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순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북한학 박사)

국회 정보위원회는 지난 8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국가정보원의 직무 범위에서 대공수사권을 삭제하고 대신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국가정보원법 전면개정안’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 법안이 원안대로 본회의에서 통과될 경우 대한민국의 대공수사권은 기능부전으로 자연사할 것이며, 대공수사권이 없는 국가정보원은 무력화될 것이고 이어 국가보안법도 사문화되어 폐지된 것이나 진배없게 될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은 언뜻 보기에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몰아주는 것 이상의 ‘다른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경찰의 ‘보안 수사’ 조직과 인력이 이미 대폭 감축된 상태에서 그의 ‘용도 폐기’를 목적으로 한 ‘정보경찰 폐지와 보안경찰 축소 개혁’을 별도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게 되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은 ‘숨은 목적’이 따로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툭 터놓고 말해,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이 ①국가정보원 해체 ②대한민국 대공수사권 폐기 ③국가보안법 폐지의 ‘1석 3조’를 노린 꼼수 전략이 아닌지 물을 수밖에 없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대성공은 종합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의 보이지 않는 활약과 북한 공산집단의 우리 자유민주주의체제 전복 책동을 저지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마련된 국가보안법과 대공수사권이 제대로 작동되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은 만인주지의 사실이다. 이처럼 대한민국 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해온 법적 제도적 장치를 안보 전문가들의 충분한 논의도 없이 일거에 속전속결로 폐기 처분하려는 시도는 국민적 저항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더욱이 북한의 최근 대남전략기반 강화 동향을 직시하면 그 이유가 더욱 자명해진다.

먼저, ‘국가정보원법 전면개정안’은 ‘핵무기를 바탕으로 전개될 향후 북한의 대남공작’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를 깊이 있게 숙의했다는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남북분단 75년 동안 북한 공작원의 직접 또는 우회 침투, 납치와 살상, 하늘과 바다와 육상을 가리지 않고 자행한 폭파와 폭침 등 대남공작의 폭력성은 날이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 가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이러한 대남공작 활동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것이다. 이미 이런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북한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와 ‘메아리’는 친북 매체 보도를 인용하는 방식을 빌어, 현 정부와 통일부 장관, 외교 안보 특별보좌관을 상대로 “미국에 맞설 용기를 내야 하며, 한미연합훈련을 싹 다 없애고, 친미사대 근성을 버리라”고 공개 협박했다. 이런 무례한 ‘지령’이 ‘핵무기보유’에 도취한 오만함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미국과학자연맹(FAS)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북한 핵무기수를 60∼100여개로 추정하며 앞으로 200∼300개까지 늘려 ‘역내 패권’을 노릴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보유 핵무기수가 300개를 넘어설 때쯤 되면 대놓고 북한 주도의 ‘연방제 통일’을 강요하기에 이를 것이다.

다음은, 북한 대남전략 관련 조직의 인적 역량 강화추세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결함 수준으로 결여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김정은 정권은 대남·외교 라인에 김영철, 김여정, 리선권과 같은 초강경인물들을 배치해 놓고 있다. 김영철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주도한 인물이다. 대미·대남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김여정은 대한민국 대통령 저격수 역할을 맡고 있고 지난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흔적도 없이 폭파해버린 인물이다. 리선권은 ‘냉면 목구멍’ 위협 발언에서 보았듯이 대남 협박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저지를 수 있는 ‘위험인물’이다.

이런 대남·외교 라인 강경 인물들은 세습 독재 정권 아래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합법적이고 폭력적인 대남공작 활동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우리의 통일부를 상대하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말고도 수만 명의 공작 전문인력을 운용하는 ‘통일전선부’와 ‘정찰총국’도 여전히 건재해 우리의 안보를 파괴하는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이 세계 각국에 구축해 놓은 거점들을 드나들며 각종 첨단 매체와 기술, 공작원을 동원해 대한민국의 안보와 국익을 해치는 간첩 활동을 전방위적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김정은 정권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대남적화를 체제의 존재 이유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당 규약 서문에 ‘최종 목적은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하는 데 있다’고 명시해 놓고 있다. 한반도 전체를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김정일의 선군사상이 실현되는 사회로 만드는 일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2018년 2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노동당 핵심 간부들에게 ‘남북한정세가 어떻게 달라지든 대한민국은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우리의 주적이라는 것을 뼈에 새기도록 하라’는 문건지시를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북한의 ‘최종 목적’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부류들이 진을 치고 있으며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파괴하려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우리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부정하고 토지공개념을 내세워 신성한 노동과 사유재산제도에 대한 거부감을 유도하며 ‘지방정부’별 대북 사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연방제 통일’ 토대구축을 부르짖고, 실질적 안보는 뒷전으로 미룬 채 전시작전통제권 조기환수를 주장하며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진력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해체, 대공수사권 폐기, 국가보안법 폐지는 북한의 ‘대남(對南) 숙원사업’이다. 우리 국회가 ‘국가정보원법 전면개정안’을 북한의 ‘소원성취’를 도와주는 방향으로 추진될 수는 없다.

과거 국가정보원이 대공수사권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극소의 ‘절차적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절차적 문제점이 들어난 사건도 ‘안보침해 실체’가 명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 ‘안보적 함의’를 경시하거나 부정해서는 안 될 것이다. 행여 사적 이해관계나 감성적 정의에 치우친 ‘개혁’은 나무만 보고 전체 숲을 보지 못하는 졸속개혁으로 전락할 수 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조자룡 헌 칼’ 쓰듯 마구잡이로 ‘칼날’을 휘 둘러 안보의 기둥마저 베어버리는 누는 피해야 할 것이다. 국가정보원의 일부 역기능을 이유로 안보의 초가삼간마저 불태워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숨기지 않을 수 없다.

이병순 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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