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서월선 기자

내 어린 시절, 바나나는 지금처럼 흔한 과일이 아니었다.

웬만큼 부유하지 않고서는 바나나를 한손씩 사는 집은 드물었다.

아이가 많이 아프거나 학교에서 큰 상을 받았거나 아니면 생일이거나 그런 특별한 날이 아니면 구경하기 힘들었고, 특별한 날이라도 한두 개 정도 사서 가족 너 댓 명이 둘러 앉아 맛만 볼 수 있을 정도로 귀했다.

나에게도 바나나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 있다.

엄마가 가끔 바나나를 사 올 때가 있었는데 항상 딱 한 개만 사 오셨다. 그걸 가운데 부분을 큼지막하게 남기고 삼등분하셨는데 살이 많은 가운데 토막은 남동생한테 주고 내 차지는 늘 양 가장자리 작은 토막이었다. 누가 봐도 두드러지던 그 크기 차이가 평소 딸인 나보다도 아들을 더 챙기던 엄마의 애정의 척도인 것만 같아 참 서러웠던 기억이 난다.

알고 보면 바나나는 세계 경제사를 바꾼 과일이다.

15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길에 인도산 바나나를 들여오면서 바나나의 국제이동이 시작됐지만 쉽게 물러지는 게 흠인 탓에 여러 가지 기술개발을 필요로 했다. 장거리 수송을 하는 화물선에는 냉동시설이 처음 도입됐으며 하역작업을 신속하게 하려고 농장과 선박 사이에 교신을 하던 게 라디오 통신 기술로 발달하게 됐다. 그리고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비중을 조절해 과일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CA저장법도 바나나 덕분에 개발됐다고 한다.

그랬던 바나나가 지금은 마트 과일코너 한 귀퉁이에 밀려나 있다.

삼십여 년 전 바나나 자리였을 진열대 앞쪽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샤인 머스켓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서사나 과일의 서사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하다.

사과나 배처럼 평생 적당히 흔하고 적당히 보통인 삶만 살았던 과일도 있지만, 바나나처럼 한번 정점을 찍고 내려 와 지금은 뒷방 노인네처럼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과일도 있다.

‘내 삶을 과일에 비유한다면 저 어디쯤 있을까?’ 하릴없이 생각해 보다 피식 웃는다. 진열대는커녕 들판 어딘가에서 잡초와 함께 자라고 있을 이름 없는 수많은 열매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해서......

사 놔도 잘 먹지 않는 바나나를 지나치고 아이가 좋아하는 샤인 머스켓을 두어 송이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내게 바나나가 뒤에서 이렇게 궁시렁대는 것만 같다.

‘내가 왕년에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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