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칼럼-국가안보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 황흥익(법학박사)]

지난 12월 13일 ‘대공수사권 경찰로 이관 3년 유예’가 도둑 담넘듯 여당 단독으로 기습 처리되었다. 이는 노골적으로 ‘간첩을 잡지 않겠다’는 포석이자, 앞으로 ‘어떤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간첩을 잡을 수 없도록 하겠다’는 집단적 훼방행태로 경기장에서 멀쩡하게 잘 뛰는 국가대표를 빼고 지역대표로 교체하겠다는 억지와 다르지 않다. 당일 표결은 재석의원 187명중 찬성 187명으로 만장일치다. TV로만 보았던 북한 노동당중앙위전체회의 표결을 연상케 한다. 이보다 앞선 12월 1일에는 현직 대전지검 장某 검사가 내부통신망에 “가짜 검찰개혁을 내세워 국민을 속이고, 검찰을 장악하여 現정권 비리수사를 막으려 한다”는 글을 올려 법무장관에게 예봉(銳鋒)을 날렸다. ‘원칙과 규정’, ‘합리성과 투명성’을 무시하면서 사술(詐術)과 기만으로 가득한 법무조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대공수사권 폐지도 똑같은 선상에서 앞선 워딩(wording)과 통한다. 즉 “권력기관 개혁을 앞세워 국민들을 속이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무력화시켜 북한의 대남공작에 부화뇌동하려 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합리적 의심은 무리일까. 국민들 사이에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북한의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회자(膾炙)되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다.  마치 북한을 상전처럼 대하며 그쪽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조심하겠다는 비뚤어진 의협심과도 같다. 그래선지 시중에는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마초적 가사가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들며 중독성 강하게 유행하는 세상이 되었다.
 
오죽하면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되면서 지난 한달여간은 한평생 대공전선에 투신했던 과거 중정(中情)부터 안기부, 국정원에 이르는 수많은 퇴직 요원들이 길거리로 나서 정부의 안보정책에 항의성 시위를 했겠는가. 이들은 80을 넘긴 고령의 선배로부터 갓 퇴직한 60대의 역전의 용사들로서 11월말 12월초 매섭도록 차가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가슴으로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국가정보원 진출입 노상에서 피켓을 들고 ‘국정원법 개악 저지와 국정원 대공수사권 사수’를 외쳤다. 모두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직원 모임’ 소속이라 한다. 국가안보의 요새(要塞)인 국가정보원이 허망하게 무너지는 뇌성(雷聲)과 같은 비명을 들으며 억장이 무너지는 분노(憤怒)가 이들을 길거리로 나서게 만든 것이다. 대한민국 대공역사에 기록될 초유의 일이다.
 
우리는 해방이후 지금껏 북한의 광기어린 도발에 직면하면서도 오히려 발전을 거듭해왔다. 이유는 국가지도자가 마을의 100년 느티나무와 같은 든든한 안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대 지도자들은 노심초사 국가안보에 방점을 찍고, 반공(反共)을 국시(國是)로 삼아 미국이라는 거대한 힘의 균형 속에서 국방력을 강화했고, 정보기관은 안보의 첨병답게 언제나 북한의 대남공세를 저지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렇듯 국가지도자와 미국, 그리고 정보기관이 삼각편대를 이루어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반공의 정서가 사라지고, 미국과는 소원해지며, 국가안보는 위험상황으로 내몰리면서 국민들은 그저 불안하기만 하다. 동네 이장이 마을의 발전보다는 옆마을을 더욱 선망하여 정체성을 잃고, 우군(友軍)도 무시하고, 정보의 날개는 부러트려 막장을 만들고, “내가 필요하면 마을의 법도 내맘대로”라며 내게 유리한 쪽으로만 고친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마을의 정체성(Identity)은 갯벌의 갈대같이 흔들려 선과 악이 뒤바뀌고, 법치(法治)와 정의는 사라지고, 기회는 내 주변이 우선이고, 원칙과 상식은 무시되고, 전문가의 전문성은 배제되는, 마치 카오스(混沌)의 세계로 급속히 빨려들어가는 형국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명심할 것이 있다. 북한은 1987년 형법을 개정하면서 소위 ‘반혁명범죄’를 ‘반국가범죄’로 용어만 바꾸고, 소위 반체제 행위에 대해서는 ‘사형과 전재산 몰수’라는 극형으로 무자비하게 처벌하면서 형사소추 시효제도 및 집행유예제도 배제 등 우리의 국가보안법과는 비교할수 없는 反문명적 악법을 그대로 존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리는 무슨 배짱인지 어처구니없게도 국정원의 간첩수사는 중지시키고, 이것도 모자라 국가보안법 일부 폐지도 추진하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국정원 무력화인지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않을수 없다. 여기에다 국정원장은 ‘전직국정원모임’의 간절한 호소도 외면한체 면담조차 거부하고 있다. 뻔한 속셈을 감추기 위한 것일까.

프랑스는 2012년 3월 모하메드메라 테러사건 대응실패를 계기로 정보기관을 국내안전총국으로 확대·재편하여 정보수집 기능을 대폭 첨단화하였고, 정보기관 개혁의 필요성이 제기될 때에도 국가안보의 관점에서 도출된 문제점을 보완하고 역량을 확충하는데 힘을 쏟았지 폐지는 꿈도 꾸지 않았다. 영국도 2013년 6월 미국과 함께 무차별적인 통신정보 수집활동에 협조했다는 美 NSA분석가 스노든(37세)의 폭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보기관들이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수집 활동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우리가 정상적이라면 이들 국가들이 왜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 깨우쳐야만 한다.

북한이 존재하는 한 국정원의 대공수사기능은 마을의 수호신같은 든든한 느티나무와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그 가치를 존중하고 지키며 보살펴서 세계 최고정보기관으로서 역할과 기능을 다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보기관을 무늬만 남기며 기능을 약화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것이 국가이다. 속셈이 읽혀진다. 설마 “경찰에 이관은 구실이고, 궁극적으로는 대한민국에서 간첩을 잡는 부서 자체를 없애겠다”는 꼼수는 아닌지 묻고 싶다. 국가안보는 원초적인 나의 생명을 담보하는 심장과도 같아 한치의 안일함도 용납되어선 안 되며, 어떠한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보호하고 지켜내야 하는 절체절명의 소명과도 같은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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