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올해 SBS는 두 명의 아나운서를 공개 채용했습니다. 몇 명을 채용할지 미리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남녀 각각 한 명이 선발됐습니다. 단 두 명을 선발했는데 2,000명이 넘는 인원이 응시를 했으니 경쟁률이 1,000대 1이 넘은 셈입니다. 이렇게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아나운서라면 당연히 대단한 재능과 실력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씀을 드린다면 그렇지 않습니다. 갓 입사한 신입 아나운서들을 선배들은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온 친구들’이라고 부릅니다.

어느 조직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보통의 경우, 신입 사원보다는 1년차 사원이 더 일을 잘하고 1년차 사원보다는 10년차 사원이 훨씬 더 많은 일을 합니다. 아나운서 역시 그 재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한 다른 조직과 다름없는 순서를 밟게 됩니다. 필자는 20년 넘게 아나운서로 일을 하고 후배들 교육을 담당하면서 어느 누구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재능’을 가진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외모가 너무 출중해서 주위의 이목을 끌고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경우는 몇 번 봤습니다. 그런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입니다.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10년만 할 것이 아니라면 외모만으로는 성공적인 아나운서가 되기 어렵습니다. 김동건, 차인태, 임국희, 신은경 아나운서가 외모 덕택에 사랑을 받은 것은 아니었듯이 말입니다.

호감 가는 음색과 정확한 발음 역시 하늘에서 떨어지는 재능이 아닙니다. 이 재능은 평소에 큰 소리로 또박또박 말을 하는 언어 습관을 가진 사람만이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입 아나운서 시절부터 정확한 발음과 멋진 음성을 가진 사람은 평생 아나운서의 자질을 갈고 닦은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도 십 년에 한 번 정도 볼 수 있을까 말까 합니다. 결국 실력을 인정받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선 발음부터 발성까지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립니다. 신입 아나운서가 입사해서 5분짜리 라디오 뉴스에 투입되기까지 짧으면 석 달 길면 여섯 달이 걸립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엔 입사 후 2년이 넘게 발음교정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잘생긴 외모와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까요? 주어진 외모와 정확한 발음은 기능일 뿐입니다. 기능은 자신이 아나운서로 시청자를 대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킬 수 있게 할 뿐입니다. 방송을 하는 사람은 시청자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따라서 기능에 자신의 이미지를 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미지는 자신이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한 이유는 지난 입사 시험에서 아나운서에 응시한 수험생들 사이에 퍼진 소문 때문입니다. ‘올해는 메인 뉴스 앵커감을 뽑는다더라’가 소문의 요체였습니다. 지역의 작은 방송사도 아닌 전국 단위의 네트워크 공중파 방송에서 메인 뉴스의 앵커는 신입 아나운서가 쉽게 넘볼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갖게 된 원인을 방송사들이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언제부턴가 방송사 메인 뉴스의 여성 앵커는 젊은 아나운서가 맡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입사한지 2년, 3년밖에 되지 않은 앳된 여성 아나운서가 메인 뉴스를 담당하면서 ‘파격 기용’이니 ‘뉴스의 꽃’이니 라는 표현을 쓰면서 언론의 관심을 끈 적도 있었고 아직도 젊은 여성 앵커를 메인 뉴스에 기용하는 방송사도 많이 있습니다만 필자는 이러한 시류가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우선 필자가 근무하는 SBS의 평일 메인 뉴스를 전달하는 정미선 앵커만 해도 경력 10년이 넘은 30대 중반이고 주말 메인 뉴스를 전달하는 이혜승 아나운서는 15년 경력의 30대 후반 베테랑 아나운서입니다. 이 두 사람은 단순히 경력만 많은 것이 아니라 뉴스의 신뢰도를 높이고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미지를 쌓아 올린 아나운서들입니다. 정미선 앵커는 2년 동안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를 하면서 받은 출연료 2,000만원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했으며 이러한 선행으로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은 바 있습니다. 자신의 직업을 통해 나눔을 실천한 공로로 2011년에는 방송대상 아나운서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혜승 아나운서는 동시통역이 가능한 영어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불어와 중국어도 수준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고 국제회의에서 영어로 행사 진행이 가능한 재원입니다. 이 두 아나운서는 단순히 하늘이 내려준 외모와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뉴스를 전달하는 풋내기 아나운서가 아닙니다. 20대 후반의 여성 아나운서가 젊음을 무기로 보여주는 뉴스를 전달하던 패러다임을 이 두 아나운서는 끊임없는 자기계발을 통해 30대 뉴스 앵커의 완숙미를 보여주는 패러다임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미국 CBS와 ABC에서 수십 년간 앵커로 활약하다 지난 여름에 70세로 은퇴한 다이앤 소여(Diane Sawyer)는 30대 후반에 메인 뉴스의 앵커가 되었고 이후 30년 넘게 미국 시청자의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CBS의 앵커로서 수십 년간 사랑을 받아 온 케이티 쿠릭(Katie Couric) 역시 30대 중반부터 뉴스를 시작해서 50이 가까운 나이에 CBS의 앵커로 기용되었습니다. 뉴스는 오락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할리우드 스타일의 오락이 판을 치는 미국에서 이렇게 나이 많은 여성 앵커를 방송사가 고용하고 있는 이유는 뉴스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에서는 민영 방송인 SBS의 여성 앵커의 나이가 공영방송의 메인 뉴스 여성 앵커보다 열살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했으며 아이를 키우고 자신의 경력을 착실히 쌓아온 내공은 시청자와 소통하는 깊이 있는 뉴스의 전달을 가능하게 합니다. ‘미나리는 사철이고 장다리는 한 철’입니다. 아나운서에 지원하는 젊은 친구들이 장다리로 한 철만 사는 아나운서를 꿈꾸지 않기를 바랍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상도

SBS 아나운서. 보성고·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美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업
현재 SBS TV 토요일 아침'모닝와이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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