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주체사상은 북한 최고의 지도사상으로 김일성이 창시하고 김정일이 체계화 시킨 북한의 공식 이데올로기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과 조선노동당 규약에도 주체사상은 지도사상으로 명시되어 있다. 2009년 개정 헌법에서는 주체사상을 선군사상과 더불어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명기하였고, 2010년 노동당 규약의 전문에 “조선로동당은 주체사상을 유일한 지도사상으로 하는 주체형의 혁명적 당이다.”라고 규정하였다.

북한의 주체사상의 본질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상” 내지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다는 사상”으로 규정되며 헌법보다 중요시되며 김일성 숭배에 이용된 사상이다. 사상에서의 자유, 국방에서의 자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 등 주체사상의 주요개념들을 김일성이 최초로 만들었다고 선전하고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주체 1년으로 표기하는 새로운 연호를 사용해왔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맑스ㆍ레닌주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사상이라 할 수 있다. 북한에서 주체라는 말은 정치적으로는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철학적으로는 맑스ㆍ레닌주의로부터의 독립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1960년대 중소 분쟁의 와중에서 독자생존을 위한 몸부림 속에서 체계화되었다. 해방직후 북한에서는 맑스ㆍ레닌주의를 지도사상으로 삼고 그에 기초하여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추진해 왔으나 정권 수립 초기에 유일이론으로 간주한 맑스ㆍ레닌주의를 주체사상으로 교체하고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활용해 온 것이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기원을 김일성 항일무장투쟁 시기로 소급하여 설명한다.
김정일은 주체사상의 기원과 관련하여 1930년 만주 지린성 소재 창춘현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지도간부회의’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고 조선혁명의 주체적 노선을 밝혔다고 주장한다.

실제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는 1950년대에 최초 등장한 이래 1970년대 중반까지 여러 변화를 겪었다.
1950년대 주체사상이 등장할 당시 북한내부 사정은 6.25 전쟁 실패로 인하여 김일성이 궁지에 물리자 전쟁실패 책임을 부수상이었던 남로당의 수령 박헌영에게 전가시켰다. 1953년 소련 수상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김일성 지지세력이 약화조짐을 보이자 북한내 연안파, 소련파와 국내파(남로당파)들은 반김일성 세력을 형성하고 김일성에게 도전을 하게 된다.
대외적으로도 김일성의 통치 이데올로기의 기반이 되어 온 마르크스-레닌-스탈린주의가 후르시초프에 의해 격하운동을 당하는 상황이 되고 소련이나 중공을 배경으로 삼아 김일성을 권력에서 축출하려는 세력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새롭게 내세우게 되었던 것이다. 1950년대 주체사상 강조는 1956년 종파사건을 계기로 주로 정적 제거에 활용된 것이다.

1960년대로 넘어가면서 주체 확립은 북한 정권의 자주성 확립 문제로 확장되었다.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로 정식화 된 것은 1961년 제4차 당 대회 이후이다. 주체사상은 1960년대 후반 김일성을 정점으로 한 유일체제의 통치 담론으로 굴절되기 시작하여 1972년 9월 17일「우리 당의 주체사상과 공화국 정부의 대내외 정책의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김일성 연설에서 주체사상이 등장한다.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김일성주의와 유사한 이념으로 강조되었다.

이후 1982년 3월에 발표된 김정일의 논문『주체사상에 대하여』에 의해 주체사상이 체계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체사상은 이론 면에서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 원리, 지도적 원칙 등으로 구성된 좁은 의미의 주체사상과, 김일성주의를 일컫는 넓은 의미의 주체사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철학적 원리로서의 주체사상은 “사람을 위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한 사람중심의 철학으로 규정된다. 사회역사 원리로서의 주체사상은 사회역사적 운동의 주체 · 본질 · 성격 · 추동력 등을 밝히는 원리로서, “혁명과 건설의 주인이며 자연을 개조하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결정적 요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넓은 의미의 주체사상인 김일성주의는 북한 사회주의 건설 과정에서 김일성이 제시한 혁명이론과 영도방법 일체를 지칭한다.
주체사상의 인본주의 철학은 맑스의 사상과도 맥락이 닿고 있다.

주체사상은 한때 북한인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고 전쟁 후 폐허가 된 북한을 재건하는데 활용이 된 사상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주체사상은 김일성 부자의 우상화에 이용되고 인민을 착취하고 통제하며 인권을 말살하는 도구가 된 사상으로 전락되어 외부와 교류협력을 단절한 폐쇄되고 고립된 사상으로 북한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나라, 세계 최빈국 수준으로 전락한 중요 동기로 작용한 사상으로 평가할 수 밖에 없다.
국방에서 자위원칙은 핵무력 포기불가로 경제에서 자립 원칙은 대외개방을 경계하고 정치에서 자주 원칙은 미국과 적대관계를 유지하고 남조선 사회주의 정책을 고수하게 된 배경이다. 북한은 주체사상 이외에도 선군정치, 강성대국론 같은 새로운 슬로건도 내세워 왔지만 주체사상은 계속 강조되어 왔다.

북한이 스스로는 핵무기를 가진 군사 강대국이라고 외칠지 모르지만 전세계 사람들은 북한을 가난한 나라라고 보고 있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김일성이 창시한 것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김일성 주체사상이 나오기 이전에도 우리역사에서는 주체사상이나 자주사상은 분명히 존재해 왔다.
오래전부터 불교에서는 주체적 인간관을 강조해왔다. 고구려 연개소문과 고려 서희도 주체정신과 자주외교를 강조하였다. 다산 정약용도 기존의 유학을 새롭게 재해석하였고 중국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의식을 강조하였다. 단재 신채호도 민족주체성을 강조하였으며 그의 낭가사상은 한국의 주체적인 전통사상으로서 구체화되었다. 신채호가 한국고대사연구를 통해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전통적인 민족사상과 낭가사상은 한국고대사의 인식과 서술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고 국권회복의 실천적 이념으로까지 발전되었다.
전쟁이 빈발하던 시기, 제국주의가 활개를 치던 시대와 냉전시대에는 주체를 강조하는 사상이 필요할 수 있지만 지금은 평화를 존중하고 평화속에 상생과 공동번영을 해야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현대는 융합사상이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주체사상에 세뇌 당해 지도자가 잘 살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아왔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을 겪으면서 북한 주민들도 의식이 크게 변해왔다. 지도자와 당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북한은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구호와 함께 집단주의를 강조해 왔다. 개인의 인권과 창의성은 집단속에 묻혀 존중받지 못한 것이다.

이제는 북한도 변해야 산다. 남북한의 경제수준이 달라진 원인은 건전한 비판이 허용되는 민주주의 제도와 창의성의 차이에 있다. 국리민복의 달성, 즉 경제성장과 복지국가의 실현이 정치의 요체라 할수 있다. 국민을 가난하게 하는 지도자는 지속적인 지지를 받을수가 없다.
북한은 주체사상만 고수하면서 우물안 개구리로 전락할 것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맞게 새로운 조화와 융합사상을 도입하고 고립된 현실을 개선하면서 핵을 포기하고 인권도 존중하면서 개혁개방에 나서야만 남북한이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고 공동번영을 기할 수 있다. 

 

-국가안보통일연구원 대외협력실장 김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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