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황흥익(법학박사)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옛말처럼 요즘 시중에 나도는 ‘광화문’이라는 용어는 마치 모든 사회악(惡)의 근원은 여기로 통한다는 듯이 언론·방송에서 연일 ‘광화문 발~’이라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왜곡·굴절된 가설(假說)도 수차례 반복하면 정설(定說)로 변형될 수 있다는 일종의 ‘학습효과’를 기대는 심리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실제가 그래서 그런 것일까.

 상황을 바꿔 과거 월남의 경우를 들춰본다. 1969년 6월 6일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임시혁명정부로 개편될 당시 같은 청사안에는 이미 여러명의 공산프락치가 침투해 있으면서 각종 회의내용이 하루도 안걸려 공산월맹에 전달되고, 이듬해인 1967년 대선에서 차점으로 낙선한 변호사 출신 반미주의자 쭝딘주와 역시 반미주의자인 도지사 녹따오 등 많은 정치인·관료들이 모두 공산프락치(간첩)이였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쭝딘주는 당시 “우리 조상들이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시면 얼마나 슬퍼하겠는가? 월맹과 대화를 통해 얼마든지 협상이 가능하다, 평화적으로 남북문제를 해결하겠다”라고 했다. 지금 우리의 현실과 너무도 닮은 데칼코마니(Decalcomanie)가 아닐 수 없다.

 당시 현지에 있던 이대용 공사는 “1975년 4월 30일 월남 패망시 무려 6,000여명에 이르는 간첩이 침투해 언론인·종교인·정치인·법조인 등 지식인들을 배후조종하고 반미(反美)를 외치며 미군철수를 주장하고, 주적개념을 무력화하는 시위를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공산당의 핵심전술은 프로파간다(propaganda), 즉 선전·선동술이다. 이런 전술은 마치 ‘광화문’을 악의 온상인냥 몰아가는 것처럼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며 자극적인게 특징이다. 합리적 설득력이 부족하기에 더욱 의심되는 부분이다. 여기에 더해 허위의 사실을 확대 재생산하는 데는 이를 추적하고 제어하는 정보기관부터 무력화시켜야 하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인지 월남도 패망 직전 여러파벌로 나뉜 진영(陣營) 다툼속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날때마다 대공(對共) 전문가들은 쫒겨났고, 대공기관과 정보기관은 형해화(形骸化)되었다. 이러다보니 대(對)월맹 정보수집은 고사하고, 자국 내부에 침투한 공산프락치조차 검거하는데 무기력했다. 한나라를 망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나라의 정보기관부터 무력화시켜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의 경우 대공수사가 그동안 자유민주주의 체체를 수호하면서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라 비록 공과(功過)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같이 간첩하나 잡기 힘든 이빨빠진 고양이로 전락한 적은 없었다.

 지금 지식인과 양심적 애국인사들이 아우성이다. 정부가 소위 정보기관 개혁이란 깃발아래 작업을 추진하면서 곳곳에서 미숙하고 어설픈 마찰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4일 여당 김병기의원이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은 ‘대공수사권을 3개월 이내에 다른 수사기관에 인계’ 하도록 규정하고, 원안대로 개정되면 내년(2021년) 1월 1일 시행되어 4월 이전에 대공수사권은 완전히 국정원을 떠나 경찰로 넘어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국정원법 개정안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그 내용은 웅장했던 선박을 쪽배로 만들어 놨고, 안보는 뒷전으로 밀려 국민이 나라를 걱정해야 하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을 주고 있다. 더욱이 한 나라의 정보를 총괄하는 ‘국가정보원’이라는 국격(國格)이 담긴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이라는 반쪽짜리 이미지로 전락시키며 범(寅)을 고양이로 만들고, 핵심 직무범위에는 일부 오해소지가 없지 않던 ‘국내정보’는 물론, 지난 60년간 북한의 대남침투를 저지해온 ‘대공수사’마저 쏙 빼면서 자신들의 검은 속셈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즉 북한 편향의 사상활동을 전개하는데 걸림돌인 대공(對共) 바리케이트를 치우고, 용공통일(容共統一)로 가겠다는 저의가 담겨있지 않고서는 이럴 수 없다는 것이다. 
  
 좀더 솔직히 말해보자. ‘대공수사권’을 일괄 삭제하려는 저의는 과거 386세대 학생운동권부터 소위 ‘민주화’라는 허울을 쓰고 반정부활동에 진력해온 직업화된 좌파세력들의 눈에 박힌 가시같은 존재였기에 일종의 제동장치를 제거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즉 국정원의 대공수사가 80년대 386운동권 세력이자 현재 586이라 부르는 이들에 대해 과거 북한 주체사상에 빠져 김父子 세습을 찬양할 때 제동을 걸고 단죄했다는 이유에서 설욕의 기회를 잡은 이때에 파괴의 정치를 하고 싶은게 아닌가. 그래서 보복의 정치, 한서린 정치, 대국민 통제의 정치를 하겠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가운데 정부는 대공수사를 경찰로 넘겨 계속 이어가면 된다는 식으로 대국민 눈속임을 하고 있다.

 국감자료에 의하면 경찰은 이미 2017년이후 대공업무를 수행하는 보안경찰의 숫자를 매년 20~30%씩 축소해오면서 580명이던 보안수사대 인력을 2018년에는 479명으로 대폭 줄였고, 최근에도 조직과 인원을 상당수 축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더해 “북한은 현재 해외에 200여개의 공작거점을 보유하면서 간첩을 제3국으로 경유시켜 신분세탁하는 방식의 우회침투를 하고 있어 그 어느때보다 해외 정보망이 중요해졌다. 그러나 경찰은 이러한 역량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경찰출신 L모 의원은 “경찰은 대공수사 능력이 없다”고 폭로하였고, 한국거점 전직 CIA요원 존 플레밍(前 CIA코리아미션센터장)도 “한국경찰은 월드클래스지만, 북한 간첩은 잡기 어렵다”라고 단언했다. 한마디로 정부의 태도는 “국익에 반하는 간첩이라 할지라도 잡지 않아도 된다”는 식의 무언의 압력으로 해석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면 정부는 왜 이러한 상황임에도 대공수사를 못하게 하는 무리수를 두려는 것일까. 먼저, 이 정부의 궁극적 목표가 북한식 고려연방제통일이라는 점에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그동안 북한은 우리의 인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남쪽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화덕에 쳐넣어 구워버리겠다”는 등의 저급한 욕설로 일관해왔음에도 대응은 커녕 오히려 통일부에선 더욱더 지원을 못해 안달난 모습을 보여 국민들의 공분을 자아냈고, 그동안 남북문제에만 매달리면서 이렇다할 업적이 전무(全無)한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만 되면 된다는 식의 안일하고도 무성의한 조급함이 국민들께 내비쳐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번째는 대국민 장악을 위한 몸부림으로 이해된다. 한마디로 국민들을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정부의 처분에 기대는 굴종적 사회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오만한 발상이라는 오해를 갖게 한다. 여당의 전 대표인 이해찬의원은 “더블어민주당이 향후 20년은 집권해야 한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발언이지만 이는 대국민 장악력이 관건이기에 여기에서 자신감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선량한 국민들의 감정을 후벼파는 방약무인(傍若無人)의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거대한 벽과 같이 튼튼한 안보가 역설적으로 통일의 걸림돌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튼튼한 국방력과 정보력은 나라의 근간이자 발전의 토대이다. 그러나 개혁이란 미명하에 사상이 같은 인사들로만 자리를 채우고, 소임을 다하기보다는 윗선의 눈치에만 몰두하게 하므로써 어느 조직이든 쉽게 와해할 수 있는 특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것도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이자 공산이념으로 무장된 120만의 대규모 군대와 핵무기까지 보유하고 있다는 북한과 대치하며,  최근에는 노골적으로 대남간첩에게 하달하는 북한의 난수지령(亂數指令)이 떠돌아 다녔는데도 말이다. 스스로 무장해제하면 상대도 무기를 버릴 것으로 기대하는 어리석음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대공수사요원들은 우리의 특수한 안보환경 속에서도 국가안보의 첨병임을 자처해오며 오로지 전문성과 책임감으로 국가이익과 민족생존을 위하여 밤낮없이 활동해왔다. 국가정보원은 국정원법-정부조직법-국가안전보장회의법 등에 명시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국내 보안정보업무를 충실히 수행해온 국가의 중추기관이다. 특히, 고도의 전문성과 사명감이 요구되는 안보사범 관련 수사는 남·북의 대치가 지속되는 한 자유통일하는 그날까지 국정원에서 수행하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 1990년 이후 전체 검거간첩 123명 중 89%인 109명(경찰 12명-기무사 2명), 2000년 이후 검거간첩 16명 중 88%인 14명을 국정원이 검거한 것만 보더라도 명실상부 대공수사의 맥을 이어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따라서 정보기관은 정쟁(政爭)의 대상이 되거나 정략적 차원의 개혁대상이 아니다. 주요선진국들이 정보기관의 문제점 노출시에도 정략적 접근보다는 국가안보역량 강화 차원에서 정보기관을 재편하는 경향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보기관을 당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해서는 안된다. 핵과 미사일을 손에 쥔 북한 군부의 동향이 예측불허인 시기에 정보기관을 위축시켜 결점(欠)을 고치려다 정도가 지나쳐 일을 그르친다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해서는 결코 안된다. 정부는 더 이상 월남 패망의 전철이 재현되지 않도록 국정원의 대공수사는 계속 이어져 나가도록 해야 한다. 대공전선에 켜진 빨간불을 부디 초록색으로 바꾸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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