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망조가 들면 수많은 조짐이 보인다. IMF 등 국가 부도 위기에서는 경기 선행지표가 예고한다. 과거 왕조 시대에는 여러 자연현상과 동식물 등에서 이상 징후가 빈발했다. 역사서에는 백제의 패망이 이미 예견된 일이라는 듯, 1년여 전부터 다양한 조짐을 기록했다. 그중 하나가 백제 패망을 예고한 영물로 신라 개 ‘동경이’가 등장하는 게 이채롭다.

“6월에 왕흥사의 여러 승려들이 모두 배의 돛대와 같은 것이 큰 물을 따라 절 문간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들사슴 같은 개 한 마리가 서쪽으로부터 사비하(부여 백마강) 언덕에 와서 왕궁을 향하여 짖더니, 잠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성안의 모든 개가 노상에 모여서 짖거나 울어대다가, 얼마 후 흩어졌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기 / <삼국사기> 의자왕 본기. 660년 6월.

위 기록에서 ‘들사슴처럼 생긴 개 한 마리(有一犬狀如野鹿)’라는 기사가 주목된다. 생긴 모습이나 몸체가 사슴과 비슷하다기보다 ‘꼬리가 짧은 개’라는 의미다. 즉 외형상 ‘동경이’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동경이는 경주 지방에 흔히 있었던 꼬리가 없거나 짧은 개를 말한다. 신라의 개 ‘동경이’가 짖음으로 백제의 불행을 예고했고, 이어 부여의 다른 개들도 따라 짓거나 울어댔다는 것이다.

후각과 청각이 예민한 개는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형상을 알려준다. 따라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기록에 나타난 동경이는 백제 흥망에 대한 전조를 감지한 것으로 이해된다. 물론 그 시대의 가짜 뉴스처럼 사실이 아닐 수도, 또 백제의 망조 속에서 신라의 길조를 찾는 복선일 수도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열거한 백제의 망조는 일종의 상징 조작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백제의 망국을 알리는 여러 징후에 동경이가 등장했다는 점이 자못 흥미롭다.

■ 경주 지역에 사는 꼬리 짧은 개 ‘동경이’

개는 보통 벽사의 능력을 가진 동물로 인식된다. 그래서 동서양 공통적으로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메신저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개 ‘케르베로스(Cerberus)’는 사람과 함께 이승은 물론 저승길까지 동행한다. 저승의 입구에서 지하 세계에 들어온 영혼이 나가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고대 백제사의 블랙박스를 연 공주 무령왕릉에는 개와 닮은 ‘진묘수(鎭墓獸)’가 발굴됐다. 무덤을 지키는 문지기 역할을 부여한 것. 지옥 ‘옥·獄’ 자에도 개가 들어 있다.

고구려 각저총의 전실과 현실의 통로(연도) 왼편에도 개가 그려 있다. 함께 생활했던 주인의 무덤을 지키는 사명을 받은 듯하다. 개가 그려진 고구려 고분에는 덕흥리 고분 408호, 무용총, 장천 1호 분 등이 있다.

동경이의 기원과 역사는 5세기까지 소급된다. 5~6세기 신라 고분에서는 진돗개의 외형에 사슴처럼 꼬리가 짧은 개토우가 다량으로 발견됐다. 출토된 개토우 33점 가운데 15~16점은 꼬리가 짧다. 경주개 ‘동경이’의 문화 유전자적 상징물로 평가된다.

경주지역 전래의 토종개 ‘동경이’는 댕갱이, 댕견, 동경개 등으로 불려왔다. 경주를 동경(東京)이라고 부르던 고려 시대 경주에 이 개가 특히 많아 붙은 이름이다. 조선시대 동경이에 대한 문헌 기록은 적지 않다. 1669년(현종10) 민주면의 ‘동경잡기(東京雜記)’ 1권 풍속에서는 꼬리 짧은 개를 ‘동경구(東京狗)’라고 했다.

1740년경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경주는 북쪽이 허하여 여자들이 뒷머리에 쪽을 찌고, 꼬리 짧은 개를 ‘동경구’라 불렀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조 연간 유득공은 시문집 ‘영재집’ 신라 편에서 “때때로 꼬리 짧은 개짓는 소리를 듣네”라는 시를 남겼다.

실학자 이덕무의 손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 구변증설(狗辨證說)에서 경주부의 개는 꼬리가 짧아 ‘동경구(東京狗)’ 혹은 사슴 닮은 개라는 ‘녹미구(鹿尾句)’라고 불렀다고 적었다. 조선 말기 이유원의 ‘임하필기’에서도 경주는 머리는 있고 꼬리는 없는 지형으로, 대부분 개들이 꼬리가 없다고 썼다. 이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듯, 꼬리가 짧은 경주지역의 개는 ‘동경구’, 즉 ‘동경이’라고 불렸다.

■ 나라를 훔친 개 ‘동경이’

최근 애견문화에 힘입어 토종개들보다 외국산 견공들이 판치는 세상이다. 수많은 종류의 개들은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품종이다. 하지만 동경이는 그 언제부터인지 우리 민족과 고락을 같이한 순수 토종개다. 특히 백제의 멸망과 신라의 망국을 예견했던 영물이자 명견이었다.

동경이는 털의 색깔에 따라 백구(白狗), 황구(黃狗), 흑구(黑狗), 호구(虎狗)로 나뉜다. 진돗개(천연기념물 제53호)와 분류법이 같다. 꼬리만 감추면 동경이와 진돗개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동경이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개와 달리 꼬리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꼬리뼈 마디가 2개 정도밖에 없다는 점이다. 대신 몸이 유연하고 민첩하다. 수렵 능력에 있어서도 진돗개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동경이를 포함한 많은 토종견들이 학살됐다. 매년 수십만 장의 견피(犬皮)가 만주 지역 등에 주둔한 군대의 방한용 전쟁 물자로 쓰였다. 광복이 되고도 오랫동안 동경이는 꼬리가 없어 재수 없는 개로 인식됐다. 복 없는 개, 병신 개 등으로 불리며 사람들의 천대 속에서 잊혀갔다. 동경이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이다. 2012년 문화재청에 의해 천연기념물 제540호로 지정됐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집 없는 10살 소녀의 기상천외한 개 도둑질을 그렸다. 그 계획이란 이렇다. 개를 잃어버려도 당장 다시 사지 않을 어중간한 부잣집의 안고 뛸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개를 훔친다.→ 전단지를 발견한다.→ 개를 데려다준다.→ 돈을 받는다.→ 행복하게 끝.

춘추전국시대 묵자는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다. 그는 가난하고 굶주린 ‘을’의 입장에서 왕이나 귀족들의 사치 풍조와 전쟁을 비판했다. 묵자는 개 한 마리를 훔쳐도 ‘불인(不仁)’이라 하고서, 한 나라를 훔치고도 ‘의(義)’라고 한 것을 지적했다. 힘이 곧 정의가 되는 세태를 풍자한 말이다. 묵자의 말은 현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보다 더한 것을 훔친 사람이 날뛰는 세상이다.

<문화평론가 박승규 skpark6401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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