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돈으로 집을 살 수는 있지만 가정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책을 살 수는 있지만 지식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피를 살 수는 있지만 생명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침대를 살 수는 있지만 잠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시계를 살 수는 있지만 시간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의사를 살 수는 있지만 건강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직위를 살 수는 있지만 존경을 살 수는 없다
돈으로 여자를 살 수는 있지만 사랑을 살 수는 없다

인터넷 공간에 올라온 지 오래됐지만 누가 고안했는지는 몰라도 볼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잠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 즉 돈이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인간의 허망한 욕망을 경계하고 참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충고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이런 잠언과 충고를 귀담아듣거나 믿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국회 상임위원장 직책수당을 가사나 자녀 유학비로 쓰고, 조 단위의 대출받은 돈으로 킹메이커 역할을 꿈꾸고, 돈 문제로 국무총리가 물러나고, 1326명(농협·축협·수협·산림조합장) 뽑는 조합장 선거에 940건 1334명이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적발되고….

# 새치기 암표 죽음도 기업 아이템으로

'정의란 무엇인가'로 우리나라에서도 돌풍을 일으켰던 하버드대 교수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62)은 2012년 출간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성, 입학자격, 노벨상, 환경, 사회봉사 등을 돈으로 사고팔면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가 밀려난다고 주장했습니다.

모든 것을 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것으로 만들면 시민적 참여, 공공성, 사랑과 우정, 명예 등 인간사회의 덕목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샌델은 현재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거래행위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줄서서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공항 보안검색대 통과, 놀이공원 놀이기구 탑승, 고속도로 급행차로 이용에 우선권을 주는 '새치기' 사업이나 유명 연극·공연 수요자와 로비스트·이익집단의 국회·법정 방청을 위해 노숙자를 고용하는 '대리 줄서기' 사업 등입니다. 특권·영향력·재력이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합법적 시스템입니다.

돈 많은 사람에게만 새치기가 허용되는 거래도 많습니다. 베이징 일류 병원의 진료 예약권(약 2달러)은 비교적 싸지만 밤새 또는 며칠 동안 줄을 서야 돼 50~100달러에 암거래되고 있습니다. 일반 예약으로는 몇 달을 기다려야 하는 미국 병원들은 연회비 1500~2만 5000달러로 당일이나 다음날 전담 의사의 진료를 받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착순'이라는 줄서기 윤리가 '돈을 낸 만큼 누리는' 시장 윤리에 잠식당하는 현실입니다.

이 밖에 1박에 20달러짜리 요세미티국립공원 야영지 사용권은 100~150달러, 베네딕트 교황이 집전한 워싱턴과 뉴욕 미사의 무료입장권은 암표 값이 200달러를 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대중들은 "요세미티의 수려한 경관은 암표상에게 많은 웃돈을 주는 부유층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이다", "종교의식을 사고팔 수 있는 재화로 다루는 것은 그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태도가 아니다"며 분노를 터뜨립니다.

이들 사례 중 상당 부분은 우리 사회에도 만연되어 있습니다. 반면 외국에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행위의 거래가 생멸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곡비(哭婢; 상가에서 상주 대신 곡을 하는 여성) 역사가 오래된 중국에는 최근 장례예식장의 스트립쇼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조문객을 많이 모으기 위한 수단이라고 합니다. 톈진사과회사(Tianjin Apology Company)는 2001년 대리 사과(謝過) 서비스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싣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퍼팩트토스트닷컴(Perfect Toast.com)은 1997년부터 맞춤형 결혼식 축사 대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문가가 작성한 3~5분 길이의 축사 가격은 149달러.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인스턴트웨딩토스트닷컴(Instant Wedding Toast.com)은 19.95달러에 축사 샘플을 보내 줍니다. 친구의 축사에 눈시을 붉혔던 신랑 신부가 나중에 온라인에서 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최근에는 월마트 같은 거대 기업이 평사원 명의로 생명보험에 가입하고 사원이 죽으면 보험금을 회사가 독식하는 청소부 보험(janitors insurance)으로 비난을 받았습니다. 늙거나 병든 보험계약자의 보험 증권을 싼값에 사들여 계약자가 살아 있는 동안만 보험금의 일부를 받도록 하는 사망담보 선물거래 산업(death futurs industry)도 생겼습니다. AT&T, 다우케미컬, 네슬레USA, 월트디즈니 등이 가입자입니다.

이 같은 변종 생명보험을 주도한 회사는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JP모건체이스(Morgan Chase) 등 거대 은행들입니다. 전통적으로 시장에서 금기시되어 온 ‘죽음에 시장논리가 침투한 결과입니다. 유가족에게 재정적 안전망을 제공하려고 생긴 생명보험이 기업의 투기 목적으로 전용되면서 사원의 죽음을 애타게 기다리는 도덕의 타락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시장논리는 유명인의 죽음을 놓고 도박을 벌이는 행위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 도시와 스포츠 생태계를 바꾸는 광고

세대와 계층 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미국인을 열광시켜 온 야구와 미식축구는 이제 공감과 연대의 장이 아니게 변모했습니다. 1980년대 이후 대부분의 프로 구단과 대학은 경기장에 냉난방 시설을 갖춘 호화 스카이박스를 만들어 입장료의 40% 가까운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스포츠 궁전으로도 불리는 스카이박스는 시즌 당 최고 35만 달러(보스턴 레드삭스)까지 올라 구단과 대학의 배를 불려 주고 있습니다. 일반 관중이 발산하는 열광과 격리된 채.

기업의 명명권(命名權, naming rights)도 스포츠 스타디움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초기 팀 소유주 이름을 딴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코미스키(Comiskey) 파크는 이동통신 업체의 이름이 붙은 U.S. 셀룰라 필드로 바뀌었습니다. 샌디에이고 패드리스는 애견용품 회사 이름을 딴 팻코(Petko) 파크에서 경기를 합니다. 미식축구 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는 질렛(Gilette) 스타디움이, 워싱턴 레드스킨스는 페덱스(Fedex) 필드가 전용구장입니다.

경기장 이름뿐이 아닙니다. 뱅크원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선수가 홈런을 칠 때마다 아나운서가 "뱅크원 홈런입니다"라고 멘트해야 하는 뱅크원 볼파크(Bank One Ballpark) 권한을 가졌고, AT&T는 구원투수가 마운드로 올라갈 때 "AT&T 구원투수를 투입합니다"라고 중계하도록 했습니다. 뉴욕생명보험은 메이저리그 10개 구단 선수가 안전하게 홈 슬라이딩에 성공하면 "세이프입니다. 뉴욕생명"이라는 어나운스먼트를 붙이도록 했습니다.

이미 안방과 신체발부에까지 파고든 기업의 광고는 자치단체나 공기업까지 잠식하고 있습니다. 마이킅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전 뉴욕 시장은 2003년 스내플(Snapple)과 5년간 공립학교에 주스와 생수, 6천 곳의 시 소유 건물에 차와 초콜릿 음료를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1억6,600만 달러에 계약했습니다. "빅 애플(Big Apple, 뉴욕 시의 별칭)이 '빅 스내플'이 되려고 도시를 팔아넘기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뉴욕 시는 또 2009년 브루클린에서 가장 오래된 지하철역 중 하나의 명명권을 런던에 본사를 둔 바클레이스은행에 팔았습니다. 20년간 400만 달러 조건으로. 은행은 지하철역 기둥과 회전식 출입구·바닥을 광고로 도배하고, 차량도 전체를 광고로 감쌌습니다. "역 이름은 주변 거리나 이웃과 중요한 관계가 있다"는 시민자문위원회의 주장에 "명명권을 팔면 고객과 납세자의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명분으로.

재정난에 허덕이는 수많은 도시와 마을에 기업들은 공원 관찰로, 순찰차, 소화전, 학교, 감옥에까지 광고를 침투시키고 있습니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시장지상주의자들의 논리대로라면 아내나 남편을 파는 광고가 나오고, 신생아 입양을 경매에 부치거나, 탄소배출권처럼 난민수용권도 시장에서 거래하는 세상이 올지 모를 일입니다.

자유 평등 평화 정의 양심 명예 박애 헌신 우정 절개 용기 희망처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몇 개나 남게 될지….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의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

[자유칼럼그룹]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4289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