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전 한국어 교사 / 현 자유기고가 안상현 = 지난 30여 년간 우리는 대한민국을 알리고 국가적 위상을 높이는 데 국제 스포츠 대회의 유치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실천해왔다. 아시안게임과 동·하계 올림픽 및 월드컵 축구대회는 물론이고 국제 육상경기대회와 유니버시아드 대회까지 세계가 인정하는 메이저 대회는 다 치러본 경험이 있으며 F1 그랑프리 대회와 세계 수영선수권대회도 이 땅에서 열린 바 있다. 그간의 여러 국제대회 유치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대내외에 새롭게 인식되어지는 계기가 되고 국가 브랜드가 제고되었으며 국민적 자긍심이 높아졌음을 필자는 부인하지 않는다.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아픈 역사와 극심한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대한민국이 각종 국제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만방(萬邦)에 모범을 보여준 것은 분명 자랑할 만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88 서울 올림픽’ 이후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개최하지 못한 국제대회가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행사를 치렀음에도 여전히 국제 스포츠대회 유치를 해야만 우리나라가 더 잘 알려지고 국가적 호감도가 상승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 수많은 이들이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일부 지방자치단체장의 치적 쌓기 과욕이 더해지면 이러한 관념은 관념의 수준을 넘어 아예 거대한 하나의 신념이 되어버리고 만다. 자신의 임기 내에 국제 대회를 유치하여 자자손손 길이 남겨줄 업적으로 남기고자 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명예욕과 권력욕은 바다를 메우고 하늘을 가릴 정도로 그 깊이와 높이를 헤아릴 수 없으니 그 어떤 공무원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반대의견을 개진하거나 대회 유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직언을 올릴 수 있으랴? ‘개최만 되면 우리 지역이 전 세계에 알려지고 사회간접시설 확충과 고용창출 효과까지 뒤따르니 앞뒤 돌아보지 말고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는 당위론과 집단주의 하에서 그 누가 감히 대놓고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으랴?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까지 돈이 들어가고 자연환경 훼손이 필수적이며 사후 시설 운영과 관련하여 첨예한 갈등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국제 스포츠대회 유치는 즉흥적 감정과 근시안적 사고에 의하여 결정되어서는 안 되며 먼 미래까지 내다볼 줄 아는 혜안(慧眼)을 갖춘 이들이 모여 합리적인 토론을 충분히 한 후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따라 신중히 판단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평창을 예로 들어본다. 재수를 하였음에도 올림픽 유치에 실패하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러시아 소치로 결정되었을 때 한 IOC 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경제력과 맹목적 애국주의만 가지고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욕심이다. 아직 한국 국민들의 동계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고 기반 시설도 열악하다. 단순히 올림픽 유치에만 신경 쓰지 말고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더 노력해 달라. 우리는 여러 가지를 보고 분석한다.”

 IOC 위원의 날카로운 지적을 참고삼아 우리는 4년 더 열심히 준비했고 결국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에는 성공하였으나 이후 여러 문제점이 드러났다. 올림픽 기간 중, 우리네 인기 종목이자 효자종목인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을 제외하고는 유료 관중이 적어 강원도 초중고 학생 및 시민 서포터스를 동원하여 썰렁한 관중석을 채우기 바빴으며 올림픽이 끝난 후 일부 선수들은 후원사의 지원이 끊겨 훈련을 제대로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경기 시설은 계속 활용하고 동계 스포츠 팀을 다수 창단하여 선수 육성에 힘쓰겠다는 국가와 지자체의 약속은 달콤한 거짓말이 되어 버렸고 루지와 스켈레톤 경기가 열렸던 평창 슬라이딩 센터는 흉물로 방치된 지 오래다. 스키장 건설을 위해 파헤쳐진 가리왕산은 전면복원을 해야 한다는 환경부와 시설 존치를 주장하는 강원도 사이의 갈등으로 인하여 앙상한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매년 산사태를 겪고 있고 본래의 풍광과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필자는 국제 봉사와 국외 여행 차 자주 해외로 나간다. 해외에 체류할 때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에 대하여 무엇을 아는지 혹은 한국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으면 열 중 여덟, 아홉은 BTS라고 답한다. 내 경험상 그들은 주로 K-POP과 K-DRAMA를 통해 처음 한국을 알게 되고 이후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은 SNS를 통해 사귄 한국인 친구들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이다. 그 외 삼성과 LG 등 유수 대기업의 전자제품을 사용해 본 경험도 한국에 대하여 호감을 가지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다. 실상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거론한 이는 많지 않았다. 대형 국제대회 유치보다는 한류열풍 덕에 대한민국을 알게 되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이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이제 국제 스포츠대회가 아니더라도 우리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대한민국을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야 하고 준비 과정만 몇 년이 걸리는 국제 스포츠 대회나 국제 행사 유치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수준 높은 문화와 예술의 힘을 통하여 또 평화를 사랑하고 정이 많은 우리 국민의 배려와 인류애로 얼마든지 우리 한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형성해갈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양질의 문화예술은 인종과 지역을 불문하고 모두를 친구로 되게 할 수 있으며 시공간을 초월하는 인터넷의 전파력으로 그 선하고 좋은 영향력은 무한대로 커질 수 있다.

 주요 스포츠대회는 아니지만 국제 행사 중 하나인 세계 잼버리대회가 2023년 새만금에서 개최된다. 2023 세계 잼버리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향후 10년 동안은 국제 행사를 유치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계 경제가 좋지 않고 국내 경기는 더더욱 좋지 않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국제 대회를 치르느라 막대하게 투입된 국가 예산 및 지자체가 떠안게 된 빚을 원상회복시키는데 남은 10년 세월도 짧기만 하다. 민(民)이 자율적인 주체가 되지 못하고 민(民)의 역동성이 결집되지 못한 채 관(官)에 의하여 동원되는 국제대회, 형식적이고 보여주기에 급급한 국제 대회는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고 국민적 피로감만 커지게 만들 뿐이다. 세계 평화 증진을 위하여 아시안게임과 유니버시아드 대회 그리고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치렀으면 우리는 세계 11위의 경제력과 평균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소득수준에 걸맞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해 온 셈이다.

 이제 정말 국제행사 유치가 만능이라는 병에서 하루빨리 자유로워지자.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업적 쌓기 욕심에 사로잡혀 임기 내 어떻게든 굵직한 국제 행사 하나쯤은 유치해야 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자. 그래도 정 국제대회 유치를 하고 싶다면 해당 지역 주민의 여론 및 의견 수렴 과정부터 필히 거치고 향후 최소 50년은 내다보고 실질적 기대효과가 있는지를 면밀히 분석하고 연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보여주기와 형식주의에 사로잡히면 어떤 이를 막론하고 최대다수의 최대피해를 이끌어냄을 명심해야 한다. 

 2032년 하계 올림픽을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 개최하자는 제안을 모 시장이 했다. 일부 정치권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며 자국 인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있고 국제사회의 지원 없이는 궁핍의 경제를 이어갈 수밖에 없는 북한이 개혁·개방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고 연일 무력시위만 계속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일부 세력이 자기네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과 소속 정당의 지지율 상승을 끌어올리기 위한 차원에서 2032년 올림픽 공동개최 카드를 꺼낸 것이라면 실로 유감이다.

 너도 나도 다 어려운 세밑이다. 이상주의의 망령에 휘둘리지 말고 어떻게 하면 실질적인 국가발전과 국민통합을 이룩할 수 있는지 각계각층이 깊이 고민하고 힘을 한데 모을 수 있는 2020년 경자년이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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