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기자가 만난사람_ 국립군산대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화백

[서울=내외뉴스통신] 김태성 기자=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역주행’이 열풍이다. 그룹 EXID의 노래 ‘위아래’로부터 시작된 가요계 역주행 바람은 영화계로 넘어왔다. 지난해 연말 ‘보헤미안 랩소디’의 인기는 실로 굉장했다. 이 영화는 10월에 개봉했지만, 점차 입소문을 타 연말에 그 인기가 절정을 치달았다. 관객 수도 무려 1000만 명에 육박했다. 이처럼 가요계와 영화계를 강타한 역주행 열풍은 미술계에도 이어졌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예술가 이건용 화백이다. 70대 원로 작가의 작품이 국내외 미술계는 물론 젊은 층을 열광케 하는 건 실로 오랜만의 일이다. 한국 현대사와 맥을 같이 하며 사회 깊숙이 묻혀있던 그의 파격적이고도 시의성 넘친 작품들이 비로소 다시금 재조명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수십 년을 넘나드는 진정한 역주행을 진행 중인 전위예술의 대가 국립군산대학교 명예교수 이건용 화백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만났다.

 

 

이건용 화백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만난 건 간단한 이유였다. 현재 그의 작품이 이곳에서 전시를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중후반 아시아 현대미술을 사회관계 속에서 조망하는 국제기획전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고 있으며, 그의 작품 ‘건빵 먹기’와 ‘신체드로잉’의 구현 과정까지 전시되고 있다. 이건용 화백은 20세기 중반 이후 미술의 정의가 변화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가장 빛나던 작가 중 하나였다. 홍익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회화나 조각 같은 전통 매체 대신 신체나 일상의 재료를 이용하여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그 시대를 반추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이는 발상의 전환이자,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이후에도 50년이 넘도록 그만의 실험정신을 이어오며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확보하는데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는 평이다. 그는 ‘건빵 먹기’, ‘장소의 논리’, ‘신체드로잉’, ‘달팽이 걸음’, ‘신체항’ 등 기념비적인 작품을 다수 선보였다. 또한 2014년 한국현대미술작가시리즈에 초대되었으며, 최초로 6개월간 전시가 계속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만들지 않은 자연의 일부를 갖다놓다

현대미술의 묘미는 의외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혀 미술품처럼 보이지 않는 의외의 사물이 예술작품으로 제시될 때의 카타르시스는 감히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이건용 화백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작품은 의외성과 그 안에 담긴 강렬한 메시지로 지금도 생명력을 유지하며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저는 처음부터 미술을 무언가 자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인식하였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게 바로 ‘신체항’이라는 작품입니다. 인간이 만든 것을 반드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전시장이 생겼습니다. 저는 전시장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서 이에 대한 의문제기를 신체항이라는 작품을 통해 한 것입니다. 신체항은 만들지 않은 자연의 일부를 갖다놓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만든다는 게 무엇이며 전시장이라는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끝없이 던진 것이죠.”

그의 대표작 신체항은 197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술협회전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이후 1973년 파리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제8회 파리국제비엔날레에 출품돼 굉장한 호응을 얻었다. 신체항은 흙에 뿌리내린 나무를 정방형의 지층과 함께 떠내어 마치 전시장에 그대로 옮긴 듯한 작품이다. 기존의 미술 가치관을 지닌 사람일수록 이 작품을 봤을 때의 충격은 곱절이 됐고,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관념적인 미술 경향에서 벗어나 만들지 않은 자연의 일부를 갖다놓은 이건용 화백의 혁신적인 작품세계가 열리던 순간이었다.

 

작가의 몸 자체가 예술 매체가 되다

이건용 화백은 끊임없이 색다른 그림 그리기를 시도한다. 그 방점을 찍은 방법론이 바로 ‘신체드로잉’이다. 그는 그림은 왜 화면을 마주 보면서 그려야만 하는가에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윽고 이건용 화백은 화면 뒤에서 또는 화면을 등지며 자신의 신체의 흔적을 그림 속에 담아냈다.

“1976년부터 신체드로잉이라는 작품 활동을 했습니다. 그전까진 머릿속에 있는 작가의 이미지나 대상을 그리는 식이 전부였습니다. 저는 배재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논리학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이 수업이 다른 학교에는 없었고, 저는 자연스레 현대철학을 접하게 되면서 ‘그린다’라는 문제가 실제적으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탐구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때 신체를 움직여서 표현이 되는 현상을 미술의 중요한 포인트로 착안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달팽이 걸음’은 이건용 화백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작품이다. 맨발바닥으로 달팽이처럼 느리게 움직여 디지털 시대 문명의 빠른 속도를 가로질러 보자는 의미를 담은 이 작품은 1979년 상파울로 비엔날레에서 발표되어 대중과 평단의 엄청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또 다른 작품 ‘건빵 먹기’는 팔에 깁스를 하고 건빵을 먹는 퍼포먼스다. 먹는 것마저 차단하고 뺏고 수단화한 그 당시 사회를 이러한 퍼포먼스로 비판한 것이다. 실제로 1975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장 명의로 귀하가 하는 이벤트는 사이비 전위미술이며, 금후로는 당관에서 할 수 없다는 공문을 받았으며 1976년 봄에는 체제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안가에 끌려가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그 이후 약 10년간 고문 후유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는 계속해서 시대에 저항하는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것이 바로 예술의 존재이유였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작가의 몸 자체가 예술 매체가 되었다. 이건용 화백의 발자취에 유독 예술혼이 깃들어있는 건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몸으로 작품 활동을 펼쳤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도 다수 개인전 개최 예정

캔버스를 벗어난 전위예술이 각광을 받는 요즈음 그의 작품이 다시 국내외 미술계에서 집중조명을 받는 건 새삼 놀랄 일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 호주 시드니에서 개최된 A4 아시아현대미술센터 전시에서 ’동일면적‘ 개인전과 현지 세 명의 작가와 콜라보레이션을 한 것은 물론 세계3대 갤러리 중 하나로 평가받는 페이스 갤러리의 중국 베이징 지점에서 개인전을 연 바 있다. 올해도 이건용 화백은 총 3번의 개인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우선 현재 대구 리안 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Body+Scape=BodyScape’전을 비롯해 6월에는 서울 페이스 갤러리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이어진 삶 이건용’전 등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그는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세상에 눈뜨다: 아시아 미술과 사회, 1960s-1990s’ 전시를 하고 있으며, 오는 6월 전라북도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북경발 전라특급’전을 비롯한 많은 그룹전에도 참가할 전망이다. “제 아버지는 목사님이셨습니다. 저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향후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작품 활동에 지속적으로 매진하는 동시에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 50개의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현재 이미 20개가 넘는 교회를 세워 선교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건용 화백은 이밖에도 월드비전 등을 통해서 상황이 어려운 지역 곳곳에 수천만 원씩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나눔이 곧 행복이라고 그는 믿기 때문이다. 국립 군산대학교 교직을 정년퇴임하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으며 더욱 행복한 마음으로 작품 활동 중인 이건용 화백. 버려진 포장 상자를 활용한 신체드로잉을 비롯해 여전히 빛나는 상상력으로 작품세계를 확장하고 있는 이건용 화백의 끝없는 예술적 성취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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