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지난 오월 중순에 50칸짜리 비닐 포트 여섯 판에 팥알을 심어 모종을 냈습니다. 한 달쯤 뒤 약 15평 되는 돌투성이 밭에 정식(定植)했죠. 비 온 날이 적고 햇볕이 강해서였는지 예년보다 병해가 적었습니다. 따도 따도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작은 팥의 낱알들은 붉은 기운이 넘쳐 건강했습니다. 60그램 가량의 씨에서 약 8킬로그램 소출이 있었죠. 내년에 심을 아주 실한 종자로 마흔 꼬투리 남짓 남겨 놓았으니 수확이 닷 되는 될 듯합니다. 볍씨 한 알이 600개 이상을 만든다는 데 비하면 조촐하지만 흐뭇합니다.

팥 하면 군대 시절 주보에서 팔던 양갱(羊羹), 1970년대 등장한 호빵, 팥을 얼음으로 싼 캔디, 안흥 찐방, 경주 황남빵, 천안 호두과자, 각종 팥빙수가 떠오릅니다. 공항철도 홍대입구역 환승 길에서 맛본 팥빵도 기억합니다.

저명한 팥빵이 많지만 나는 강화도 온수리 터미널 부근 분식집 찐빵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주문하면 가마솥에서 다시 쪄주는데 전혀 달지 않습니다. 아무 거나 입에 대지 않아 미각이 까다로운 나는 거의 무미하다고 할 이 팥 찐빵이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하루는 주인이 8시가 넘은 밤저녁에 가마솥 가득히 이튿날 쓸 팥을 큰 주걱으로 저으며 삶고 있었습니다. 물었더니 강화도 팥만을 쓰는데 국산 팥은 달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간 먹어온 팥빵들은 베이커리나 뭐나 하나같이 왜 그렇게 달았는지요. 맛있는 음식의 특징은 절대 달지 않아 질리지 않는다는 데 아내도 공감했습니다.

팥은 꼿꼿이 서지 못하지만 자기들끼리도 휘감으며 덩굴을 만듭니다. 콩처럼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공기 중의 질소로 유기질소화합물을 만들기 때문에 비료를 많이 줄 필요가 없다지만 식물의 열매란 수분에 녹는 이온상태의 여러 물질을 뿌리가 끌어다가 유기물로 만들 터이니 황무지에서는 잘 자랄 리가 없죠. 팥은 한꺼번에 꽃을 피우지도 않습니다. 자라면서 잎겨드랑이에 여러 개의 노란 꽃을 피우고 수정하면 뜨개질바늘보다 훨씬 더 가느다란, 앙증맞은 진녹색의 꼬투리가 생겨 자랍니다. 그러면서도 줄기는 계속 뻗어 또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열매를 한꺼번에 수확은 못합니다. 팥은 털기도 쉽죠. 바싹 말려 페트병에 담아두면 길게 보존할 수 있습니다. 녹두도 심어 보았지만 오래 불려도 돌멩이 같아서 거피(去皮)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도 팥이 좋습니다.

팥에도 각종 해충이 달려듭니다. 인간에게 맛있는 것은 벌레에게도 맛있는지 진딧물이나 메뚜기도 달라붙지만 사람도 피하지 않는 노린재가 구멍을 뚫어 즙액을 빨아먹으며 꼬투리를 배배 꼬여 마르게 할 땐 내 마음도 꼬입니다. 노린재가 하도 극성을 떨던 해에는 목초액도 듣지 않아 2리터 페트 병 여러 개의 입구를 조금 잘라 흑설탕 물을 반쯤 채워 단내로 꾀어낸 노린재를 사뭇 포획할 수 있었죠. 고라니는 아주 여린 팥꼬투리를 무자비하게 훑으며 먹고 갑니다. “다 내 것은 아니니까” 하고 체념합니다.

고통을 견딘 대견한 꼬투리가 하얀 빛깔에 가까운 담황색으로 변할 즈음 잘 된 하나를 따서 귀에 대고 흔들어봅니다. 낱알들이 좁은 칸에서 구르는 경쾌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어떤 인공의 소리보다 아름다운 자연의 음향이 추수의 기쁨을 맛보게 합니다. “최첨단 공장도 이런 팥 한 톨을 만들지 못하지”라고 어설픈 농심의 헛소리도 해봅니다.

팥의 원산지는 극동으로 중국은 2000년 전부터 재배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함경도 회령과 백제의 군창터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영어로 팥은 ‘아즈키 빈(azuki bean)’인데 ‘아즈키(あずき)’가 일어로 팥이니 팥 음식이 발달한 일본에 널리 재배됨을 알 수 있죠.

팥은 과식 방지와 다이어트, 혈행과 이뇨 등 대사 촉진을 비롯해 각종 성인병 예방에 좋다고 합니다. 사포닌 성분은 피부 노폐물을 씻어내 조선시대 기녀들이 팥과 녹두를 간 천연 재료로 피부 관리를 했다는데 주근깨, 기미 등 멜라닌 색소를 줄이는 미백 효과가 있어 요즘은 팥가루 팩도 성행합니다.

세시풍속의 하나인 동지 팥죽은 밤이 가장 긴 날에 음의 기운을 팥의 붉은 양기로 다스리는 의미라고 합니다. 절에서는 병이 나으라고 올리는 구병시식(救病施食) 의식에서 기도자들의 머리 위로 팥알을 한 줌 던집니다. 잡귀를 쫓아낸다는 의미죠. 자라나는 어린이들은 수수팥단지를 해주면 좋다고 합니다. 젊은 엄마들이 스스로 만드는 레시피를 자랑하며 “우리 애 열 살 때까지 수수팥단지 해줘야지”라고 블로그에서 다짐하는 걸 보노라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팥은 국산이 좋다는데도 우리나라 팥 생산량은 2010년 중국의 22만4,000톤, 일본의 5만8,000톤에 비해 극히 왜소합니다. 1980년 2만9,073톤이었던 팥 생산량이 줄어들어 2013년에는 7,628톤에 그쳤습니다. 자급률은 1990년 67%에서 2010년 15%까지 떨어졌습니다. 수입산에 많이 의존한다는 얘기죠.

팥은 세시풍속으로 문화유산의 성격이 강한데 이제 수입산 동지 팥죽, 수입산 수수팥단지, 수입산 고사떡이라니 고유문화의 정체성 상실이 걱정됩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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