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사탕도 아니고. 우리 건국시조들은 줄줄이 알(卵)에서 태어났다. 고대에는 사철과 사금 알갱이를 ‘알’이라 불렀다. 주몽, 박혁거세, 남해왕, 김알지, 석탈해 등의 행적 속에는 제철 기술과 관련한 은유적 묘사가 담겼다. 달리 해석하면,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우물(나정․알영정)은 제철로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김수로왕 탄강신화 ‘구지가’에 나오는 알은 또 어떠한가? 알(卵)에서 나온 수로왕은 바꾸어 말하면, 도가니에서 쇠(金)가 나왔다는 말과 같다. 최초 제철 기술은 모래 속에 함유된 사철과 사금을 녹이는 것부터 시작했다.

고온에서 용융상태의 쇳물은 시각적으로 노른자와 흡사하다. 언어학적으로도 알은 ‘태양’에서 유래한다. 알은 제철로의 상징이기도 하다. 알타이어에서 ‘알’은 황금. 고대 철은 황금보다 값어치 나갔다. 그래서 ‘황금’과 대비해 ‘쇠금’이 아니던가.

대규모 벼농사는 필연적으로 철기 생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농기구와 무기를 만들면서 지배자가 탄생한다. 부족국가였던 청동기를 거쳐 철기시대 비로소 중앙집권적 국가가 생겼다. 모든 고대 국가들이 질 좋은 철기를 얻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영토를 확장하고 경제적 부를 차지한 자가 백성의 신망을 얻고, 왕이 됐다. 고구려 철갑 기마병 개마무사 무장에는 30kg 이상 철이 필요하다. 그만큼 철 생산 능력이 있었다는 증거다.

신화 속 변신술은 일종의 힘과 세력간 대결인 경우가 많다. 부여의 해모수도 물개와 승냥이로 변하는 등 뛰어난 변신술을 이용해 강의 신(하백)의 딸을 얻는다. 주몽의 어머니 유화부인이다. 유목민족과 수렵(어획) 민족간 결합을 상징한다.

<삼국유사>는 워낙 알레고리(allegory)적 표현이 많다. 마치 단군신화에서 사람이 되고자 찾아온 곰과 호랑이를 각각 곰 토템과 호랑이 토템 부족간 싸움으로 해석하는 경우와 같다.

■ 무쇠를 가진 자, 권력을 잡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렸다. 김수로왕이 금관가야를 세우자, 석탈해가 쳐들어와 임금 자리를 내 놓으라 한다. 수로왕은 석탈해와 술법으로 겨뤄 이긴 사람이 왕이 되자고 했다. 둘의 둔갑술 싸움은 철기 문명 간 세력 다툼을 암시한다.

먼저 석탈해가 매, 수로왕은 순식간에 독수리로 변신했다. 석탈해가 첫 판은 졌다. 그러자 석탈해는 참새, 수로왕은 새매로 둔갑했다. 둘째 판도 수로왕이 이겼다. 석탈해는 엎드려 항복하고 바다로 도망간다. 수로왕이 500척의 수군을 보내 쫒았으나 석탈해의 배가 신라 쪽으로 달아났다.

<① 라운드 : 매 Vs 독수리>
매는 보통 무쇠.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만드는 주철(선철) 공법을 말한다.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서 찍어내듯 기초적인 제철 기술을 석탈해가 펼친 것. 무기로 적당하지 않은 주철은 주로 농기구로 사용됐다.

수로왕은 하늘의 제왕인 검독수리로 변한다. 곧 단철 공법이다. 주철을 불에 달구어 수없이 두드려서 순간적으로 물에 담그는 것을 반복한다. 대장간에서 흔히 보는 담금질로 보다 단단한 철기를 만드는 고도의 기술이다.

<② 라운드 : 참새 Vs 새매>
두 번째 겨루기에서 석탈해는 작은 참새로 변신한다. 작은 칼을 만드는 기술. 여기에 대응해 수로왕은 새매로 맞선다. 새매가 활공 비행을 하는 것처럼 평평한 모양의 쇠를 나타낸다. 날개를 활짝 핀 맹금류를 닮은 칼은 바로 큰 칼을 만드는 기술이다. 석탈해 신화에는 숯과 숯돌이 등장한다. 또 자신이 대장장이라고 밝히는 것도 주목된다.

한국과 일본의 고대어 연구에 정통한 전 포스코 인재개발원 이영희 교수는 “석탈해와 김수로는 단순한 변신술 싸움이 아니다. ‘새=쇠’로 대입해 보면, 제철 기술이 뛰어난 김수로왕의 승리가 당연하다”고 해석했다. 가야는 ‘철의 왕국’이었다. 가야가 우리나라 고대 역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도 바로 우수한 철 생산 때문이었다. 가야는 발해 만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여러 나라에 철을 수출했다.

■ 일본에 제철 기술을 전파한 ‘연오랑 세오녀’

고대 제철 기술은 철저한 국가 기밀 사항이었다. 대부분 문헌에서는 제철에 관한 일들을 직접 기록하지 않았다. 최첨단 제철 기술을 가진 이는 권력의 중심에 섰다. 때로는 제철 기술 때문에 권력다툼이나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됐다.

이 같은 사례는 화약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실전되었던 화약 제조기술은 고려 말 최무선이 재발명한 이래 이순신 장군 때까지 최고 국방 기밀이었다. 오죽하면 조선 초 국가 기본의례를 규정한 <국조오례의>에 화약과 화약무기 제조법을 숨겨놓았을까. 엉뚱하게 <국조오례의> 한편에 총통과 신기전, 화차, 화포 등 각종 무기 제조법을 담았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는 고대 한일관계 미스테리를 밝혀줄 한편의 서사시다. 이들은 일본에 제철법을 전한 선진 기술자다. 일본에서 신라 명신으로 추앙받는 ‘아메노히보코’와 비단 짜는 여신 ‘히메고소’를 연오랑과 세오녀로 풀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 <일본서기>에는 신라왕자가 일본에 와서 작은 왕국의 왕이 되었다고 적었다. 두 나라 기록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고, 바위 배를 타고 간 것도 같다. 부부가 떠난 곳이 포항 영일현. 신라왕자 이름은 ‘천일창’으로 둘 다 해가 들어갔다. 이런 점 등을 살펴보면, 아마 동일 인물이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표현했다. 고급 제철 기술자들이 떠나자 신라는 무척 당황했다. ‘일월(日月)의 빛을 잃은 것’은 대장간의 불이 꺼졌다는 은유적 표현. 세력이 커 가는 신라 옆에 붙어있는 것보다 질 좋은 철산지를 찾아 일본으로 이주했다고 본다.

연오랑의 ‘늘일 연(延)’자는 두드려 펴는 기술, 세오녀의 ‘가늘 세(細)’자는 정밀 단조를 의미한다.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에서 신이 된 이유는 우주선을 쏘아올린 것과 같은 첨단기술을 전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산업혁명이요 강철왕 카네기이자, 포항제철을 일군 박태준인 셈.

■ 까마귀는 고대 제철집단의 상징

연오랑 세오녀가 제철집단이라는 것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 이름 중 ‘오(烏)’자에 주목해보자. 까마귀와 더불어 ‘검다’는 뜻도 있다. 가물치는 본래 검은 물고기를 뜻한다. 한자로는 오어(烏魚). 오골계라는 닭도 그렇다. 까마귀(烏)·뼈(骨)·닭(鷄)이 아니라 온통 검은 닭이다. 율곡 이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강릉 오죽헌(烏竹軒)이다. ‘검은 대나무가 있는 집’이라는 뜻. 지금도 오죽헌에 가면 오죽을 볼 수 있다.

‘오’를 검다(黑)로 본다면, 제철기술과 쉽게 연결이 된다. 대장장이는 영어로 ‘blacksmith’ 금과 은, 구리 등 일반 금속 세공인은 ‘smith’라 부른다.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는 왜 ‘검다(black)’ 라는 말이 붙었을까?

고대에는 철을 녹이거나 정제하는 야철 과정에서 숯을 사용했다. 늘 숯이나 철광석이 어우러진 대장간 주변이 검게 비춰졌던 데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옛 제철 지역에도 검은색과 관련한 명칭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시대 제철단지 유적이 남아있는 충북 진천군 초평면에는 ‘까막골’이란 지명이 그런 예다. 고구려가 점령 당시에는 ‘검은 들판’이란 ‘거물내’로 불렀다. 신라시대 지명인 ‘흑양군’도 ‘검은 들판’이다. 진천 인근 괴산군 ‘감물면’도 대규모 대장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검은 들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철이다. 진천의 흙에는 철의 성분이 포함돼 있고 그래서 검다. 또 이 때문에 진천의 쌀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신라 아달라 이사금 4년(서기 157년) 2월에 “처음으로 감물현과 마산현을 두었다”고 나온다.(삼국사기) 동해 바닷가 감물현이 연오랑과 세오녀가 살던 곳. 천자문을 읽을 때 ‘하늘 천天, 따 지地, 가물 현玄, 누루 황黃’에서 그 ‘가물’이다. 지금은 ‘검을 현’으로 읽지만, 예전에는 ‘가물’ 또는 ‘감물’이라 읽었다.

신라시대 영일현은 ‘큰 까마귀 마을’이란 ‘근오지현(斤烏支縣)’이었다. 상당한 규모 제철집단이 있었다는 얘기다. 형산강은 사철이 풍부한 강이었다. 쇠가 끓는 붉은 용광로는 태양이나 마찬가지. 검은 까마귀는 무쇠를 만드는 제철기술이기도 하지만, 태양으로 비유되는 제철기술의 수장이다. 그래서 연오랑 세오녀가 일본으로 간 뒤, 신라의 태양이 빛을 잃은 것이다.

■ ‘삼족오(三足烏)’의 정체는 제철기술

삼족오는 다리가 셋, 머리엔 뿔이 달렸다. ‘오’는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검다’는 의미, 다른 하나는 길조로서 ‘까마귀’다. 태양에 살면서 천상의 신들과 인간세계를 연결해주는 신성한 새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 부여 건국신화의 동명, 고구려 주몽, 신라 박혁거세, 가야 김수로왕 등은 하늘과 해의 자손임을 자임했다.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할 때, 또 백제 온조왕에게는 가장 충실한 신하 ‘오이(烏伊)’와 ‘오간(烏干)’이 동행했다. 제철기술을 가진 수하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신라 17관등에도 대오(大烏)·소오(小烏) 등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간 직위가 있다.

삼족오는 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흔히 고구려군 깃발 문양으로 등장한다. 삼족오를 고구려만의 고유 상징으로 잘못 생각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거슬러 올라가면 가루다, 금시조에서 내려온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고구려 벽화에서 볼 수 있지만, 딱히 고구려만이 삼족오를 왕실이나 나라의 상징으로 썼다는 정황은 없다. 동북아에서 삼족오가 ‘해’의 상징이기 때문에 무덤에도 하늘을 구성하는 해의 상징으로 쓰였을 뿐이다.

일본 신화에도 ‘야타가라스’라는 삼족오가 있다. 태양의 화신이다. 동쪽 정벌에 나선 왕의 군대를 위해 길 안내 도우미를 했다. 삼족오는 일본 고대 고분과 각종 유물에서도 출토된다. 천황이 즉위식 때 입는 곤룡포에도 자수로 놓여 있다. 제철집단의 수장은 곧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상징성 면에서 삼족오가 일본왕실과 관련돼온 것으로 보인다.

삼족오는 늘 북방 민족의 침략을 받아 남하해야 했던 중국 한족에게는 불길한 징조로 간주된다. 철(鐵)의 옛글자는 ‘金(쇠)+夷(이)’로 표현했다. 동이족이 만든 쇠라는 것. 중국 전국시대 유적지 가운데 철기가 출토된 20여 군데는 대부분 고조선 영역이다. 우리 선조가 중국 한족 보다 철기를 먼저 쓴 증거이기도 하다. 한중일 삼족오에 얽힌 설화는 ‘철의 전쟁’ 메타포였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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