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쉽지 않은 시대가 된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결혼을 평탄하게 유지하는 것은 더 쉽지 않은 시대다.

필자는 혼인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누구보다 소소하게 들으며 수많은 인생을 접한다. 타인의 굴곡진 인생이 애달프지 않겠느냐만 변호사는 사연보다는 사실을 듣고 준엄한 법의 심판대 위에서 이들과 함께 한다.

부부가 결혼한 후 서로에게 상처주지 않고, 이혼하지 않은 채 평생을 해로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백세인생에 한 배우자를 만나 평생을 해로하면서 산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다.

부부가 함께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맞지 않아 헤어질 때 잘 헤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잘 먹고 잘 살자는 웰빙',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하자는 웰다잉'이 필요한 것처럼, '이혼할 때 갈등을 악화시키지 않고 멋지게 마무리하는 웰 디보싱' 도 필요하다.

- 우리 법이 취하고 있는 '이혼 유책주의'

우리나라는 당사자 합의만 있으면 협의이혼이 가능하다. 배우자 일방이 유책이든 아니든 합의만 되면 법원이 이혼여부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사자가 이혼합의에 이르지 못해 재판을 하는 경우에는, 혼인생활 파탄에 대한 잘못이 있는지에 따라 이혼이 되기도 하고 기각되기도 하는 것이 '유책주의' 입장이다.

우리 민법 제840조에서는 재판상 이혼사유로 1)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 2) 배우자가 악의로 다른 일방을 유기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은 때 5)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은 때 6)기타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를 나열하고 있다.

동 조항 제1호에서 5호는 직접적으로 유책사유를 적시하고 있음에 반해 동조 제6호에서는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 로만 적시하고 있다. 일견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고, 그 회복이 불가능한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이혼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법조문상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조 제6호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례의 입장은 확고하고 일관된다. 즉 혼인생활이 파탄에 이르러 그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라 하더라도 혼인생활 파탄에 주된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이런 법조항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상존하고 있다. 부인의 외도사실을 확인한 남편이 현행법상 유책주의를 등에 업고 이혼은 불가하다며 외도한 부인에게 횡포를 부리는 경우가 꽤 많다. 만나는 사람, 장소, 연락처를 적어 남편에게 보고하라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하고, 자녀들 얼굴에 먹칠을 했으니 평생 쥐 죽은 듯이 살라며 자신의 소유물이 아닌 배우자에게 불륜의 족쇄를 채운 후 배우자의 일상생활을 통제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혼인관계유지가 우리 법이 지향하는 바는 아닐 것이다.

법원은 유책주의에 따라 이혼청구를 기각하면 그만이지만, 소송을 제기했던 유책배우자들이 이혼청구가 기각된 이후 혼인관계를 회복하여 원만히 함께 사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할 것을 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데, 서류상, 법률상 혼인관계 유지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

​법은 시대와 개념에 따라 바뀐다. 그리고 판례도 바뀐다.

현대사회에 부합하지 않는 법이라면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 유책주의를 취하는 현행법과 판례는 시대상황에 역행하는 것이다. 과감히 유책주의를 폐기할 필요가 있다.

유책주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입법자들의 고민,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이 있었다. 축출이혼으로 무책배우자 및 미성년 자녀가 경제적, 인격적, 정서적 곤궁함에 처하는 것을 막고자 했던 것이고 그와 같은 취지는 지금도 유지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은 혼인을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혼 후 미성년 자녀 양육에 대한 민, 형사 책임 강화, 무책 배우자가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액수의 상향현실화, 재산분할에 있어서 청산적 요소 뿐 아니라 이혼 후 무책 배우자에 대한 부양적 요소의 적극적 반영을 통한 보상적 재산분할을 통해서 달성 가능하다고 본다.

​재판상 이혼에 있어서 엄격하게 유책주의를 고수하는 것은 이혼을 구하는 개인의 헌법상 기본적인 행복추구권, 인격권, 사생활의 자유 등을 심대하게 침해한다. 유책배우자의 헌법상 기본권 침해로 인해 수호하고자 하는 법적 이익 내지 무책 배우자의 권리는 무엇일까? 무책배우자의 이혼하지 않을 권리가 보장되는가? 한집에서 사는 것을 법으로 강제할 수 없는 이상 서류상 혼인관계를 유지하도록 법원이 선언해 주는 것은 공허한 허울일 뿐이다.

​​혼인, 이혼은 개인의 사적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고,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개인의 결정이 존중되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타인의 사적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개입하고 폭력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유책주의로 인해 배우자, 가족, 사회로부터 낙인이 찍힌 사람들의 혼인생활 유지에 관한 기본권과 무책배우자의 권리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  울산 변호사 정선희 법률 사무소 정선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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