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정우성 이병헌 송강호가 나온 그 영화를 보기는 봤지만 누가 좋은 놈이고 나쁜 놈이고 이상한 놈인지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1960년대의 마카로니 웨스턴 ‘더 굿, 더 뱃, 디 어글리(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본뜬 작품인데, 제목이야 어떻든 한바탕 우당탕 계열의 영화인 건 똑같습니다.

최근 어떤 사람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영화의 포스터를 그대로 살린 패러디 작품을 카카오톡으로 나에게 보내왔습니다. 제목은 ‘벗은 놈 만진 놈 딸친 놈’입니다. 성추행으로 물의를 빚은 3인이 쟁쟁한 주연입니다. 벗은 놈은 윤창중이고 만진 놈은 박희태, 딸친 놈은 김수창입니다. 이 중에서 김수창은 다른 사람을 성추행한 것은 아니지만 거리에서 ‘공연음란’ 행위를 했으니 뭇 여성을 성추행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날까? 특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포함해 전직 검찰 고위간부들의 범죄가 잦은 건 무슨 이유일까? 한마디로 말해서 그들은 몸에 밴 권력형 갑질 행위를 한 것뿐입니다. 이 여성은 이렇게 건드려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늘 하던 대로 하던 짓을 한 거지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여성에게는 감히 그러지 못하고 갑을관계이거나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희롱하는 비겁한 사람들입니다.

문제가 불거지면 일단 부인부터 하고 봅니다. 만진 게 아니고 건드렸을 뿐이라거나 툭 쳤을 뿐이라거나 딸처럼 귀여워서 그랬다, 악의가 없었다 등 너절한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참회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여전히 속으로는 ‘내가 누군지 알아?’ 하는 거지요. 늘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니까요.

최근 여직원 성추행 혐의로 고소 당한 골프장 회장도 전직 검찰총장입니다. 그는 “네가 내 아내보다 100배나 더 예쁘다”는 말도 했다던데, 사실이라면 이 사람은 자기 아내까지 모욕한 셈입니다. 나는 원래 검사를 되게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바탕이 그런 사람들이 검사가 된 건지 검찰이라는 조직이 사람을 망쳐 놓는 곳인지 아리송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이 바뀐 걸 모르고 있습니다.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수치심 때문에 숨기던 여성들이 이제는 적극적으로 신고를 하고 있습니다. 종전에는 강제추행죄가 친고죄여서 고소기간이 6개월로 제한됐지만 지금은 친고죄가 폐지돼 언제나 신고를 할 수 있습니다. 성추행은 당사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지 아닌지가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는 성추행을 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문제입니다. 법 바뀐 건 알지만 인지왜곡(認知歪曲)이 이렇게 심하니 인간으로서 덜 발달됐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처벌도 잘 받지 않습니다. 경찰은 한 달도 더 전에 박희태 전 국회의장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성추행에 대한 결정도 지연되고 있고, 김학의 전 차관의 경우 추가 고소가 들어왔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합니다. 김 전 차관을 무혐의 처리한 검사가 최근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으니 이제는 제대로 수사를 할 참일까요?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는 고질이며 숙환입니다.

검찰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러나 사실 말해봐야 소용없습니다. 검찰은 절대 달라지지 않습니다. 법불아귀(法不阿貴), 법은 귀한 자에게 아부하지 않고 왕자무친(王者無親), 임금이라도 국법 앞에서는 사사로운 정으로 일을 처리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말과 반대로 법을 집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성범죄 예방 차원에서 처벌수위라도 높였으면 좋겠습니다. 업무 관계로 추행하는 경우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으로 처벌하고 있는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처분이 내려집니다. 형법상 강제추행죄는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니 차이가 많이 납니다. 형법상 강제추행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신상정보 등록대상자가 됩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7월 이 규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한 바 있습니다.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는 점이 인정되지만 성범죄 재발을 억제하는 등 정당한 목적 달성을 위해 적합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성추행범들을 이렇게 다뤄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임철순

1974~2012년 한국일보 근무. 문화부장 사회부장 편집국장 주필 및 이사대우 논설고문을 역임했다. 한국기자상, 삼성언론상, 위암 장지연상 수상.
현재 한국일보 논설고문, 자유칼럼 공동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저서 <노래도 늙는구나>, <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

[자유칼럼그룹]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53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