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환] 어느 나무 이야기
[김영환] 어느 나무 이야기
  • 편집국
  • 승인 2015.01.07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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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뉴스통신 칼럼] 지난 연말 우체국에서 탁상 달력을 한 부 얻었습니다. 봉투에서 달력을 꺼내 한 장씩 들춰 보니 우정사업본부 소속 직원들이 찍은 정겨운 풍경 사진들이 한 달씩을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몇 장 넘겨 보자 내가 소중히 여기는 곳도 나오리라는 직감대로 9월에 실려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연필 드로잉을 배울 때 '발음이 이상해서 늘 조선족이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고 푸념하던 50대쯤의 노처녀 선생님이 독감에 걸리자 대타로 나온 분이 복사물을 한 장씩 수강생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넓디넓은 들판에 큰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어 가슴이 확 트이는 바로 그 풍경이었습니다.

"어디죠?"라고 물었지만 강사는 "인터넷 검색으로 뽑은 것이에요"라고만 말했습니다. 원경으로 하늘을 인 산맥이 가로로 끝까지 이어져 있었죠. 안 보였지만 정상에는 말갈기처럼 늘어선 나무들이 있을 법했습니다. 그 앞으로 수십만 평이 될 법한 들판에선 고개 숙인 벼들이 추수를 기다리는 듯했습니다. 바람이 심했는지 간혹 도복(倒伏)한 벼도 보였습니다. 수강생들은 수종(樹種)을 놓고 설왕설래했습니다.

그 복사 사진의 농담(濃淡)을 표현하려고 스케치북에 짙은 6B 연필까지 대면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런 멋진 나무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일까. 쉬엄쉬엄 이미지를 검색하다가 찾아냈을 때에는 소시민의 작은 감동으로 엔돌핀이 생기는 듯 잠깐 황홀했습니다.

충북 보은군이 1982년 이 느티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을 때는 수령을 500년 정도로 추정했다니 아마 조선 성종(재위 1469~1495)조 이전의 일일 겁니다. 우리나라의 많은 마을에 자생하는 느티나무가 많다지만 이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이 한 그루는 꼭 누가 심었을 것만 같았습니다. 북한산 자락에 즐비한 '영세불망'의 송덕비 따위는 결코 아랑곳하지 않았을 어느 청백리가 농민들이 논밭에서 일하다가 더위를 식히라고 심었을까, 아니면 논일하는 아내나 며느리가 안쓰러운 남정네가 심었을까. 상념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은 옛날 큰물에 떠내려온 나무가 이곳에 뿌리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지만 나는 실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설이 아닐 수도 있는 데다 수백 년을 잘 보존해온 데 대한 고마움도 컸기 때문이죠.

나무 심기에는 이타성과 원대함이 있습니다. 옛 조상들은 딸을 낳으면 혼수로 농을 만들려고 오동나무를 심었죠. 탁자를 만들려고는 더 선대에 은행나무를 심었을지 모릅니다. 이렇게 식목은 당대가 아니라 후손을 배려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내가 중학생 때 지금은 경제특구가 된 인천 송도의 뒷산에서 송충이를 잡게 했던 박정희 시대의 국토녹화사업도 마찬가지죠. 지금 젊은이들은 혹시 우리 산이 옛날부터 지금처럼 푸르렀다고 잘못 알지도 모릅니다.

수백 년 전 이 느티나무를 옮겨 심었거나 보았을 백성들은 훗날 후손들이 만드는 영화와 드라마에 이 나무가 등장하고 달력에는 '오랜 풍파 속에서 그 자리를 지켜낸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한결같은 당신을 떠올리게 합니다'라는 설명이 사진과 함께 실리고 후손들이 성가실 정도로 사진가들의 촬영 명소가 될 것이라고 꿈엔들 생각했겠습니까.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1895~1970)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있습니다. 1913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어느 황량한 산야에 어느 젊은 여행자가 들르게 됩니다. 숯을 구워 파는 주민들의 이기심과 반목으로 세찬 바람처럼 증오만 남은 텅 빈 마을에서 물을 찾아 고생하던 그를 자신의 집으로 인도한 사람은 50대 홀아비 양치기. '20대가 보기에 남은 일이라곤 죽는 것밖에 없을 것 같았던 이 55세의 사나이'는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는 황무지에 다음 날 심을 도토리나무 씨앗을 밤늦게 혼자서 선별하고 있었습니다.

여행자가 1차 대전이 끝나고 돌아와 다시 그곳을 해마다 찾았을 때 황무지는 거대한 녹지를 향하여 바뀌고 있었습니다. 3년에 10만 개의 씨앗을 심을 정도로 30여 년 간 오직 땅의 부활을 위한 그의 말 없는 식목으로 단 3명으로 줄었던 마을은 마침내 물이 흐르고 자연이 되살아나면서 인구 1만여 명의 돌아오는 마을로 변했습니다.

산림감시원과 관리들은 "자연이 이렇게 되살아나는 일도 있군"하면서 감탄했고 국회의원들도 이 특이한 자연복원 현상을 시찰하러 함께 왔지만 작은 개인, '엘제아르 부피에'라는 양치기의 존재는 짐작하지도 못했으며 자연 복원의 원인을 깊이 캐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권력은 갖고 있었지만 세상을 바꾼 힘의 원천을 알려고 하지 않았던 거죠. 후일 사람들은 소설의 모델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작가는 없다면서 나무를 심도록 권장하는 일은 좋은 게 아니냐고만 답했답니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고자 중국에서 식목 사업을 벌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중국 방향에서 날아오는 황사와 초미세 먼지를 막으려는 거죠. 언제 될지는 모르지만 작은 나무들이 한동안 버텨주기만 한다면 식물 복원력의 승수효과는 엄청날 것이라고 봅니다.

올해 을미년, 가장 깊이 뇌수에 새겨진 것은 명성황후가 일본군 흉도들의 칼날에 시해돼 석유로 불태워진 120년 전의 참변입니다. 새해엔 느티나무를 보러 가는 길에 황후의 생가인 여주 감고당(感古堂)도 참배하려고 합니다. 계절은 다르지만 느티나무 스케치도 들고 가서 실경과 대조해보렵니다. 곧 내비게이션에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 원정리 488'을 찍을 날을 기대해봅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영환

한국일보 기자로 입사, 각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개량을 지고의 가치로 삼아 보도기사와 칼럼을 써왔다. 그는 동구권의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을 역임했으며 신문사 웹사이트 구축과 운영에서 체득한 뉴미디어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다. 저서로는 병인양요 시대를 그린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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