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평범남’들의 희망인 녹색 도깨비 슈렉.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중 하나다. 어벤저스 프리퀄처럼 피터팬, 피노키오, 신데렐라, 백설공주, 빗자루 마녀 등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전통적인 결말을 뒤집는 이야기 구조와 못생긴 캐릭터로도 재미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다.

도깨비 하면 떠오는 게 무엇일까? 한중일이 서로 다르다. 고대 중국에서는 권력자의 무덤을 지키는 짐승 얼굴을 가진 용사나 상상의 맹수로 나타난다. 용인지 사자인지 도무지 헷갈린다. 일본에서는 “나쁜 짓을 하면 무서운 ‘오니’가 온다”며 아이들을 달랠 때 등장한다.

뿔난 머리, 튀어나온 송곳니, 붉거나 푸른 피부, 원시인 복장, 못이 박힌 철퇴. 아마 우리 의식 속에 자리 잡은 흔한 도깨비 이미지가 아닐까? 이 모습은 불교가 전래되면서 부처를 수호하는 ‘야차’에서 비롯됐다. 그러다가 점점 이미지가 격하되면서 지옥에 떨어진 인간을 괴롭히는 존재로 인식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도깨비 전승이 존재한다. 삼국시대에 이미 도깨비 신앙이 존재했다. 도깨비는 초자연적 힘을 가진 ‘신’의 하나였다. 신은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공포나 경외의 마음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개중에는 인간이 아닌 사물 형태도 많다.

그래도 도깨비를 신이라 하기엔 왠지 위엄이 부족해 보인다. 맞는 말이다. 우리 전통신앙에는 집을 지키며 상량에 깃들어 사는 성주신, 아기를 점지하며 안방에 거주하는 삼신할미, 부엌의 길흉화복을 맡아보는 조왕신, 뒷간에 거주하는 측신 등 다양한 가신들이 존재했다.

도깨비는 낮은 레벨 머털 도사 정도가 딱이다. 가까이하기에 너무 멀고 높은 ‘최고 존엄’이 아니기 때문. 개나 소나 다 넘어 다니는 고개에도 나타나고, 한밤중에 불쑥 사람 눈에 띄기도 한다. 때로는 미련하게 사람의 꾀에 넘어간다.

귀신은 사람이 죽어 생긴다. 요괴는 성질이 고약해 사람을 해친다. 도깨비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장난이 심할 뿐이지, 사람을 해칠 만큼 악독하지 않다. 무섭거나 괴팍한 도깨비의 부정적 성격은 후대에 형성된 것. 오늘날 여학교 앞에 종종 출몰하는 바바리 맨은 벌건 대낮에 나타나는 낮도깨비 후손임에 틀림없다.

■ 도깨비 같은 도깨비 아닌 치우천왕

‘귀면와’는 삼국시대부터 조선까지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귀신 귀(鬼) 자 때문에 도깨비 모습이라는 설이 있다. 일단 도깨비는 귀신이 아닐뿐더러, 이름부터 논란이다. 용 문양의 ‘용면와’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용면와를 추녀마루 기와 등에 쓴 이유는 물을 상징하는 용을 장식함으로써 화마(火魔)를 막으려 했다.

‘귀면와’가 중국의 ‘도철문’에서 유래해 탄생했다는 설이 있다. 상상의 맹수인 도철이라는 괴물과 흡사하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에서는 이 도철문을 바탕으로 탈을 만들어 연극도 하고, 설화도 많은 편이다.

2002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의 공식 캐릭터였던 ‘치우천왕’이 귀면 문양을 모델로 삼았다는 설도 있다. 치우천왕이 도깨비의 왕 또는 조상이라는 주장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중국 한나라 때 화상석에 조각된 치우의 형상과는 거리가 멀다. 치우설은 그가 중국 신화에서 천하무적의 동이계 영웅이었기 때문.

치우의 활약상은 마치 트로이 전쟁처럼 역사와 신화 사이를 오간다. 귀면와나 치우천왕의 원조는 사자견 형상이라는 주장도 주목된다. 주로 액운을 막는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사악한 잡귀를 몰아내거나 집을 지키는 역할을 가진 반면 도깨비는 재물신의 능력이라면 모를까 벽사 기능은 없다.

도깨비의 옛 이름은 ‘돗가비’. 세종대왕 때 편찬된 <석보상절>에 한글로 “돗가비를 청하여 복을 빌어 목숨을 길게 하고자 하다가 마침내 얻지 못하니…”라는 구절이 나온다. 원래 도깨비는 사람들이 소원을 비는 신적 존재였던 것이다.

‘독각귀(獨脚鬼)’는 다리가 하나라거나 짐승의 머리를 가졌다. 도깨비와는 아무 관련 없다. 순우리말 ‘돗가비’를 표기하려 하니, 마땅한 한자어가 없어 중국 ‘외다리 귀신’ 이름을 빌렸다. 일부 백과사전에서도 이 같은 한자 표기상 차용을 고려하지 않고, 독각귀를 도깨비의 옛 이름으로 설명한다.

독각귀는 이름만 빌려줬을 뿐 도깨비와 전혀 다르다. 조선 중기 이후 도깨비의 외연은 점점 넓어진다. 민간신앙과 불교문화가 섞이면서 뿔 달린 도깨비도 등장하는 등 혼용되기 시작한다.

도깨비 설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혹부리 영감’ 이야기다. 마음씨 착한 영감이 도깨비 덕택에 혹을 떼고, 마음씨 나쁜 혹부리 영감은 혹을 더 붙이게 됐다. 우리나라 도깨비의 공통점은 술을 좋아하고 신나게 잘 논다. 또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하다.

자신을 푸대접하면 심술을 부리지만 반대로 호의를 베풀면 크게 보답한다. 사람들은 도깨비의 이러한 점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대부분 설화는 의리를 지키는 도깨비와 인간을 대비시켜 인간의 이기심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 우암 송시열 외손자가 강 건너는 걸 도와준 착한 도깨비

도깨비가 신이라고 치자. 그럼 무엇을 관장하는 신이었을까? 도깨비는 기본적으로 ‘재물신’이다. 백성들이 궁핍할 때 언젠가 부족함을 채워줄 희망을 주는 풍요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도깨비불이 빛나는 땅이 풍년이라 믿고, 어촌에서는 도깨비불이 사라진 자리에 물고기가 많이 모인다고 믿었다.

‘도깨비 조화 부린다’는 말처럼 도깨비는 어마어마한 힘과 능력으로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인다. 하룻밤 사이에 다리를 놓거나 집을 짓는 일쯤이야 누워 떡 먹기. 사람은 도깨비와 우호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물질적 부를 얻었다. 속담에서도 벼락부자가 된 사람을 ‘도깨비 사귀었다’고 한다.

도깨비가 공동묘지나 무덤가에 산다는 이야기도 많다. 도깨비불은 시신의 뼈나 오래된 나무에서 나오는 인이 산화되어 나타난다. 도깨비불은 도깨비가 지닌 ‘생산력’과 연결되어 그곳에 조상 묘를 쓰면 집안이 번성한다고 믿었다.

도깨비는 또 큰 인물이 될 사람은 미리 알아봤다. 일종의 ‘수호신’으로서 어릴 때부터 돕거나, 보호해줬다. 이런 설화는 주로 실존 위인들의 출신 지역에서 ‘작은 신화’로 전승됐다. 예를 들어 충청도에서는 우암 송시열의 외손자 권이진에 대한 이야기가 전한다.

유회당 권이진은 탄옹 권시의 손자, 우암의 외손자. 어려서는 숯뱅이 마을(현 대전 서구 탄방동)에서 자랐다. 남달리 총명했던 그는 어느 날, 갑천 강 건너 회덕 외가댁에 갔었다.

홀로 어두운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갈 때다. 우암은 아홉 살 외손자의 담력을 시험해 보려고 종을 불러 멀리 미행 시켰다. 권이진이 ‘오물(梧井)’(현 대전 대덕구 오정동)에 이르자, 갑자기 도깨비불이 나타났다. “여기 권판서 가신다”고 소리치며, 길 안내를 맡았다. 집 근처까지 와서는 홀연 사라졌다.

미행했던 종이 돌아와 이 사실을 고하자 우암은 “아! 저 애가 내 자리를 이을 줄 알았더니 겨우 판서냐?”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훗날 호조판서를 역임한 권이진은 무쇠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하여 무쇠골 또는 수철리(水鐵里)라 부르던 대전 무수동에 세거했다.

■ 도깨비의 정체는 무쇠를 두드리는 대장장이

‘돗가비’는 ‘돗(독)’과 ‘아비’의 합성어. ‘아비’는 ‘싸울아비’ ‘장물아비’에서 보듯 직업에서의 고수인 장인을 일컫는다. ‘돋가비’라고도 하는데, 키가 무척 커서 우러러 보이는 거인 같은 존재다. 앞의 ‘돗’은 불이나 씨앗 종자. 도깨비 정체는 바로 이 ‘돗’에서 드러난다.

또 ‘독’은 쇠를 녹이는 대장간 용광로 혹은 큰 그릇을 뜻한다. 황순원 소설 <독 짓는 늙은이>나 장독대 등에서 이름이 남아있다. 이를 종합하면, ‘독아비(돗가비)’는 ‘철을 다루는 대장장이’를 지칭한다. 도깨비란 말이 ‘독아비’로부터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고대 제철의 고장이었던 일본 중부 아이치현(愛知県) 등에서는 매년 11월 ‘하나 마쓰리’(花祭り)가 열린다. 붉거나 파란 옷을 입은 오니들은 색색 종이로 접은 꽃을 매단 금줄 아래서 복방망이를 휘두르며 춤춘다.

이들 오니 역시 고대 제철소에서 일하던 ‘돗아비’를 상징한다. 추수가 끝나 헌 농기구를 거두어들일 때와 새 기구로 만들어 나누어줄 때 무쇠 감사제가 열렸고, 그 풍습이 오늘날 축제로 전해져 온다.

도깨비는 우선 몸집이 크고 힘이 장사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특징은 ‘방망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 만능 방망이야말로 도깨비를 상징하는 도구다. 원래 도깨비방망이는 평범한 나무방망이였다.

울퉁불퉁한 철퇴와 같이 ‘공격적 무기’가 아니었다. 절굿공이나 빨랫방망이 등으로도 나타난다. 주로 여성 생활용품인데다 기다란 모양이라 일부에선 남성성, 곧 출산력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도깨비는 메밀묵을 좋아한다.

실제로 도깨비에게 고사를 지낼 때 메밀묵이나 메밀떡 등을 올렸다. 그런데 왜 하필 메밀일까? 메밀은 쌀과 달리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기근이나 흉년이 들 때 심었다. 백성들의 주식 중 하나였다. 마른 땅에서 키운 메밀로 제를 올리는 모습을 감안하면, 과거 도깨비가 어떤 의미였는지 감이 온다. 좋아하는 꽃은 당연히 메밀꽃.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도깨비는 존재할까? 흉측한 뿔에 그로테스크한 도깨비 모습은 드라마 하나로 한순간에 깨졌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영혼이 육체를 지배하듯, 우주에 신과 같은 존재들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도깨비 나라의 사랑엔 국경도, 이승과 저승도 없다. 무엇보다 도깨비는 능력자이자 상남자다. 금 나와라 와라 뚝딱! 은 나와라 와라 뚝딱!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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