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서월선 기자

제주에서 3년 살 때 일이다.

같이 책 읽는 모임이 있었는데 우리 영어공부도 좀 해 볼까? 해서 즉흥적으로 영어회화모임이 만들어졌다.

다들 40대 아줌마들이라 뭐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겠지 생각했는데 웬걸, 두엇이 대학 때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외국생활도 몇 년 한 터라 쓰고 말하는 게 꽤 능숙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다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어서 잘 하는 둘을 선생 삼아 매주 만나 서툰 영어로 근황도 얘기하고 영어 블로그에 실린 기사도 함께 읽으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좀 지나니 이런 저런 이유로 중간에 한명씩 빠지는 이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웃긴 건 실력이 못한 사람들만 자꾸 빠지는 거다. 결국 키 재기하던 다른 도토리들은 다 빠지고 나만 남게 되었다. 빠진 만큼 새 회원을 충원했는데 아니, 들어오는 사람마다 다들 어찌나 영어가 유창한 지...... 미국에서 석사한 사람, 외국계 은행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사람들이 라 ‘영어 안 쓰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들어왔어요.’하면서 쏼라쏼라 하는데 그들 앞에서 혼자 더듬거리며 영어하는 기분이란 마치 어른들 틈에 섞인 늙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나이는 내가 제일 많은데 나 혼자 이렇게 못 알아듣고 더듬거리면 부끄러운 건 둘째치고라도 민폐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혹시 비웃지는 않을까 하는 못난 생각까지 별의 별 생각이 다 드는데 이런 생각을 하니 그래도 안 되는 영어가 더 안 되는 거다. 점점 더 바보가 되는 기분에 나도 그냥 확 나가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잘 하는 사람들 앞에서 혼자 못하는 것보다 그것 때문에 나가는 게 더 자존심 상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꼴찌는 안 해 봤는데 꼴찌의 기분은 이렇게 위축되는 거였구나 나이 오십을 앞두고 몰라도 될 깨달음까지 얻어 가면서 여러 날 마음 불편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관뒀다가 그냥 했다를 반복하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오만한 생각으로는 앞으로 아무것도 못 배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들면 익숙한 걸 계속 하는 것보다 새로운 걸 배워야 뇌가 늙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갈수록 기억력도 떨어지고 기능도 떨어져서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마다 뒤처지고 굼뜰텐데 그 때마다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시 한번 용기를 내 보기로 한 영어수업날, 회원들한테 솔직하게 얘기했다. 앞뒤 맞지 않는 영어로 더듬거리면서 내 실력이 모자라서 폐가 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고. 그냥 잘 하는 사람들과 하면서 많이 배우고 싶다고. 제대로 말하지 못했으니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니 대충 뜻은 통했는지 다들 웃으면서 그게 언니답다며 바닥을 기던 자존감을 세워줬다. 그 후로도 나이는 어리지만 속 깊은 동생들은 ‘언니 정말 많이 늘었어요’를 연발해주며 뒤처진 언니를 끌고 밀고 가 주었다.

대구로 돌아 온 지금도 영어공부는 손을 놓지 않고 있다. 영어원서 읽기 모임도 나가고 영어수업도 따로 받는다. 영어원서 읽기 모임에서도 내 수준은 바닥을 헤매고 있지만 한번 겪어 본 일이라 그런 지 그닥 부끄럽거나 마음 불편하진 않다. 그냥 ‘뭐 어쩌라고? 이것 저것 다 신경 쓰면 나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해?’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뻔뻔하게 때로는 예복습 열심히 해 가지만 안 한 것처럼 내숭도 떨어가며 겨우 겨우 따라가고 있다.

아~ 해외여행 한번 가서 그동안 갈고 닦은 내 영어실력을 한번 점검해 봐야 공부에 더 자극이 될 텐데 오도가도 할 수 없는 이 코로나 시대가 마냥 원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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