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20여 년 전 한국에서 사업을 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백화점을 소유하고 있는 굴지의 유통회사에서 함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자는 제안이 왔습니다. 백화점의 자체상품(PB 브랜드)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중간 마진을 없앤 가격으로 좋은 품질의 의류를 제공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이 기획은 내가 디자인한 상품에 내 이름과 백화점의 이름을 함께 붙인 상표를 쓰며 독립된 매장을 이 유통업체의 백화점에만 연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시즌마다 상품에 대한 컬렉션은 백화점과 협의를 거쳐 진행한 후 생산된 물량은 백화점이 전량 사들인다는 조건이었으니 이런 기획은 미국 백화점 업계에서나 가능하지 그 당시 한국 패션계와 유통업계에서는 있을 수 없었던 파격적인 것이라 기쁘게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내가 만든 PB 브랜드뿐만 아니라 유통업체 자체에서 기획했던 두 PB 브랜드 중 한 브랜드는 대체적으로 유통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오너 경영자의 지시를 받고 기획 생산하였습니다. 자사의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브랜드이기에 경영주의 지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패션의 불모지였던 그 시절, 이 경영자가 누구보다도 패션에 대한 선구적인 안목과 미적 취향이 탁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의 방향대로 따르는 그 브랜드의 지향점도 바람직해 보였고 그래서인지 경영자의 취향과 비슷한 주변의 특정 소비자에게 호감을 샀고 판매 실적도 좋았습니다.

그 브랜드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일 년에 두 번 열리는 밀라노 파리의 소재 컬렉션 쇼나 호텔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친 적이 있었습니다. 독립된 회사의 경영자이자 디자이너였던 나와 달리 그들은 그 유통업체의 직원으로 PB 브랜드를 진행하기 위해 소재를 구입하러 간 박람회 쇼에서 마주치면 목례를 하는 정도였는데 한 이상한 소문이 내 귀를 거슬렸습니다.

그때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는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히지 않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공부하고 미국 패션회사에서 일하다 귀국한 내겐 해괴할 정도로 이상하고 기분 나빴기 때문입니다. 오너 경영자가 기획한 두 브랜드 중, 고급 브랜드에서 근무하는 디자인 실장이 재벌 2세인 경영주의 집엘 가면 경영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영자보다 나이가 10여 년 적다지만 그 실장이 반드시 무릎을 꿇는다고 하니 기이하기만 했습니다.

예의는 지키되 상사나 오너와의 업무 대화가 자유분방한 미국 패션계에서 일하면서 무릎을 꿇거나 술잔을 올리는 것은 부모님과 스승 앞에서만이라고 받은 교육은 내 일생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보수적이었던 우리 집에도 잡다한 집안일을 도맡아 처리하던 집사,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들이 행랑채에 기거했지만 마음씨 비단결 같은 아버지, 진취적인 어머니나 할머니 앞에서 그들이 설날 세배 때를 제외하고는 무릎 꿇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실장은 왜 무릎을 꿇어야만 했을까요?
재벌 2세의 집엔 손님용 의자가 없었을까요?
고등학교를 마치자 한국의 모 복장학원에서 패턴사로 실무를 쌓다가 이 유통업체로 와서 백화점 근무 후 PB 브랜드의 실장으로 발탁된 것이 원인이었는지. 그래서 저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인지. 학력과 경력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갔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서울엔 의상학과가 있었던 대학이 둘, 의류학과가 있는 대학이 하나 정도였고, 몇 전문대학에 의상과가 있었지만 실제 패션계에서 한국의 패션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디자이너들은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도 한국 대학에서 의상을 공부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복장학원에서 패턴사로 수련과 내공을 쌓아 패션 디자이너의 길에 도전하고 나름대로의 경영도 터득하여 성공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PB 브랜드를 맡고 있는 실장의 경력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입니다.

'땅콩 회항'은 내가 한국인이란 걸 부끄럽게 만든 사건입니다. 비상식적이고 수치스러운 사건이었으니까요. 재벌 창업주의 손녀가 공사를 구별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대한항공은 'Korean Air' 라는 명칭과 태극마크를 달고 하늘을 나는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적기입니다. 그런 항공기를 수백 명의 생명을 생각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장난감처럼 자신의 감정이 폭발하는 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비행기 내부를 마치 자신의 안방처럼 생각하고 저지른 행동입니다. 직원을 무릎 꿇리고 매뉴얼 책을 던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녀가 그 정도의 교양밖에 없었는지, 항공사에서는 고객에 대한 예절과 친절을 철저하게 가르칠 텐데 그런 항공사 창업주의 손녀이자 부사장 위치에 있는 사람이 기본적인 것조차 모른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은 직원을 면담하던 유통업체 오너 경영자의 세대와 다른 젊은 그녀, 외국 유학과 해외 출장이 많았을 그녀가 공과 사가 철저한 해외 유학과 외유 중 무엇을 배웠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1년이란 실형을 받고 자신이 한 행동이 위법 행위였으며 국위를 손상시켰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동안 뉴스를 읽으며 자주 언짢은 내용과 단어들이 눈에 띄어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Korean Air'라는 명칭과 태극문양을 바꾸어야 한다는 편협한 의견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많은 국가들이 국가의 힘을 상징하는 자국의 이름을 쓰는 국적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항공사의 지도급이 잘못했다 해도 수십 년 간 대한민국을 상징했던 국적기를 없애고 비행기 동체에 그려진 문양까지 바꾸어야 한다는 극단적인 제안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인 망신을 시킨 일은 없었지만 파산의 위기에 몰린 'Japan Air'도 일본 시민들의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아 도산의 위험에서 벗어났으며 지금까지 일본의 상징으로 운항하고 있습니다.

더욱 기분이 찜찜했던 것은 이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들기 시작한 '갑(甲)질'이란 단어 때문입니다. 마치 유행병처럼 번지기 시작하여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이 단어가 혐오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의 입이나 책에 자주 쓰이던 말 중 '질'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말들은 좋은 뜻보다 나쁜 뜻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기생질''서방질''계집질' '강도질' '고자질' '첩질' 손가락질' 발길질' '도둑질' 같은 '질'이 들어가는 단어는 교육과 정서에도 아주 나쁜 말이 많습니다. 왜 아름다운 한글을 한자와 조합해 이렇게 강퍅한 단어를 만들어 국민들에게 퍼뜨리고 있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벌어지는 사건마다 너무 극단으로 끌고 가는 경향과 사용하는 언어조차도 거칠어가는 한국사회가 걱정이 됩니다. 나쁜 용어와 부정적인 단어가 난무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건의 수습과 긍정적이며 합리적인 해결 방법보다는 모두 죽일 듯이 비판하고 물어뜯으려고만 합니다. 타협이 없는 사회, 나와 뜻이 다른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가 바로 '땅콩 회항'의 주인공과 같은 독불장군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태어나 미래에 괴물로 자라날 아이들은 우리의 책임일 것입니다. 무섭지 않습니까? 우리가 자성을 하지 않는 한 ‘땅콩 회항’보다 더 섬뜩한 일들이 미래의 한국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마리

글쓴이 오마리는 샌프란시스코대학에서 불어, F.I.D.M (Fashion Institute of Design & Merchandising)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The Fashion Works Inc, 국내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경영하는 등 오랫동안 관련업계에 종사해 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글쓰기, 그림그리기를 즐겼으며, 현재는 캐나다에 거주하면서 아마추어 사진작가로 많은 곳을 여행하며 특히 구름 찍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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