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언제부터 였을까? 1282년(충렬왕8) 개경 불복장리에 눈먼 아이가 있었다. 부모는 모두 전염병으로 죽고, 아이 혼자 흰 개 한 마리와 살았다. 아이가 개꼬리를 잡고 길에 나오면 사람들이 밥을 주었다. 개는 감히 먼저 핥지 않았다. 아이가 목이 마르다고 하면 개가 이끌고 우물에 가서 물을 마시게 한 뒤 다시 돌아왔다. 눈먼 아이를 돌보는 개는 모두에게 칭송받았다. 아이가 “제가 부모를 잃은 뒤로 개에 의지해 삽니다”라고 말하니, 보는 사람들이 가련하게 여기고 의로운 개라고 불렀다. <고려사>에 실린 이야기다.

충렬왕 때는 매사냥을 위해 사냥개도 많이 키웠지만, 눈먼 아이를 보살핀 개도 있었다. 변절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인간보다 나은 개 이야기는 큰 감동을 안겨준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양성하기 시작한 계기는 1차 세계대전 때문. 전쟁 중 많은 군인들이 시력을 상실하면서, 부상 군인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여러 교육과 재활훈련이 시도됐다. 그런 과정에서 1916년 독일 몰덴부르크에 안내견 학교가 개설됐다. 이때부터 독일 국견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셰퍼드가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 우리 민족의 오랜 친구 삽살개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전북 임실에 살던 김개인이라는 사람이 기르던 개는 주인을 살렸다. 어느 날 동네잔치에 가려는데 개도 함께 따라나섰다. 주인이 술에 취해 길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들불이 났다. 불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지만, 개가 아무리 짖어도 주인은 안 일어났다. 개는 개울에 몸을 담근 뒤 풀밭을 이리저리 굴러 불이 못 번지게 막았다. 개울과 불길을 오가길 수십 차례. 그 개는 끝내 기운이 다해 그만 죽고 말았다. 나중에 잠에서 깬 주인이 그 사실을 알고는 노래를 지어 기리고 고이 묻어줬다. 그때 무덤에 꽂은 지팡이가 나무로 자라서 그 땅을 오수라고 했다. 지금 임실군 오수면(큰 개 ‘오·獒’ 나무 ‘수·樹’)라는 지명이 그것이다.

이 이야기는 고려 후기 문신 최자의 <보한집>에 실려 후대에 널리 알려졌다. 제 몸 바쳐 주인을 구한 충직한 개의 이야기는 조금씩 내용만 달리해서 여러 지역에 남아있다. 몸에 물을 묻혀 불을 끄기 위해서는 털이 길고, 덩치도 커야 한다. 오수견은 진돗개와는 전혀 다른 삽살 사자견종이다. 우리 역사에서 삽살개는 신수(神獸)로 인식됐다. 수많은 전설과 설화에 등장한다. 구미시 낙동강가 ‘의구총’에 얽힌 이야기, 삼척 환선굴에 얽힌 삽살개 전설 등 헤아릴 수 없다.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재위 4년 만에 폐위됐다. 조선 태조 3년(1394)에 삼척에서 세상을 떠났다. 고양시 원당동 공양왕릉에는 삽살개와 관련한 전설이 남아있다. 공양왕이 왕위를 빼앗기고 개성에서 도망칠 때, 사람들이 찾지 못했다. 왕이 귀여워하던 삽살개가 연못을 향해 짖어 살펴보니 왕과 왕비가 죽어있었다. 이 설화를 기초로 공양왕과 왕비 능을 조성했다. 왕릉 앞 석상은 왕의 시신을 찾게 해준 삽살개를 기리기 위해 세웠다.

■ 북방 유목민족은 수렵이나 목양견으로

중국의 경우 한족은 보신탕을 즐겼다. 유방을 도와 제후에 오른 번쾌는 개장수 출신. 한나라를 세우기 이전 젊은 날 유방은 번쾌를 찾아가 돈도 내지 않고 공짜로 개고기를 먹곤 했다. <수호지>에서는 노지심이 개고기를 맘껏 먹는 장면이 나온다. 청나라를 건국한 만주족은 보신탕을 먹지 않았다.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를 구한 개에 대한 설화는 여러 버전이 전한다. 하나는 ‘의견구주(義犬救主)’, 곧 의로운 개가 주인을 구했다는 전설이다.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임실의 ‘오수개’ 이야기와 같은 구조다. 누르하치가 젊은 시절 사냥 도중 중상을 당해서 정신을 잃었다. 그때 마침 산불이 났다. 그와 함께 사냥을 나섰던 개 한 마리가 아주 총명했다. 차가운 강물에 털을 적신 후, 몸에 묻은 물로 주인 주변의 불을 꺼 누르하치를 살렸다. 그리하여 누르하치가 여진족에게 개고기를 먹지 못하게 명을 내렸다는 것이다.

다른 이유는 누르하치가 세력을 키우던 초창기 집에서 기르던 개 때문에 암살 위기를 모면했다는 것. 암살자의 침입을 개가 짖어 알렸다고 한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 키루스 대왕과 같은 스토리다. 신성한 개가 하늘이 정한 새 지도자(황제)를 선택했다는 소리다. 사실 만주족이나 나나이족(흑수말갈)과 같은 동북아 소수민족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수렵·어업 생활과 관련 깊다. 청은 나나이족을 사견국(使犬國) 또는 사견부(使犬部)로 칭했는데, ‘개를 부리는 나라’라는 뜻이었다.

동북아 지방은 땅은 넓고 사람은 적다. 초원은 숲이 깊다. 호랑이나 표범, 늑대 등 맹수가 곳곳에 출몰한다. 개는 일상생활에서 집을 지키고, 사냥을 도와주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주족은 개에 대한 감사한 뜻에서 개고기를 먹지 않는 습관이 생겼다. 청나라 시절 북경 사람들은, 복날에 개고기를 찾는 조선 사신들을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청나라 말기 절대 권력의 상징 서태후는 단순 애견가가 아니라 시추, 페키니즈 등 애견의 번식을 주관하는 등 전문가적 면모를 보였다. 18세기 후반쯤 되면 한양과 지방에 개고기 식당이 많이 생겼다. 오늘날처럼 돈 주고 보신탕을 사 먹었다.

■ 전남 장성의 식인 개, 경북 영주의 효자 개

흔히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돼도,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라고 한다. 요즘에도 종종 뉴스에 나오지만, 개가 사람을 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조선 중기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 ‘만물편’에는 개가 사람을 잡아먹은 이야기가 나온다. 전남 장성의 산 아래에서 어떤 사람이 사냥을 업으로 살고 있었다. 집에는 수십 마리 사냥개를 길렀다. 하루는 흠뻑 취해 집에 돌아오니, 집안사람들은 모두 밭에 나가있었다. 그는 화로 옆에 잠이 들었다. 옷자락에 불이 붙고, 불길이 온몸에 번져 불타 죽었다.

그러자 개들이 모여들어 모두 먹어치웠다. 집안사람들이 돌아와 이를 보고 놀라 개들을 때려죽였다. 그중 5,6마리의 개들은 산속으로 도망쳤다. 이미 인육 맛을 본 개들은 우거진 갈대숲에 숨어 있다가 혼자 지나가는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마을 사람들은 개떼를 섬멸했다. 보기 드문 식인 개 이야기다.

영조 연간 김낙행이 지은 ‘구사당집’에는 효자 개 이야기가 나온다. 경북 영주 어느 민가의 강아지 두 마리가 보신탕용으로 죽은 어미 개를 위해 복수한 일을 적었다. 죽계에 사는 어떤 이가 개를 길렀다. 처음 새끼 한 마리는 이웃에게 주고, 다음에 태어난 새끼 두 마리는 자기가 길렀다. 새끼들이 다 자라자 주인이 어미 개를 잡으려고 개울가로 갔다. 새끼 두 마리는 급히 달려가더니 먼저 태어난 형님 개를 데려왔다.

새끼들은 어미와 주인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슬피 울었다. 이윽고 주인이 개를 잡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삶기 시작했다. 다 익어서 먹으려고 할 때 마침 이웃집 사람이 왔다. 그는 솥을 들여다보고 침을 흘리며 “거 참, 맛있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새끼 개 세 마리가 이빨을 드러내고, 그 사람을 물어뜯었다. 주인은 두려운 마음에 개를 먹지 않고 버렸다. 새끼들은 어미 개를 물고 가 산기슭에 묻더니, 큰 소리로 울부짖고는 그 곁에 누워 죽었다. 유교 윤리를 헌법처럼 지킨 조선 사회는 ‘충’의 성질을 가진 개를 좋아했다. 신윤복이나 장승업, 김두량, 안중식, 어유봉 등 많은 풍속화에서 개 그림을 볼 수 있다. 특히 삽살개는 영적인 힘이 있다고 믿었다. 춘향전이나 숙향전과 같은 수많은 고전문학 작품에도 등장한다.

■ 반려견을 키우면 좋은 이유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재미있는 기록을 남겼다. “시중에서 병아리를 ‘구구’라고 부르고 강아지를 ‘요요’라고 부른다”고 적었다. 요즘에도 병아리를 ‘구구’, 강아지를  “요요요요~”하고 어른다. 우리나라의 경우 집 안에서 개를 키우기 시작한 건 불과 30년 전부터. 마당에서 키우던 개는 좁은 집과 끈에 묶여 평생 사람이 남긴 밥을 먹었다. 때로는 주인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일도 허다했다.

앞으로는 오래 살고 싶다면, 개를 키우는 게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반려견이 사람의 건강과 수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온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더 낮다는 것. 먼저 반려견은 사람의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둘째, 반려견은 사람의 신체활동을 자연스럽게 늘리면서 신체적 건강을 유지해준다. 셋째, 개가 가진 미생물로 인한 면역력 증강 효과다. 특히 홀로 사는 사람에게 개는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다.

반려동물이란 사람과 동물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동반자 관계라는 의미다. 개가 노인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효과는 익히 알려졌다. 한 연구 결과를 보면 독신이면서 개를 기르는 사람은 독신이면서 개를 기르지 않는 사람보다 사망 위험은 33%, 심장발작 위험은 11% 낮았다. 언제부터인가 험한 말에는 으레 ‘개’자가 따라붙었다. ‘개’란 접두사는 극단과 비루함의 상징이 됐다. 그러나 잊지 말자. 오랜 세월 인간과 개, 개와 인간은 공존의 길을 모색해왔다. 개는 사람의 가장 충직한 친구이자, 동반자다.

지금 전 세계에는 300여 종류 개가 있다. 개는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운명이 갈린다. ‘의견상(義犬像)’까지 세워져 추앙받다가도, 보신탕용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지구상 어떤 동물보다 사람과 가까운 존재다. 방송 프로그램 제목처럼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파스칼이 말했다. “나는 사람을 오래 관찰할수록 내가 기르는 개를 더욱 사랑하게 된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8999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