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와 관련된 고사성어로 교토삼굴(狡兔三窟)이란 말이 있다. 영리한 토끼는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여 굴 세 개를 파 놓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토끼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영리한 것 같다. 필자가 사는 집 주위에 있는 공원에는 입곱 마리의 토끼가 살고 있다. 이 공원에는 야생 고양이도 많고, 너구리도 간간이 목격된다. 토끼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토끼는 자신을 방어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위험이 닥치면 도망치는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공원 토끼들은 안전하게 잘 살고 있다. 토끼들의 생존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혜’와 ‘기민함’이다. 

봄이 되면 암컷 토끼들은 새끼를 낳는다. 필자는 어미 토끼가 새끼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을 여러 차례 관찰할 수 있었다. 토끼는 땅속에 굴을 파서 새끼를 낳고 굴을 흙으로 덮어 둔다. 그리고 매일 아침 흙을 파내고 굴에 들어가 젖을 먹인다. 젖을 다 먹인 뒤에는 굴을 흙으로 메운다. 마무리는 주변의 마른 흙과 낙엽으로 한다.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감쪽 같다. 토끼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토끼가 사는 공원에는 까치들도 공생하고 있다. 까치들은 토끼를 노리고 몰래 접근하는 고양이를 발견하면 요란한 소리로 경보를 보낸다. 토끼는 까치와 사전 약정이라도 한 듯 신속하게 몸을 세워 주변을 경계하면서 대비태세를 취한다. 위기 경보에 대한 기민한 반응과 대응이다.

한반도는 분단이라는 현실과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이익선이 교차하는 지정학적인 특성으로 인해 안보위협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왔다. 
북한은 2006년 10월부터 2017년 9월까지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하였고, 2018년 4월에는 ‘경제-핵(核) 건설 병진노선’ 대신 ‘사회주의 경제건설 총력노선’을 제시하였다. 핵 무력 건설은 완성되었다는 주장이다.

중국은 북한의 항구를 빌려 동해로 진출하려는 차항출해(借港出海) 전략을 구사하고 있으며, 북한 북동부의 나진항과 청진항 부두 사용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중국 단둥(丹東)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신압록강대교의 마무리 공사가 진행중이다. 이 다리가 완공되면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관문 역할을 할 것이다. 북한과 중국이 2010년 2월 25일 체결한「압록강 국경다리의 공동건설과 관리 및 보호 협정」에 따르면 북한 구간의 다리도 중국의 원조로 건설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다리를 건설한 이면의 전략을 숙고해 볼 필요가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도 북한 북동부 진출을 도모하고 있다. 2013년 9월 하산-나진 간 철도를 개통하였고, 나진항 부두 사용권도 확보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동진전략과 러시아의 남진전략이 북한 북동부 지역에서 충돌하는 모양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북한이 일본에 평양-원산 간 신칸센 건설을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고, 북-일 비밀접촉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 주변국의 지전략(geostrategy, 지리전략의 줄임말)이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구한말 일본과 구미열강의 경제적 침탈을 당한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간과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최근에는 환경·보건 등 새로운 분야에서 신종 위협이 나타나고 있다.  미세먼지 문제가 국가적 재난으로 부각될 만큼 환경안보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바이러스 감염증은 전쟁에 버금가는 희생을 초래하고 항공모함의 기동을 제한할 정도로 위협적이다. 국가마다 감염병 대응의 수준을 넘어 보건안보 차원에서 총력을 다하고 있지만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이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느닷없이 닥친 신종 위협이다.

이처럼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안보환경은 안보와 비안보의 구분이 쉽지 않은 모호성과 불가측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전통안보와는 달리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특징도 있다. 이와같이 한반도의 안보환경은 질적으로 크게 변하고 있다. 변화된 환경에는 그에 걸맞는 전략이 강구되어야 한다. 지정학의 틀에서 이루어지는 과거의 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정(地政) 전략을 넘어 지경(地經), 지환경(地環境), 지보건(地保健) 전략 등이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전략이 강구되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교토삼굴(狡兔三窟)의 지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통안보 시기에는 군사적 대응이 수반되지만 가시적이고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기 때문에 굴을 하나만 준비해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의 굴로는 다양한 신종 위협이 출현하는 안보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영리한 토끼처럼 3개의 굴을 미리 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와 기민함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한반도라는 배가 항해하는 바다는 불확실성이라는 파도가 넘실대는 곳이다. 예기치 않은 풍랑을 만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풍랑은 자연현상이기에 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리 예견하고 대비하여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 교토삼굴의 지전략이 필요한 이유이다.

오수대 /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 동북아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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