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지난 18일, 큰언니의 막내딸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봄에 혼인한 친정 조카에 이어 6개월 만이니 한 해에 연거푸 집안 혼사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다 22일자 임철순 님의 칼럼 <주례는 서글퍼>를 읽고 나니 저도 주례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졌습니다.

첫째, 사랑에 나이가 없듯이 주례에도 나이가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맡겨만 주신다면 저도 주례를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자기 가정도 못 지킨 ‘결혼의 루저’를 주례로 세울 리 만무하지만 한번 낙방한 경험이 있는 재수생이 공부 요령은 더 잘 아는 법입니다^^).
기왕 임철순 님이 ‘주례업계’의 은퇴를 선언하셨으니 이 참에 세대 교체를 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제 나이도 되기 전에 이미 ‘화려한’ 데뷔를 한 가까운 지인이 있으니까요.

둘째, 그 지인은 더구나 여성입니다. 여성 주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성비로 보자면 당연히 남성이 많겠지요. 따라서 주례업계의 성차별도 ‘척결’해야 할 당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상 결혼의 의미나 비중은 남자들보다 여자들에게 지대하지 않습니까. 남편은 아내가 10%만 봐줄만 해도 그럭저럭 감내하며 살아내지만 아내는 남편에 대한 긍정심이 90%에 달해도 결혼 생활을 불만족스러워 합니다. 그러니 이른바 ‘인생 선배’로서 남자와 여자 중에 누가 결혼식에서 할 말, 해 줄 말이 많을지는 자명하지 않나요. 나아가 '남자는 결혼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게 솔직한 제 생각입니다.

그 ‘지난한’ 부부 관계에 대해 그나마 깨닫는 사람은 남편보다는 아내라는 점에서 저라면 어머니를 모시는 마음으로 여성에게 주례를 부탁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주사모일체(주례를 사랑하는 모임이 아니라 주례와 스승, 어머니는 같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뜬금없는 이 소리는 아래 셋째 조항을 참조할 것).

셋째, ‘주사부일체 (주례는 아버지, 스승과 동급)’라는 농담을 하셨는데 요즘 세상은 아버지나 선생님을 제 대접하는 풍토가 아니니 아쉽고도 서럽게도 주례 역시 부부의 일생에 별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겁니다.

저희 부부가 25년간 함께 살면서 수없이 싸움을 했지만 “주례를 잘못 만나서 우리가 이 모양이다. 다른 주례를 모셨어야 해, 그랬다면 이렇게 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잖아.”라고 주례를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걸 봐도 그렇습니다. 주례는 '가정 파탄'의 '공모자'는커녕 '목격자'도 못 되니까요.
같은 이유로 “내가 주례를 서 준 부부들이 지금껏 잘 살고 있다”며 다행스러워 한다거나 흐뭇해 할 것도 없습니다. 적어도 주례사에 악담을 하지 않은 이상 잘 살든 못 살든 주례는 결혼식이 끝나는 순간 대부분 ‘잊혀지는 서글픈 존재’니까요.

넷째, 임철순 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주례사를 위해 미리 예비 신랑 신부를 만나 밥도 먹고 취재도 하고 인터뷰도 하여 맞춤형, 심지어 주문형까지 생산한다니, 당일에 탈이 나지 않도록 매사 조심 한다니 주례를 선다는 것은 가히 정성되고 번거로운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그러나 뒷자리 하객들은 그와는 아랑곳없이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니 ‘그럴 거면 나가라’고 일갈하게 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이 주례가 감수해야 할 서글픈 현실이 아닐까요. 왜냐하면 일가 친척, 친구들이 오랜만에 식장에서 만난 김에 서로 안부를 묻다 보니 시끄러워질 수 밖에 없고, 잔치는 또 그렇게 법석을 떨어야 흥이 돋는 법이니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나열하다 보니 이래저래 주례는 서글프군요. 하지만 예식이 주례를 속일지라도 서러워하거나 노여워하지 말 일입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그리고 최소한 그날의 하객들에게는 기억에 남을 주례와 주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친정 조카의 결혼식 주례는 개그맨 이홍렬 씨가 맡았습니다. 그분은 국제아동복지전문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www.childfund.or.kr)의 홍보 대사라고 합니다.

저도 호주에서부터 지금까지 그 단체의 호주 지부를 통해 캄보디아 어린이에게 돈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그 인연을 말하자는 게 아니라 새로 태어나는 조카 부부의 가정을 향해 어린이 두 명을 후원해 줄 것을 약속 받던 감동 어린 주례사를 말씀 드리고 싶은 겁니다.

후원 여부에 대해서는 물론 당사자들로부터 사전에 동의를 구했고, 착한 마음을 내 줘서 고맙다며 주례 사례비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언감생심, 만약 제게도 주례를 설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런 의미 있는 주례사를 하고 싶습니다. '어르든, 협박을 하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부디 ‘내 가족 울타리’ 밖을 돌아보는 작은 일 한 가지는 하자고 독려하겠습니다.

<주례는 서글퍼>, 잘 읽었습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이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www.bistromeme.com)를 꾸리며 한민족 네트워크, 두란노 아버지 학교, 중앙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공저<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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