 손톱과 얼룩무늬가 짙다. 꿈틀꿈틀 움직이면서 바위 위나 해안에 누워 휴식을 취한다.

조선 시대 울릉도와 독도를 오간 사람들은, 멀리서 바다사자를 보고 사람으로 오인하기도 했다. “인어에게서 기름을 취하면 품질이 좋다”는 어부의 말로 짐작하면 바다사자일 가능성이 크다.

독도 바다사자는 일제 강점기 기름과 가죽 채취용으로 멸종됐다. 멸종 위기에 몰린 백령도 점박이물범은 바다표범 중 가장 작은 종이다. 점박이물범의 천적은 상어가 아니라 ‘사람’이다.

<어우야담>은 유몽인이 민간에 떠도는 일을 기록한 야담집. 그의 호 ‘어우’에서 이름을 딴 책이다. 인어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유몽인은 과거에 응시해 장원을 한 수재였고, 학문과 문장에 뛰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외교 업무에서도 탁월한 실력을 보여 선조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

■ 한강에도 인어가 살았다

한국판 인어 이야기는 몇몇 군데에 더 존재한다. 인천 앞 ‘장봉도’라는 섬에도 인어 전설이 내려온다. 어느 날 그물에 인어가 나왔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가 긴 여자 인어였다. 어부들은 그 인어를 측은히 여겨 바다로 돌려보냈고, 덕분에 한동안 만선을 했다는 얘기다. 장봉도 선착장에는 제법 관능적(?)으로 제작된 인어상이 있다.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는 황옥공주 인어상을 세웠다. 동백섬에는 먼 나라에서 시집온 인어공주에 대한 전설이 전한다. 거문도에도 ‘신지끼’란 인어 이야기가 있다. 인어 전승이 내려오는 지역을 살펴보면, 과거 바다사자나 물범 또는 상괭이 서식 지역이 대부분이다.

우리 선조들은 바다사자나 상괭이를 ‘형사인’(形似人) 즉, 사람과 닮은 인어 모양으로 간주했다. 1814년 다산 정약용의 친형인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5가지로 구분해 놓았다. 그중 서해와 남해에 사는 상광어(尙光魚)와 해돈어(海豚魚)를 인어처럼 여겼다.

여기서 말하는 ‘상광어’는 바로 상괭이, 해돈은 일반 돌고래를 일컫는다. 상괭이는 ‘물빛에 광택 난다’고 붙은 이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미소 고래’, ‘웃는 고래’라고 불린다. 둥근 머리, 작은 눈, 매끈한 등을 가졌다. 돌고래와 달리 등지느러미가 없는 게 특징인 토종 돌고래다.

보통 수심이 얕은 연안에서 산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기수역에는 상괭이가 좋아하는 새우 등 먹이가 풍부하다. 밀물 때면 강 중류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역사 문헌에서도 한강 등에서 상괭이가 나타난 기록을 발견할 수 있다. 1405년(태종 5년) 11월 20일, 한강 양천포(가양동) 백성들이 밀물에 떠밀려온 괴이한 큰 고기 6마리를 잡았다. 물고기는 소가 우는 소리를 냈다. 비늘이 없었고 입은 눈가에, 코는 목뒤에 붙었다.

실록에 기록한 ‘괴이한 6마리 물고기’는 어류가 아니었다. 바로 상괭이를 가리킨다. 2~3마리씩 가족 단위로 다니다가 떼로 붙잡힌 것 같다. 17세기 조경남의 <속잡록>에는 지금의 난지도에 나타난 고래를 서울 사람들이 잡아 기름을 짜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 윤원형과 정난정을 잡은 토종 돌고래 상괭이

명종 시절, 수렴청정을 한 명종의 모후 문정왕후는 왕 이상의 치맛바람을 휘둘렀다. 그녀의 남동생이자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 등 외척의 권세 또한 하늘을 찔렀다. 윤원형은 조선 초 최악의 간신으로 평가된다. 노비 출신으로 윤원형의 애첩이 된 정난정은 사극의 단골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어우야담>에도 상괭이와 관련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실렸다. 윤원형이 몰락하기 직전 어느 날 한강 두모포에서 한 어부가 큰 물고기를 낚아 강가로 끌고 올라왔다. 생전 처음 보는 물고기가 한강까지 올라와서 잡혔다는 사실에 다들 놀라서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누군가 이를 보고 점을 쳤다. 윤원형 이름의 ‘형’(衡) 자를 파자하면 양쪽에 다닐 행(行), 가운데 아래 큰 대(大)가 나온다. 나머지 부분은 물고기 어(魚)에서 연화발(火→灬)이 빠진 글자가 된다. 지금 크고(大) 이상한 물고기(魚)가 잡혀 올라온(行)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

곧 윤원형의 운명이 다해, 잡힌 물고기처럼 몰락할 징조라고 여겼다. 과연 그로부터 3일 후 정말 문정왕후가 사망하면서 윤원형의 몰락이 시작됐다. 신기한 것은 <어우야담> 이야기가 실제 사실에 가깝다는 것. 1565년(명종 20년) 4월 3일 실록에도 한강 두모포 어부가 상괭이로 보이는 큰 물고기를 잡은 정황이 나온다.

“이때 대비 마마가 편치 못해 붕어를 먹고 싶어 하므로, 사람을 시켜 두루 구했다. 마침 두포의 어부가 그물로 어떤 물고기 하나를 잡았는데 그 크기가 배만 했다. 여럿이 힘껏 강가에 끌어내 놓고 보니 길이가 약 4m, 너비가 1m 정도였다. 흰 빛깔에 비늘이 없고, 턱 밑에 지느러미 세 개가 있으며, 꼬리가 키처럼 컸다. 머리 위에 구멍이 있어 물을 빗물처럼 내뿜었다. 눈과 코가 물고기처럼 생기지 않았다. 강가의 늙은 어부들도 그것이 무슨 고기인지 알지 못했다”

실록에 나온 두모포(豆毛浦)는 한강 동호대교 북쪽에 있던 내륙의 포구. 옥수동쪽 중랑천과 물이 합쳐 두물포라고도 했다. 세종 때 대마도를 정벌한 원정군을 상왕이던 태종과 세종이 사열하던 곳이기도 하다. 요즘도 한강으로 상괭이가 올라왔다가 수중보에 걸려 폐사하는 일이 종종 기사에 나온다.

■ 인어 상실의 시대, 다시 ‘미소 고래’ 상괭이를 기다리며

동서양 인어 전설에는 대개 인간과 인어의 사랑이 등장한다. 외국의 인어들은 남자를 유혹해 인생을 망치게 한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 인어들은 사람을 해쳤다는 기록은 없다. 잡은 인어를 풀어주자 은혜를 갚었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심청전>처럼 용궁 신화의 이종 버전으로 고래나 인어를 취급한 탓이다.

인어는 인간과 바다의 경계에 선 신화 속 산물이다. 인어 전설에는 인간의 공간과 바다의 세계가 교차한다. 언제나 인간의 욕망은 인어의 순수함에 대비된다.

인어로 오인한 독도 바다사자는 멸종된 지 오래다. 이제는 한강뿐만 아니라 가까운 바다에서도 상괭이를 보기 힘들다. 연간 약 천여 마리 이상의 상괭이가 혼획과 환경오염으로 죽어가고 있다. 바다 쓰레기 문제 역시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아마도 바다가 이런 상태면, 설령 인어가 있어도 살기 어려울 것 같다.

‘미소 고래’, 상괭이가 웃으면 바다도 웃는다. 물은 흘러야 썩지 않는다. 그 언젠가 상괭이가 돌아오고, 인어가 오가는 ‘한강의 기적’은 다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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