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것 바탕으로 현대적 요소 가미한 일품 요리

[서울=내외뉴스통신] 김중현 칼럼니스트  

돌고 도는 것이 유행이 듯이  

송가인은 지난 5월 종영한 TV조선 오디션 프로 ‘미스트롯’에서 우승하며 ‘송가인 신드롬’을 만들고 있다. 지난 11월 3일 단독콘서트 티켓은 오픈과 동시에 매진되며, 암표가 2장에 48만 원에 거래되고 암표마저 구하기 어려웠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하게 한다. 그날 콘서트 현장은 주로 60~70대 관객이었으나 아이돌 공연을 방불케 하듯 굿즈 판매, 플래카드, 야광봉 등 각종 응원 도구가 등장하였다. 콘서트가 끝난 후 가수를 보기 위해 모인 송가인 팬덤들의 열정적인 모습에서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시켰다. 이날의 열기를 오늘 저녁 MBC가 콘서트 공연 실황으로 편성하였고 이 시간대 광고마저 완판되며 송가인의 인기를 증명했다.

송가인은 콘서트에서 주특기인 국악을 살린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진도 아리랑', '영암 아리랑', '강원도 아리랑' 등 송가인의 색깔로 채워진 '아리랑' 레퍼토리는 국악을 대중들 품으로 안겨주었다. 특히 국악기와 서양악기 전자악기가 배합된 반주 팀은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우러진 소리를 만들어 냈으며 콘서트의 품격을 높일 수 있었다.

송가인은 콘서트 중간에 “우리의 것을 살리며 현대적인 것을 더하는 게 좋겠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예술은 그동안 근대 서구화 물결에 뒤안길로 침체 되어 있었다. 복고 바람처럼 유행도 돌고 돌 듯이 지난 시절의 멋스러움과 현대의 세련된 감각이 더해졌을 때 대중들의 관심과 향유로 이어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계 다툼하는 사이 전통은 멀어져 가고 

근대 국악사의 반성적 단면을 이야기하자면 그동안 네 거니 내 거니 하는 습성이 있었다. 학문과 학계에서는 더욱 그러한 경향이 심하다. 국악연주 분야도 마찬가지다. 정악과 민속악을 구분하거나 정통과 사이비, 개비(갑)와 비개비 등을 자꾸 구분하고 있다. 예술의 전승 과정에서 서로 다른 예술적 이견을 가지고도 법정 공방까지 하는 실정이다. 문화재 제도를 통해 그 모습 그대로 전통은 지키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전통예술은 현대인들에게 있어 어색하고 내 취향과는 먼 것이 되고 대중들에게 점점 외면을 받는 장르가 되어 버렸다.

판소리, 사물놀이, 트롯도 만들어질 당시 우리의 전통과 현대적인 요소가 결합 된 시대적 산물이고 모두가 우리 민족의 예술 문화였다. 판소리라는 이름이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이 1940년 정노식의 저서 『조선창극사』가 처음이다. 사물놀이라는 명칭도 1976년 풍물을 무대화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판소리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조선 영조 무렵 유진한의 만화집(1754년)에 수록된 춘향가이다. 판소리는 정해진 양식이 있었던 게 아니라 마당에서 소리꾼과 대중들이 모여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지금의 드라마와 같은 기능을 하였다.

판소리는 현대에 들어오면서 유파를 정립하는 등 학문화하고 인간문화재를 지정하는 등 제도화 함으로서 옛 그 상태로 머물게 했으며 더 이상 대중들과 함께 살아 숨 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판소리는 조선시대 불렀던 소리를 그대로 재연하는 것은 전통 원형을 계승하는 차원에서 일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판소리의 본연인 시대정신과 결합하여 대중과 함께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더욱 노력을 집중하게 된다면 대중화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트로트는 왜색가요 저급한 노래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트로트 역시 우리 민족이 즐기고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전통예술 장르이다. 트롯(Trot)는 1914~17년 사이에 미국에서 생겨난 댄스 리듬이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굿거리나 자진모리 같은 장단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한국에서 트로트가 서양의 리듬과 일본 음계적 요소 그리고 한국적인 시김새(떨고 꺽는)가 결합한 퓨전 음악이다. 이렇듯 트로트는 서양음악의 영향과 일본의 영향 그리고 자국의 음악적 특징이 융합된 형태로서 만들어졌기에 일본 왜색가요 저급한 노래 등으로 치부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전통음악도 하나하나를 들여다보면 트로트가 만들어지는 역사와 유사하다. 

무엇이든 흘러 들어와 우리 것이 되기도 하고 

송나라에서 유입된 공자의 제례음악인 문묘제례악도 중국의 악기와 음악적 특징이 그대로 고려에 들어와 현재는 우리나라 전통음악이자 국가무형문화제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다.

국공립 단체가 51개나 되는 국악관현악도 따지고 보면 서역과 중국을 거쳐 국내에 유입되어 우리 화 된 피리, 해금 등의 악기를 사용하고 있고 서양 음계를 내기 위해 25현으로 가야금을 개량하고, 중국에서 모둠 북을 주문 제작해서 사용하고 서양의 팀파니와 신시사이저를 국악기와 함께 편성해서 연주하고 있다. 예술은 이렇듯 긴 시간을 거쳐 동서양 예술문화의 유입이 한국의 예술과 만나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 

예술 문화의 탄생도,  사람과 사람도 교류하는 것 

예술 문화는 교류에 의해서 탄생하고 대중들 속에서 사람과 사람이 상호 교류하며 그 시대정신과 함께 유행을 만들어간다. 국악대중화의 길은 송가인이 콘서트 중간에 한 “우리의 것을 살리며 현대적인 것을 더하는 게 좋겠다”라고 한 말처럼 다양한 전통예술과 현대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풍성한 예술 문화가 만들어질 때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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