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내외뉴스통신] 이한수 기자 = 지난 2015년 해방 70주년을 맞아 한겨레TV에서 특집 다큐멘터리 '법비사 : 고장 난 저울'을 방영했다. 현대사의 주요 포인트마다 등장하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삶을 따라가며 대한민국을 사법 엘리트의 역사를 추적해 이슈가 됐다.

이 다큐멘터리를 소재로 한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블랙리스트 사태로 촉발된 연극계 정치극 페스티벌 ‘권리장전’에서 오는 7월 17일부터 21일까지 공연될 '춘의 게임: 나쁜 놈들의 대한민국 현대사'의 한재훈 연출가와 유성곤·강희만 배우를 만나봤다.

Q. 간단히 작품 소개를 부탁드린다.
한재훈 연출가(이하 한) : ‘법비사 : 고장 난 저울’을 베이스로 1년 정도 각색해 만든 작품이다. 각 정권에 권력이 생길 때마다 늘 조력자가 있었다. 대부분 한때를 풍미한 사람들이지만, 그중 거의 유일하게 유신 때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권력을 유지하고 조력자 역할을 한 사람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이 사람의 이야기로 대한민국의 법을 권력자들이 어떻게 이용하고, 그들을 위해서만 법이 쓰였을 때 누가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렸다. 즉, 나쁜 놈들이 대한민국 현대사를 어떻게 바꿔왔는지를 그린 작품이다.

Q. 작품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인가?
한 : 계기는 단순했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이것을 연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만들고 싶었다. 내 입장에선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돼있는 자료를 받은 느낌이었다.

Q.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나?
한 :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세월호 사건이다. 혹자는 "세월호가 도대체 법이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의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생활과 법은 매우 밀접하게 엮여있다. 국회의원이 어떻게 입법을 하고 법을 만드느냐에 따라 우리 생활이 엄청나게 바뀌지만, 사람들은 인지를 잘 못 한다. 좋은 법이었고, 좋은 권력자였고, 좋게 사용했다면 그런 비극이 일어났을까를 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들이 얼마나 힘든 이야기고, 비극의 역사인데 작품마저도 비극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공연을 보는 동안은 재미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템포도 빠르고. 물론 공연을 다 보고 나면 씁쓸한 기분이 들겠지만.

Q. 9명의 배우가 60명 역할을 한다고 들었다. 배우를 선택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한 : 사실은 등장인물이 많으니까 어떻게 인원을 뽑고, 역할을 배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캐스팅할 때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광대를 잘하는가였다. 다양한 역할에 맞게 연기를 확 바꿀 수 있는 배우가 필요했다.

강희만 배우(이하 강) : 대통령 역할을 나한테 다 몰아 줬더라(웃음). 내가 맡은 역할이 이승만·박정희·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다. 대사 외우기도 힘든데 성대모사까지 공부해야 했다. 나머지 배우도 4~5가지 역할을 맡았다. 인물마다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역할의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 관객이 볼 때 헷갈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부분이 가장 힘들다.

유성곤 배우(이하 유) :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는 데 "너같은 캐릭터가 필요하다"며 대본을 주셨다. 감사한 일이긴 한데 사실 처음엔 대본을 보고 너무 놀랐다. 아직 살아계신 분을 연기해야 한다는 게 정말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연출가님하고 전화 통화를 정말 많이 했는데, 극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많이 강조해주셨다. 여기에 공감했고, 사실을 모방하고 재연하기보다는 장면마다 톤이나 변화되는 지점에 집중했다.

Q. 극을 연출함에 있어서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면?
한 : 자신이 보고 있는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는 게 예술가의 입장이다. ‘이런 건 어때?’라고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그래서 잘못된 질문을 던지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질문이 주어졌을 때 답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질문 잘못됐을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요즘은 가짜뉴스도 많고, 검증되지 않은 날조된 정보도 많으니까 혹시 내가 그것을 거르지 못할까봐 걱정이 많았다.

또 세월호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서 당시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보낸 희생자들의 문자를 일일히 확인하는 일도 힘들었다. 아이들은 누구에 대한 원망보다는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주로 했더라. 너무 가슴이 아팠다.

게다가 아직은 뭐라고 평가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건에 대해 표현하는 것도 예민하고 부담스러웠다.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역사를 보여줘야 하니까. 하지만 이런 것을 보여주는 게 감독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Q.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
한 : 작품을 준비하면서 배우들하고 모여서 현대사를 공부했다. 거의 이승만이 집권한 지점부터 최근 세월호 사건까지 책과 인터넷 등 모든 자료를 다 훑어본 것 같다. 아마 관객 중에도 등장인물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관객이 우리 작품을 보고 집에가서 관련된 자료를 찾아볼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민주주의는 자발적 참여를 통해 부조리한 부분을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만큼 자발적이지 않은 민주주의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작품을 통해 역사를 다시 보면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지점, 저항해야 하는 지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강 : 9명 모든 배우가 등장하는 딱 한 장면이 있다. 문세광이 등장하는 장면인데, 꼭 눈여겨 봐주셨으면 한다. 이렇게 장면 장면을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공연을 보는 중에는 아마도 무겁다는 느낌은 못 받을 것이다. 하지만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 생각이 많아지지 않을까 한다. 예를 들면 최근 화제가 됐던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비슷한 맥락이다. 볼 때는 경쾌하지만 끝나고 나면 씁쓸함이 몰려오듯 우리 작품도 그렇다. 관객들이 극장 밖을 나가면 어떤 고민이나 주제 의식 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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