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서월선 기자

딸아이가 며칠 전부터 닭볶음탕을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만들어줄까?’ 했더니 정색을 하면서 ‘그러지 마~ 시켜먹자’한다.

제 입맛에 딱 맞는 맛집을 놔두고 왜 엄마가 만든 맛없는 음식을 먹어야 되냐는 투다.

나로서도 재료비나 시켜먹는 돈이나 엇비슷한데다 만드는 수고와 시간을 덜 수 있으니 내심 고마운 일이다.

아이가 어릴 때는 나 또한 아이의 아토피를 직접 만든 음식으로 다스릴 만큼 열성 엄마였다. 간식으로는 고구마나 단호박을 쪄 먹이고 웬만하면 사 먹는 음식보다 집밥을 먹이려고 극성이었고 먹성 좋은 아이도 엄마 음식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이의 입맛을 맛집에 빼앗긴 건 순식간이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된 아이는 편의점 음식에 입맛을 길들이게 됐고 안타깝게도 난 아이의 입맛을 되돌릴 만큼 부지런하지도 음식 솜씨가 좋지도 않아서 십 수년 지켜 온 아이의 순한 입맛을 자극적인 조미료맛에 별 저항도 못 해 보고 내 주게 되었다. 게다가 세상은 넓고 맛집은 왜 그렇게 많은 지...... 채널마다 토해내듯 소개하는 맛집을 도장깨기 하듯 다니다보니 어느새 우리집 집밥은 외식 너무 많이 해서 미안할 때나 어쩔 수 없이 차리는 주부의 체면치레정도로 그 위상이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굳이 그 위상을 다시 세우고 싶진 않다. 집밥은 곧 건강이라는 고리타분한 나의 집착이 아이와 불화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힘들기 때문이다.

살림, 그 가운데서도 요리라는 게 참 허무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2시간 만들고 30분 먹고 치우는데 1시간.

맞벌이가 많은 요즘 가정에서는 요리를 남자가 하든 여자가 하든 쉽지 않은 일이다.

엄선해서 고른 건강한 재료를 깨끗하게 손질해서 정성과 손맛으로 차린 몇 첩 반상은 드라마에서 푸드 스타일리스트들이 차린 밥상에서나 볼 수 있는 훈훈한 풍경일 뿐 일상에서 요구하다가는 가정불화를 일으키기 딱 좋다.

음식과 요리도 시대에 따라 효율적으로 변하고 있다. 끼니마다 집밥을 차려대느라 아침 먹으면서 점심 차릴 걱정을 하던 엄마의 고단한 수고가 사랑으로 포장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남편이건 아내건 요리에 관심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이 밥상을 차린다. 시간이 없으면 사 먹거나 배달시켜 먹기도 하고 봉지만 뜯으면 바로 조리할 수 있는 반조리 식품에 기대기도 한다.

외식이라고는 졸업식날이나 먹을 수 있던 짜장면이 다여서 1년 365일 집밥밖에 모르던 우리 세대가 보기에는 세상이 이렇게 변하는 게 맞는 건가...... 이러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을 잃지나 않을까 불안하기도 하지만 이제 음식문화는 수고는 최소화하고 맛은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 추억의 음식은 엄마가 해 주던 시래기 고등어찌개지만 내 아이한테 추억의 음식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자주 사 먹었던 어느 동네 맛집의 음식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하지만 뭐 어떠랴? 주부가 살림의 고단함을 잠시 잊을 수 있고 아이의 입맛도 즐겁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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