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내외뉴스통신] 서월선 기자

“헉! 뭐야?”

저녁을 먹다가 카톡을 확인하던 아이가 깜짝 놀란다.

“왜 그래?”

“아니, 과외 시작하려던 집 학모인데 졸업증명서랑 재학증명서를 보내 달래, 헐~~”

기분 나빠하는 눈치다.

저를 못 믿어서 그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

“기분 나빠할 것 없어. 아이 맡기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빨리 찍어서 보내드려~” 했다.

아이는 “그런가?”하며 부리나케 밥을 먹고 이리 저리 서류를 챙긴다.

생각해 보니 과외를 시작하기 전에 이쪽에서 알아서 챙겨 보냈어야 될 서류였을 지도 모른다. 그 학모 입장에서는 문자를 보내기 전에 얼마나 망설였을까? 모르긴 해도 ‘이 문자를 받고 선생님이 기분 나쁠 수도 있겠지? 보낼까? 말까?’ 한두 번 이상은 고민했을 터다.

살다보면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일이지만 말하기 껄끄러운 일들이 꽤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돈 얘기다.

방송작가 26년차.

프리랜서로 이 방송국, 저 프로덕션에서 일하다 보면 여러 가지 일을 하게 되는데 일 맡기기 전에 ‘원고료는 얼마입니다’라고 미리 말해주는 담당자를 별로 본 적 없다. 그럴 때마다 ‘원고료는 얼마인지 지금 물어볼까? 그냥 알아서 주겠지?’ 한참 망설이게 된다. 어느 바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 바닥에서도 돈 얘기하는 건 쉽지 않다. 심지어 ‘그 작가 원고료부터 따지더라’며 내 앞에서 다른 작가 흉보는 담당자들을 숱하게 본 터라 내가 일한 노동의 대가인데도 당당하게 요구하는 게 쉽지 않다. 심지어 경력이 쌓여 등급 올리는 일도 알아서 해 주면 좋으련만 회사 사정이 어렵니, 뭐니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는 통에 몇 번 말을 꺼내면 ‘김 작가, 남편이 벌잖아? 왜 이래?’이러는 사람도 있다. 남편이 벌면 나는 뭐 소일거리 삼아 일하는 줄 아나? 이 뿐만 아니다. ‘왜 그래요? 요즘 형편 어려워요?’하기도 한다. 형편 안 어렵고 먹고 살만하면 재능기부해야 되는 일을 내가 야박하게 매달 따박따박 돈 받고 일한건가?

물론 내 권리는 내가 찾아야 되는 게 맞다.

‘선생님, 재학증명서와 경력증명서 보여 주세요~’

‘00님, 제가 일할 원고료는 얼마인가요?’

이런 말들을 망설이지 않고 하려면,

‘아~ 죄송해요, 제가 먼저 챙겨서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깜빡했네요.’

적어도 이런 반응이 나오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갑의 권리만큼 을의 권리도 배려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세상물정 모르는 구태가 곳곳에 남아 있는 듯하다.

혹 누군가의 얘기가 껄끄럽게 들린다면 그의 무례나 월권이 아니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의 둔감함은 아닐지 한번 점검해 봐야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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