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동은 누구?...'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수지김 피살사건이란?
장세동은 누구?...'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수지김 피살사건이란?
  • 장혜린 기자
  • 승인 2020.10.0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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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내외뉴스통신] 장혜린 기자

방송에서 수지 김 피살사건을 조명해 네티즌들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10월 1일 오후 재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회에선 수지 김 사건 간첩 조작 사건이 재조명됐다.

이날 방송에선 "'반공투사 영웅' 윤 씨의 극적 납치 탈출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1987년 1월 2일 애초부터 건장한 두 명의 남자는 없었고, 사실은 수지 김과 윤 씨 두 사람뿐이었다"라고 전해졌다.

이어 "두 사람이 심하게 다퉜고 윤 씨가 화가 많이 나서 둔기로 수지 김의 머리를 내려친 거다. 윤 씨는 충격에 정신을 잃은 수지 김의 머리에 베개커버를 씌우고 목엔 여행가방 벨트를 매 살인한 것이었다.

그때 윤 씨가 떠오른 아이디어가 월북이었다. 그래서 싱가포르로 향한 거다. 그런데 북한대사관은 오히려 왜 북한에 가려고 하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이에 윤 씨가 새로운 계획을 떠올려 시나리오를 짰다"라고 밝혔다.

여기엔 안기부까지 얽혀 있어 충격을 더했다. 안기부는 윤 씨의 거짓말과 살인죄까지 진실을 모두 알고 있었으나 당시 안기부장 장세동의 정치적 목적으로 인해 덮어졌다.

수지 김 피살사건이란 1987년 1월 홍콩에서 수지 김(한국명 김옥분) 씨가 남편 윤태식에 의해 피살된 사건. 그러나 당시 안전기획부(안기부)가 윤 씨의 범죄사실을 알고도 사건을 조작해 수지 김씨를 간첩으로 몰았던 대표적인 간첩 조작 사건이다.

1987년 1월 홍콩에 거주하던 상사주재원 윤태식은 홍콩의 자택에서 부인 수지 김(한국명 김옥분)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김 씨를 목졸라 살해한 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김 씨가 북측에 의해 납치됐으며 자신 역시 납치되기 직전 탈출했다고 신고했다. 이에 이 사건은 “북한의 미인계 공작으로 납북될 뻔했다가 싱가포르에서 극적으로 탈출했다.”는 내용으로 언론에 일제히 보도됐다.

윤 씨는 진술에서 "1월 2일 일본어를 잘하는 2명의 남자가 집으로 찾아와 아내 수지 김에게 빚 4000만 엔의 사용처를 추궁했으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와 함께 사라졌다."고 말해 김 씨가 당일 납치됐음을 밝혔다.

또 "다음날 그중 1명이 다시 찾아와 아내가 빚 때문에 싱가포르에 잡혀있으니 데려가라는 말을 듣고 4일 싱가포르로 출국했다가 북한대사관 요원에게 납치됐다."며 "이후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C호텔로 옮겨졌으나 저녁 때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호텔을 탈출, 한국대사관으로 피신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1987년 1월 26일 밤 홍콩 카오룽(九龍) 지역 내 자신의 아파트 침대 밑에서 목이 졸린 채 예리한 흉기에 찔려 숨진 수지 김의 시신이 발견됐다. 홍콩 경찰은 김 씨의 시체가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부패된 점으로 미뤄 피살된 지 15일 가량 지난 것으로 추정했다. 윤 씨는 김 씨의 피살소식이 전해진 뒤 "아내에게 돈을 빌려준 조총련이 저질렀을 것" 이라고 말했다.

당시 안전기획부는 윤태식의 범죄 사실을 알게 되었으나 대공사건으로 조작, '여간첩 납치미수 사건'으로 왜곡하여 발표했다. 당국은 윤 씨의 진술에 근거, 윤 씨가 북한 요원들로부터 정치적 망명을 강요받았으며, 부인 김 씨는 북한공작원으로 윤 씨와는 위장 결혼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수지 김의 가족들은 김 씨는 간첩이 아니며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였고, 홍콩 경찰 역시 수사본부를 차려놓고 계속해서 수사를 벌여 윤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윤 씨는 이미 한국으로 입국한 후라서 한국에 수사요청을 했으나 한국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2000년 3월 김 씨 가족의 고소로 우리나라 검찰이 수사에 착수, 홍콩 경찰로부터 수사 자료를 넘겨받았다. 그리고 사건 발생 14년 10개월여 만인 2001년 11월 서울지검 외사부는 김 씨가 남편인 윤태식 씨에 의해 살해당한 것으로 결론짓고 윤 씨를 살인 및 시체 유기 등의 혐의로 전격 구속 기소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경찰이 2000년 2월 독자적으로 인지수사에 착수했으나 국가정보원의 압력에 의해 수사를 중단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사건 이후 한국과 중국 등에서 사업을 벌여온 윤태식은 벤처기업 '패스21'의 소유주가 된 후 주가조작 및 가장납입 등을 통해 수십 억 원의 부당이익을 챙긴 뒤 이 돈으로 정치권을 상대로 로비를 벌인 사실도 밝혀졌다. 윤태식은 2003년 징역 15년 6월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날 언급된 장세동은 육군사관학교를 16기로 졸업하여 군인이 되었고 1960년대 중반 베트남 전쟁 당시 중대장과 감찰관으로 다녀왔으며 공수특전여단, 대통령 경호실, 특수전사령부 등에서 근무했다.

그뒤 특전사령부 작전참모로 재직 중 12.12 사태 및 5·17 비상계엄에 개입하였다. 이후 3공수특전여단장을 거쳐 제5공화국 출범 이후에는 1980년부터 1985년까지 대통령 경호실장을 거쳐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했다.

5공청산 때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자처하였고 1993년, 1987년의 용팔이 사건이 밝혀지자 스스로 책임을 지고 감옥에 다녀오기도 했다.

1995년 풀려났으나, 그 해의 12.12, 5.18 관련 수사로 체포되어 다시 투옥되었고, 1997년 12월 석방되었다. 허삼수, 허문도, 허화평, 박희도, 정호용, 노신영 등과 함께 전두환의 최측근 중의 한 사람이었다.

1980년대 5공청문회 때 노무현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 의 집요한 질문에 '기억이 안 난다'고 모르쇠로 일관하여,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운동권의 비판과 함께 한편으론 신군부 최고의 충신이라는 평도 들었다.

그는 5공 청문회장에서 "사나이는 자신을 알아준 사람을 위해 죽는 법이다", "차라리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어도 각하가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고 하여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장세동에 대해서는 의리와 충성스런 인물로 평가를 받았었지만 국민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hrjang@nb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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