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더불어 마음을 닦아 자살충동 극복해야
전문화되고 이웃과 단절된 현대사회도 한몫, 가정과 사회, 교육계가 함께해야

[서울=내외뉴스통신] 정혜민 기자 =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부모님이 주신 몸을 아끼라고 배웠다. 공자는 孝經(효경)에서 身體髮膚受之父母 不敢毁傷孝之始也(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라고 하여 사람의 머리칼과 피부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 감히 훼손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누가 불효를 작심하고 세상을 살아 가겠는가 마는 우리 사회는 슬금 슬금 이와는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는 듯 하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충과 효에서 금과 권으로 옮겨가면서 돈과 권력을 위해서는 인륜도 저버리는 사례들을 직, 간접으로 곳곳에서 목격하고 있다.

완전한 인격체로 몸과 마음을 닦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몸만 중요시하는 1차원적 판단기준의 증가는 영상매체를 통한 정보의 홍수가 한몫 하고 있다. 마음은 보이지 않으니 그것을 닦아 남에게 평가받는 데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얻을 것이 많지 않으니 어쩌면 오늘날의 분초를 다투는 세상에서는 가볍게 여겨짐이 당연해 보이기 까지 한다. 소위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교육은 가정과 사회와 학교에서 이루어 지고 있으나 사회가 분화되고 전문화 될수록 아내가 하는일을 남편이 모르고 남편의 어려움을 아내가 알수 없어진 오늘날 아이들의 고민을 부모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할아버지가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가장 많이 알고 그 일을 아버지가 배워 아버지가 두번째 많이 알고 아들은 맨 마지막으로 조금 알았다.

당연히 할아버지,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었고 스승이었고 맨토였다. 하지만 오늘날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사회에서는 정반대다. 신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범람하는 오늘날 제일 모르는 사람이 할아버지고 아바지는 조금 알고, 제일 잘 아는 사람이 젊은 아들이 된 것이다. 부모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다 보니 부모가 주신 내 몸에대한 존중도 같이 희박해 졌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주변에 자살한 지인을 두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최근 자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문화된 사회, 해체되는 가정, 이웃을 모르는 벽들에 막힌 도시화, 존중의 실종, 이런 것들이 각자의 처한 상황과 맞물려 우리의 꽃다운 이웃을 자살로 몰고 있다.

유명인 가운데 특히 많아서 최근에 안타까운 선택을 한 설리, 구하라가 있고, 가까운 몇년으로 범위를 넓혀보면 정다빈, 최진실, 안재환, 유니, 이은주, 박용하, 등 손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많은 아까운 청춘들이 한참 일할 나이에, 미쳐 꽃을 다 피워보기도 전에 우리곁을 떠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어려움에 부딛히면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정신적 공황상태 또는 그 언저리에 놓인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경구가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가 아닌가 한다.

매일 이를 되세기며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시급한 명제이자 교육과제다. 몸을 닦는 시간만큼 마음을 닦아 완전한 인격체로 균형을  맞추는 작업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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