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눈을 씻고 찾아 본다'는 말처럼 지난 설 연휴 동안 제 시야 안에서 '눈을 씻고 봐도' 겨우 한두 명이었습니다. 한복 입은 사람들 말입니다. 안 입어도 너무 안 입는 거 아닌가요? 21년 만에 한국에 다시 돌아온 이래 추석과 설을 각각 두 번째 맞으면서 '우리 옷'은 거의 사라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위기감과 우려로 마음이 무겁습니다. '비싸서 안 입는다, 불편하다'는 이유를 대지만 다 핑계입니다. '입성 치레'가 심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한복을 안 입을 리 없고, 더구나 여자들이 불편을 이유로 멋 부리기를 포기했다는 소리를 동서고금을 통해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수요만 있다면야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명품부터 '짝퉁'까지 단계별로 입수할 수 있고, 많이 입기만 한다면 값이야 저절로 조정될 것 아닌가요. 한복이 안 비싸다는 게 아니고 안 불편하다는 게 아니라 그것이 외면의 사유라기보다는 변명 같이 들린다는 뜻입니다.

설에 조카의 아홉 살 아들의 세배를 받았습니다. 지 엄마 어렸을 때 설빔이 고왔던 기억이 나면서 종손이 한복을 '못 얻어' 입은 건 순전히 부모 탓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어렸을 적 기억에도 없는 한복이라면 평생 못 입어 볼지도 모릅니다. 한복이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는 상황에서 장가 들 때라고 입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결혼식에서 폐백도 사라지는 추세니까요. 어쩌면 그 아이는 민속박물관에 걸린 것을 감상만 하는 세대가 될지도 모릅니다.

지난 해 통계청이 무작위 110명을 대상으로 한복에 관한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한복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겨우 13%(14명), 나머지 87%(96명)는 '없다'고 했답니다. 한복이 있는 사람 중에도 설날과 추석 등 명절에 꺼내 입는 사람은 110명 가운데 고작 4명뿐이었다고 하지요.

전국의 20대 미혼 남녀 175명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에서는 1년에 한 번도 한복을 입지 않는다는 응답이 94%, '최근 5년 사이에 입은 적 없다'는 85%, ‘아예 한복을 입어본 적이 없다’는 대답이 19%나 되었다고 합니다. 한복을 입어 본 적이 있다고 해도 스티커 사진을 찍으려고, 한복 체험 행사장에서, 관련 행사를 위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다니 그런 경우라면 입었다기보다 그저 한번 '걸쳐 본 것'이라 옹색하고 민망하게 들립니다.

제가 정기 기고를 하는 월간지 <과학과 기술> 2월호에도 이 주제를 다뤘습니다. 글을 읽은 지인 한 분이 한복을 입지 않는 작금의 사태는 뿌리가 병든 나무와 같이 심각한 일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과 우리글 사용을 금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며,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드는 등 우리의 얼과 민족 문화를 말살한 정책과 맥을 같이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옷은 곧 정체성'이라는 인식을 일본 제국주의 정권이 간파했기에 식민지 국가 조선의 옷을 여염집 옷걸이에서 끌러내려 기생집에 가져다 놓은 결과, '직업 여성의 옷'이라는 '성공적 이미지' 개선 작업을 할 수 있었고 이후 일반 부녀자들이 한복 입기를 꺼리게 되어 정체성의 한 맥을 끊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안 할 말로다 요즘 한복은 여염집 여자들을 죄다 '어우동'처럼 야시시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화려함이 지나치고 변형이 지나쳐서 형태나 색이나 선에서 단아함이나 우아함보다는 어지러운 현란함과 난해함을 풍긴다.

'한복진흥센터'라는 단체에서 지난해 전국 10~60대 5,000명 남녀를 대상으로 한복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조사한 것 중에 길에서 한복 입은 사람을 보면 ‘특수 직업인처럼 보인다’는 응답도 상당수 있었다는 점이 비슷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게 아닐까.

한복의 생명은 단아함과 청초함, 그러면서도 화사하고 고운 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울긋불긋, 주렁주렁, 겹쳐부풀림 등으로 과장된 한복의 변신이 '유죄'까지는 아니라 해도 좀 심하게 나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까칠함'은 아닐 것이다." <과학과 기술>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외교관이었던 그 지인은 의복이 존재를 규정한다고 하면서, 회교권 국가에서 근무할 때 우리에겐 유별나 보이는 그들의 고유 의상에 대해 그 나라 여성들의 인식을 직접 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문화적 자부심과 안정감을 반영하는 ‘정체성’이었답니다. 250여 다민족으로 구성된 호주에서도 각 민족의 고유 의상은 정체성의 상징이라는 경험을 통해 그분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하물며 단일 민족임을 자랑 삼는 우리나라에서 점점 더 한복을 안 입는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 중에 ‘민족 의상 회복’은 퇴행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안타깝습니다.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방편으로 이미지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제가 기생집 옷걸이에 걸어 놓은 한복을 여염집 안방으로 되돌려 놓기 위해 한국의 이른바 '상위 문화'를 주도하는 ‘강남스타일’의 작동이 요청되는 바입니다. 여성 한복부터 시작한다는 전제하에 강남 여자들이 한복을 먼저 좀 입어주길 바랍니다. 한복의 부활을 위해 '한복이 요즘 강남에서 뜬다'는 이미지 전략으로 가자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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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연

이화여대 철학과를 졸업한 후 1992년 호주 이민, 호주동아일보 기자, 호주한국일보 편집국 부국장을 거쳐 지금은 같은 신문의 편집위원이다.
시드니에서 프랑스 레스토랑 비스트로 메메(www.bistromeme.com)를 꾸리며 한민족 네트워크, 두란노 아버지 학교, 중앙일보 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심한 천국 재밌는 지옥><아버지는 판사 아들은 주방보조><글 쓰는 여자, 밥 짓는 여자>, 공저<자식으로 산다는 것>이 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shinayo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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