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장운규] 2020년 6월 16일 북한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을 문제 삼아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다. 4.27판문점회담(2018년) 등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추진해 온 문재인 정부의 남북화해정책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남북문제에 있어 북한의 태도는 늘 도발과 협상의 반복이었다. 예컨대, 청와대 기습사건(1968년)이 있고 난 후 7.4 남북공동선언(1972년)이 있었고, 아웅산묘소폭파암살사건(1983년)과 KAL기 폭파사건(1987년) 그리고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1996년) 등이 있고 난 후 6.15 남북공동선언(2000년)과 10.4 남북공동선언(2007년)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천안함 폭침사건(2010년)과 연평도 포격사건(2010년) 이후의 남북 당국자회담(2015년) 등이 그 예이다.

이러한 북한의 이중적인 행동 양상은 그들이 협상을 수단으로 치부함과 동시에 취하고자 하는 목적이 그 협상을 위한 바램과 궤를 달리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가 재차 확인한 것은 북한이라는 대상이 결코 ‘신뢰할 수 있는 좋은 협상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있어 가장 우선시 되는 사안은 자신들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이며, 이는 협상에 임하는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협상 자체에 있어서도 북한식 협상 스타일이라고 명명되는 전술로 인해 북한과의 협상 과정은 늘 험난하고 결과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었다.

2017년 북한이 핵무력 건설의 완성을 선언함에 따라 우리에게는 전쟁이라는 공포의식의 확산과 더불어 저들의 협상 전략에 속수무책 끌려 다닐 확률 역시 높아졌다.
 
북한의 비이성적, 예측 불허의 도발적 행동에 대해 우리는 크게 두 가지의 대응 전략을 사용해왔다. 이른바 ‘강경책’(强硬策)과 ‘유화책’(宥和策)―일명 ‘채찍과 당근’ 전법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대응 전략이 모두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강경책은 북한을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동하여 자칫 전쟁이라는 최악의 사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악수(惡手)가 될 수 있다. 또한 유화책은 우리의 호의를 자신들의 체제를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기회로 이용하기 때문에 일방향적 소통의 수동적 형태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결과 역시 제한적이며 임의적이다.

결국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대응 전략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북한이 핵무기 전략을 체제 보전을 위한 생존 무기로 활용하는 이상 전쟁이라는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대응 전략도 최악의 사태를 피해야하는 것에 기초해야 될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전쟁의 형태는 변모했다. 이전과 같은 총력전이나 전면전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전쟁을 통한 손실이 그 이득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문명이 발전했다. 더 이상 승자의 이득이 패자의 손실로서 상쇄되지 않는다. ‘제로섬게임’(zero-sum game)의 성질에서 탈피한 것이다. 전쟁은 승자가 없는 싸움이 되었다.

전쟁은 이득이 없는, 끝없이 손실을 유도하는 ‘네거티브섬 게임’(negativesum game)이다. 허나 전쟁은 여전히 발생한다. 더구나 북한이라는 비이성적 집단 앞에선 안심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북한과의 협상이 괄목할만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을지라도 언제나 대화의 창구를 먼저 열어야만 하는 입장에 서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전쟁을 피함과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일 한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허나 북한이 ‘좋은 협상자’가 아닌 이상, 그들과의 협상은 ‘윈윈 게임’(Win-Win Game)이 될 수 없으며 이에 따라 늘 협상을 제안하는 우리의 입장은 이러한 자체적 딜레마 속에 빠져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난국에서 어떠한 해법을 찾아내야 할까?

고대 트로이에서 십여 년간 이어지던 전쟁을 끝낸 것은 그리스의 장수 오디세우스가 짜낸 계책 ‘트로이 목마’였다. 이 목마에 의해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트로이성이 하룻밤 사이에 함락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트로이 목마와 같은 수이다. 현재의 답보 상태를 과감하게 타파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계속 되풀이 되어왔던 방식이 아닌 틀 자체를 바꿀 새로운 한 방이 요구되는 것이다. 트로이 고사에 비추어 봤을 때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남한 문화의 조용한 전파는 주목할 만한 지점(至點)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남한의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어: 사불), 국제시장 등의 영상매체가 소리 없이 번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의 자발적 수용으로 그들 내부에서 자체적 변화의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젠 기존의 정책적 대응 전략에서 벗어나 북한 내부의 변화에 집중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협상을 준비해야 되지 않을까? 트로이 목마를 보내는 일 말이다.

장운규 / 중앙대 동북아개발협력연구소 연구원 / 한국C.T.M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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