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보복을 심하게 걱정한 탓 간 기능 저하 향년 48세 생 마감

[내외뉴스통신] 이성원 기자= 1983년 2월 25일 서울에 공급경보기가 울려퍼졌다.

북한에서 날라오는 전투기가 서울, 인천, 경기를 폭격 대상이란 경보에 시민들은 겁에 질려있었지만, 전투기는 폭격이 아닌 귀순을 목적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전투기를 타고 온 이웅평 대위는 당시 훈련중에 북한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100미터로 상공하여 연평도를 지나 북방 한계선을 넘어왔다.

80년대 초 탈북자란 말은 생소할 때였지만, 이웅평은 180이 넘는 큰 키에 훈훈한 외모로 130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와 환영을 해줬다.

그는 해안가를 걸으며 산책을 하고 있는데 바다에서 떠밀려온 삼양라면 봉지를 주웠다. 

뒷면 설명서를 보니 "변질, 훼손된 물품은 본사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교환, 환불해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본 이웅평은, "남조선은 이런 작은 것에도 인민들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데 북조선은 이게 무슨 꼴인가?"라며 불만을 품고 미그기(MIG)를 타고 귀순했다고 밝혔다.

그는 탈북한지 3개월만에 한국의 공군 군복을 입고 한국에서 대령까지 진급하여 한국 공군대학에서 교관으로 일하며 공군대학의 한 교수와 결혼해 가족을 꾸렸다.

하지만 북한의 보복을 심하게 걱정한 탓인지 간 기능 저하로 향년 48세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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