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진 오페라의 역사, 더 큰 희망 기대

[서울=내외뉴스통신] 김은정 기자

뮤직리뷰 제공
(사진 뮤직리뷰 제공) 좌에서 우로 장수동 김덕기 임준희 김종섭 

사회: 김종섭(월간 뮤직리뷰 대표)


한국오페라가 70주년을 맞았다. 1948년 1월 28일 이인선 선생이 라 트라비아타를 무대에 올린지 꼬박 70년이라는 세월이 긴 강물을 따라 흘러왔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의 세월이다. 해방과 전쟁, 혁명과 쿠데타, 독재와 민주화 등 시대흐름에 따라 만 번이 꺾여도 기어이 대한민국의 오페라 역사는 흘러왔다. 우리나라에 오페라라는 장르는 원래 없었다. 엄혹한 시절에 그 누가 나서지 않았다면 70년의 역사가 아니라 기껏해야 30년 역사를 맞았을 지도 모른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 같은 씨앗에서 나오고, 높은 누대로 한 무더기 흙을 쌓는 데에서 비롯된다. 노자는 세상의 모든 시작은 미미하지만 낚시꾼이 한 자리에서 오래 기다리면 큰 물고기를 낚듯 ‘기다리면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창업(創業)보다 수성(守城)이 어렵다. 한국오페라의 씨앗이 거목으로 자라는 동안 시난고난한 역경도 부지기수로 맞닥뜨렸지만 어렵게 어렵게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더 장하다. 대한민국 오페라 70주년! 대한민국 오페라 7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와 오페라단연합회는  한국오페라70주년 기념 백서를 출간한데 이어 2018년에는  7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 ‘헌정’ 콘서트를 열었지요.


그 연주회를 앞두고 장수동 추진위원장과 이번 음악회의 지휘봉을 잡는 김덕기 지휘자, 그리고 임준희 작곡가를 초빙, 한국오페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더듬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70주년이 흘렀지만 오페라의 기반이 탄탄하다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오페라 70주년 선포식 (기념사업회제공)
오페라 70주년 창립선포식 (기념사업회제공)

톨스토이는 자기 분수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백조를 잡아먹고 싶어하는 두꺼비’라 빗대었다. 그런 우를 범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언급한 말처럼 세상의 희망이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보느냐’의 문제라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의 위치를 살피되 미래의 오페라에 낙담하지 말고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희망의 메시지를 기대해본다.

국립오페라 천생연분 (사진 국립오페라단 )
국립오페라 임준희 천생연분 (사진 국립오페라단 )

한국 오페라 70년의 원동력

김종섭: 오페라 70주년을 맞아 과거에 비추어 오늘을 살펴보자는 내용을 나누고자 합니다. 평소 존경하는 세 분을 모시어 영광입니다. 본사가 오페라 70년사를 발간하면서 대한민국 오페라의 역사가 참으로 대단함을 발견했습니다. 오늘은 70년 과거를 되짚어보는 차원에서, 70년 역사를 끌어온 우리 음악인들의 원동력과 추진력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논하고 싶습니다. 

장수동, 연출가 겸 서울오페라앙상블 대표 (뮤직리뷰제공 )
장수동, 연출가 겸 서울오페라앙상블 대표 (뮤직리뷰제공 )

장수동: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훨씬 이전에, 오페라를 먼저 시작하셨던 선배들이 계셨어요. 그분들의 열정으로 인해 오늘이 가능한 거죠. 그때 막 움직임을 시작했던 임원식, 김장충, 안영희 선생님 등이 떠오릅니다. 그 분들의 열성이 소중한 거죠. 오페라인들에게는 굉장히 기념비적인 분들이시죠.
오페라를 시작할 만한 토양이 조성되지 않았지만 열정은 대단했거든요. 민간으로 처음 시작했는데 민간 오페라단으로 시작한 건 우리 오페라 역사에서 대단히 소중한 사실입니다. 정부의 개입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오페라의 출발은 오로지 성악가들의 의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김종섭: 그렇군요. 처음 오페라가 무대에 올려지고 그 이후 50년 동안의 역사를 이끈 중추적 인물은 어느 분입니까?

장수동: 서울대 음대가 생기면서, 그 출신들이 중심이 되어 성장했습니다. 우리 오페라가 사실상 발아된 장소요 시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종섭: 김덕기 교수님께서는 50주년, 60주년, 이번 70주년 등 계속 지휘를 해오셨는데 감회가 크시겠습니다. 10년마다 지휘하시면서 우리 오페라의 역사가 진보해왔다고 느끼시는지요.

김덕기 지휘자
김덕기 지휘자

김덕기: 그렇죠. 특히 성악의 경우 국제적 수준으로 발돋움했지요. 그러나 한 가지 아쉬운 점도 있죠. 오페라라는 장르는 성악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물고기가 어항 안에서 제대로 성장하려면 물의 온도, 물의 질, 먹이, 수초 등 다양한 제반 조건이 늘 신선하고 적절해야 하죠. 오페라가 성장하려면 성악뿐만 아니라 조명, 연출, 무대제작, 의상, 오케스트라, 합창 등 모든 면에서 동반성장해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아직 미진하다고 봅니다.

장수동: ‘연출페이’도 그중 한 가지 요소입니다. 제작비가 재앙이라는 말이 있어요.(웃음) ‘오페라’는 관객의 눈높이가 중요합니다. 합창단의 예를 들어볼까요? 일본의 경우 두 가지 섹션의 합창단을 운영합니다. ‘기본 합창단’이 있는 가운데 규모가 커지면 객원을 부릅니다. 기본과 객원 등 두 시스템을 도입해 경쟁하면서 서로 열심히 하게 만들었어요. 늘 큰 규모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서 규모를 조절하니까 경비를 줄일 수 있죠. 그런데 우리 오페라는 그런 연출 면에서 경쟁이 안 되고 있습니다. 

김종섭: 그렇더라도 7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니 긍정적으로 보면 극장이나 오페라단이나, 지금은 과도기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장수동: 아직 더 다져져야죠. 이제는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오페라단이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한 마디로, ‘A’단체라고 하면, ‘A’의 색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똑같은 의상에 똑같은 세트에... 단체만 달라져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창작오페라가 롱런하지 못하는 이유

김종섭: 특색있는 오페라와 연관지어 창작오페라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안타깝지만 창작오페라가 롱런하는 경우가 드뭅니다. 지난한 역사에 비해 해외로 진출하는 오페라도 손가락을 꼽을 정도입니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임준희: 이번에 오페라70주년 기념 백서를 발간하며 가장 큰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제작 시스템은 이전에 비해 굉장히 다양화 되었거든요. 가능성 있는 작품을 계속 공연하고 업그레이드시켜서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하는데,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나마 국립에서는 그렇게 하려고 하지만, 민간에서는 턱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경제적 지원이 열악하기 때문에, 한 번 무대에 올린 창작오페라를 그 다음에 또 올리기까지는 참 어렵다는 점입니다.

장수동: 사실 창작오페라는 국가적 사업으로 접근해야 해요. 민간 영역은 한 번 작품 올리고 나면 끝나니까요. 돈도 문제지만 의지도 없어요. ‘오페라’를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시각도 너무 좁습니다. 창작오페라라고 해서 왜 한복만 입어야 하죠? 얼마나 소재들이 많은데요. 조금 더 열어주면 우리에게도 아이디어가 많을 텐데요.

임준희: 그래서 이번 백서를 통해 사람들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진 않는 게, 다행히 최근 들어서 일반인도 좋아할 수 있는 작품이 조금씩 나오고 있는 추세거든요.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창작오페라의 중요성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는 더욱 안타까워요, 평창 올림픽 때 제대로 된 창작 하나 못 올린 것이...

장수동: 이번에도 한국형 오페라를 만들자는 이야기는 나왔지요. 그런데 ‘마술피리’를 가져오겠다고 하더군요. 평창 올림픽 기념인데 말이에요.

우리 오페라에 대한 축적된 자료 부실

김종섭: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 오페라인들이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면 원하는 방향대로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큰 일을 앞두고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데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장수동: 사실 문화예술에 관련한 국립단체가 마땅히 없어요. 예술의전당에서라도 해주면 좋겠지요. 민간단체는 한시적인 단체라, 경제적 지원을 받기 어렵습니다. 참 안타까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현제명 선생님의 ‘춘향전’이 최초의 오페라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에게 원본이 없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그 아카이브가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겁니다.

뮤직리뷰제공
뮤직리뷰제공

김덕기: 피아노 악보도 제대로 된 게 없습니다. 피아노 악보라도 있어야 성악가들이 할 텐데 말이죠. 이 정도는 국립에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하는 의견입니다.

김종섭: 그럼 현재 국립에서 가지고 있는 자료집이나 그동안 우리 오페라 역사를 후세들이 볼 수 있는 기록물, 아카이브가 없나요?

장수동: 국립 자체에서 공연한 오페라만 간신히 남아있는 정도입니다. 관리할 수가 없죠. 보관이 안돼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답니다. 누굴 탓할 수는 없지만요. 이번에 이 책을 발간하면서 느낀 게, 오페라 공연은 하는데 악보부터 공연 자료까지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오페라학회도 없어요. 우리 현실이 이렇습니다.

늘 말은 있었는데요, 어떤 특정한 단체가 들어오면 다들 오해해서, 다 개별적으로 출발했어요. 연합회가 있긴 하지만 단장님들이 주축을 이루는 단체입니다. 따라서 이 단체를 통해 민간 오페라를 포함한 커다란 아카이브를 만들고 관리하기는 버겁습니다. 공연만 생각하기에도 부족하거든요. 오페라는 책도 역사도, 비평도, 필요한 부분이에요. 이번에 자료 정리하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자료가 없고, 있어도 중구난방이고 말이죠.

달하 높이곰 비취시오다 (호남오페라단제공)
지성호 달하, 비취시오라 (호남오페라단제공)

한국 오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다양한 문제들

김종섭: 김덕기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우리 오페라가 살 길은 무엇일까요?

김덕기: 우선 저는, 오페라의 살 길은 고유성을 살리는 방법뿐이라 생각합니다. 오페라가 현대 영화와 뮤지컬이 주는 엔터테인먼트의 요소까지 충족시켜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오페라는 어차피 좋아하는 사람은 찾아서 봅니다. 그런데 어색하게 대중화할 때, 그나마 있던 마니아들도 떠난다고 생각해요. 요새 오페라도 연출, 기술로 많은 변화를 주려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고유성을 살리는 것이 오페라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살리는 겁니다. 

장수동: 지금 뮤지컬의 경우 일년 세트를 만들거든요? 그런데 오페라는 나흘짜리 세트를 만들어요. 초연제작비가 어마어마해지는 거죠. 그래서 한 작품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건 극장 중심으로 해줘야 하고요. 그러려면 국립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임준희: 저는 창작오페라가 너무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 중에 있어요. 연구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는데요, 오리지널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오히려 다른 컨텐츠와의 협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시스템적인 것은 언제나 문제가 있었고요. 다는 아니더라도 팬 층이 생기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봅니다.

김덕기: 우리는 창작오페라를 할 때, 연출가가 나중에 들어오잖아요? 작곡가, 대본가 중심으로 하다가 나중에 연출자가 들어오는데, 그러나 이제는 연출자 중심으로 가야한다고 봅니다. 어떤 아이디어로 갈 것인지, 중간에 교통정리를 하면서 가야 완성도 있는 거거든요. 우리는 ‘오페라’ 하면 이백년 전 것을 생각하는데, 연출중심으로 가야 이런 문제점들이 줄어든다고 생각합니다. 

작곡가 임준희
작곡가 임준희

임준희: 네 맞아요. 대본가도 문제였어요. 지금까지 대본가가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극작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세종 카메라타는, 극으로 아주 잘 나가는 친구들을 끌어들여 무대를 올렸거든요. 처음엔 힘들어했죠, 그렇지만 점점 재밌는 작품이 나오기 시작하다보니,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출가가 생각하는 소재와 극작가가 생각하는 소재는 또 다르거든요.

장수동: ‘세종 카메라타’의 예를 드셨는데, 오페라를 만드는 입장에서 저는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오페라는 성악적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극작가들이 연극 출신이면 음악언어에 대한 고민이 적다는 것이죠.

임준희: 그래서 극작가들을 계속 오페라 공연에 데리고 다니는 겁니다.(웃음)

장수동: 그러니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말이죠. 창작오페라 할 때마다 고민이에요. 대본들을 보면 오페라로 만들 수 없는 대본이 많습니다. 비유하자면 ‘걸어 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다 정지’되어 있어요. 대본, 텍스트에 대한 기본 공부가 너무 부족합니다. 다들 희곡도 안 읽어봤다니까요.

임준희: 창작오페라 실패의 근본적 원인은 모든 요소마다 책임이 있기는 한데 일단 ‘대본이 재미없다’는 게 크죠. 작곡가들도 오페라를 쓸 이유가 없거든요, 써봤자 망하니까요.

장수동: 작곡가협회 분들도, 심사위원들도 오페라 한 번도 써보거나 깊이 연주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심사에서 평가를 하는 현실입니다. 말이 안되는 상황이죠.

오페라 콘텐츠 개발 및 양성을 위한 제언

임준희: 사실 오페라는 음대에서조차 쓰게 하지 않거든요. 저도 위촉 받고서야 쓰기 시작했는 걸요. 오페라가 공연으로서 성공을 해야, 학생들도 해보겠다고 달려드는데 말이죠. 그래도 희망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여태까지는 재미없어서 안했지만, 요새는 달려드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처음에 저희 아카데미에서 오페라 써오라고 하니까 가곡을 써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요. 이 친구들도 스스로 써야 하니까 공부하고 계속 공연 보러 다니고 하면서 점점 늘더라고요.  그리고 참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컨텐츠가 풍부해요. 성악가, 작곡가, 극작가 등 우리가 가진 컨텐츠를 잘 개발해서 특정 작품들이 하나씩 재미있다고 히트칠 때, 사람들이 그 오페라를 다시 보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게 창작 오페라가 나갈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이라 봅니다.

김덕기: 네, 맞습니다. 우선 작곡가들이 오페라에 대한 공부를 더 해야겠죠. 반주부도 제대로 작곡하지 못하는 역량 부족의 친구들이 너무 많아요. 

임준희: 오페라 분야의 작곡가들이 이제 막 시작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제는 공연이 조금씩 되기 시작하니까 계속 시도하는 거죠. 

김덕기: 그리고 오페라소재도 자꾸 우리 것에서만 찾으려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그리스 비극 같은 것으로도 얼마든지 쓸 수 있잖아요.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고태암 붉은 자화상 서울오페라앙상블 제공

장수동: 그럼요. 우리에겐 투 트랙이 필요합니다. 한 쪽은 연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젊은 작곡가, 지휘자에게 기회를 주면서도 한 쪽은 위촉을 하는 것이죠.

임준희: 젊은이들은 계속 도전하게끔 하며 작품을 배워나가게 하고, 선배들은 위촉을 해야 하는 거군요.

장수동: 네. 그런 식으로 나아가야 건강하게 발전할 겁니다.

임준희: 2012년 경 창작오페라문화예술위원회에서 창작아카데미 수업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학생들에게 ‘몬테베르디’의 아리아를 골라서 비슷하게 써보라고, 또 ‘라 보엠’ 아리아 참고삼아 작곡해보라고 했는데, 정말 헤매더라고요.

장수동: 그걸 왜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는 건지 모르겠어요. 대학에서 조금도 훈련하지 않고 프로 세계에 진출해 바로 시작해버리니 힘들죠. 대학 4년간 뭐 했냐 하면, 아무것도 안했다고 해요. 오페라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 해요.

임준희: 한예종은 개설했었는데, 오페라 쓰는 아이는 한 명이고, 다 뮤지컬 쓰더라고요. 거의 뮤지컬과가 되어버린 거죠. 학생들이 오페라는 나중에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아닌데 싶지만 세태가 그러니 안타깝죠.   

김덕기: 맞습니다. 요즘 작곡 공부하는 친구들이 영화음악 쪽으로 많이 진출하죠. 시장의 흐름상 그건 좋은 현상이에요.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도 자기 소설을 두 가지로 나눴는데, 나중에 그 두 가지가 상호 보완되어 결과적으로는 서로 좋았다고 했어요.

장수동: 엔리오 모리코네도 영화음악의 대부지만 늘 오페라 한편 쓰겠다고 말합니다. 영화제작자인데 말이죠. 성공한 모든 음악가들의 꿈은 결국 오페라에 있습니다. 오페라는 작곡가로서는 최고의 고지입니다.

임준희: 특히 오페라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최상이 되어야하거든요. 그래야 하는데, 지금 오페라 아카데미에 나이제한이 생겼습니다. 창작 나이제한을 35세 이하로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근데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 행정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오페라 발전을 위해 지원해 줘야 할 일들

장수동: 저는 그래서 행정가들을 만나는데요, 제가 ‘붉은 자화상’할 때, 담당자가 세 명이나 바뀌었어요. 심지어 오페라를 정산할 때도 본인들이 잘 모르니까 회계 법인한테 일방적으로 맡기고 그랬습니다. 특히 창작오페라는 행정적인 면에서 기존 오페라와 달리 별도의 다른 기구와, 이것을 위한 기금운용소가 있어야 장기간 프로그램이 가능해집니다.

임준희: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큰 단체에서 오페라를 할수록 대본을 마음대로 수정하는 거예요. 원작자의 동의 없이 말이에요.

장수동: 이게, 공연을 좀 안다는 사람들이 바꾸는 거예요. 원작자와 관계없이 자꾸 자기 색을 입힌단 말이죠. 원작자에 대한 예의가 없어요.

임준희: 국립국악원의 경우에는, 장학원사도 있고 회계도 있어요. 아주 체계적입니다. 여러 자료들을 축적해 놓고 책도 내고 그러거든요.

장수동: 국립국악원은 이론을 전공한 사람들이 연구하죠. 인사를 채용할 때에도 전공자들을 뽑고요.

임준희: 그래서 오페라도 최소한의 자문단이나 이사회가 필요해요. 제대로 된 이사회 말입니다. 매번 의전이나 신경쓰는 그런 이사회 말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에 대한 밝은 전망과 비전

김종섭: 네, 오페라의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이처럼 오페라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들이 많은데, 이제는 그래도 오페라의 나무가 이만큼 기반을 다져왔기에 희망찬 이야기도 있을 줄 압니다.

임준희; 맞아요. 특히 성악가들이 창작오페라를 비롯한 새로운 곡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창작’ 하면 ‘힘들다’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주 조그마한 곡이라도, 작은 쇼케이스라 하더라도 열심히 하고 다 외우고 그러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작곡가들을 많이 응원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이 조금 미흡하더라도 열심히 해주고요. 그런 긍정적인 변화가 있습니다.

오페라플래시 몹 (라벨라오페라제공)
오페라플래시몹 (라벨라오페라제공)

장수동: 개인적으로 우리 오페라가 세계화되면 여러 가지 문제가 정리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여전히 여러 가지 숙제가 있지만, 성악인이 이렇게 많은 것도 드물거든요. 국가대표급 작곡자와 연출자들, 그리고 최고의 가수들이 모여서 창작오페라 하는 날을 기다리는 건데, 우리가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죠.

김종섭: 그게 성립될 가능성이 있나요?

장수동: 있다고 봅니다. 국가예산을 더 달라는 게 아니라, 국립에게 가는 돈을 민간에게 흘러가게 해달라는 거죠.

임준희: 저는 희망을 보는 게, 우리가 이번에 책을 발간하면서 쭉 정리했잖아요. 이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개발하고 위촉하고, 또 젊은이들을 위해 공모하는 시스템을 가동시켜서 진행하는 상태잖아요? 서울시오페라단도 이경재 단장이 지금까지 했던 ‘세종 카메라타’에서의 작품 중 ‘살릴 수 있는 걸 살리기’로 했어요. 예산이 없어도 이건 ‘해야 한다’라는 의지를 갖고 있거든요. 희망적이라고 봅니다.

장수동: 다행이죠. 그러나 이런 움직임을 지속되기 위해서는 역시 ‘메인 컨트롤타워’가 필요하겠죠. 늘 하다 그만두고 없어지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임준희: 민간 쪽에서도 국립에 대등할 만한 기관을 키우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사실은 오페라단연합회가 이런 기능을 해야 하고요. 국립은 국립대로, 민간은 민간대로요.

장수동: 창작오페라를 만들었는데, 할 만한 단체가 없으니까 그 한개의 작품을 위해 오페라단이 갑자기 창단되는 꼴이 많았습니다. 이건 말이 안 되죠. 문화예술위원회 같은 어떤 중심 단체에서 해줘야 하는 거죠. 

임준희: 그러니까요. 작품이 나와도 이걸 누구에게 제작을 의뢰해야 할지를 모르는 거예요. 국립에서도 안하고, 시립에서도 힘들다 하고, 그러니까 앙상블이랑 하거나, 갑자기 새로운 단체를 만들거나 그러는데, 중심 단체가 필요해요.

장수동: 그리고 왜 이렇게 큰 극장만을 고집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렵더라도 작은 곳에서 해야 하는 공연이 있는데 말이죠.

오페라 메밀꽃 필 무렵 (k-opera제공)
우종억  메밀꽃 필 무렵 (k-opera제공)

오페라의 발전 위해 전문 연출가 필요해

김종섭: 여러 이야기가 오가는데, 우리나라에 과연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연출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양성기관이 있긴 한가요?

김덕기: 기본적으로 음악을 공부한 이들이 연출자가 되어야 해요. 뮤지컬의 경우에도, 대사가 나가다가 결정적인 순간에는 춤과 음악으로 가거든요? 모차르트는 그것에 굉장히 강하단 말이죠. 그게 작품으로 가면 자연스레 흐르잖아요. 그런데 음악을 공부하지 않은 연출자들은 그걸 손대지 못해요,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장수동: 옳은 말씀입니다. 오페라는 다른 요소들이 아무리 좋아도 성악적 표현을 잘 해주지 못하면 소용이 없어요. 

김종섭: 말씀하신 것처럼 오페라는 음악적 흐름이 중요한데, 음악적 흐름을 감당할 만한 오케스트라는 얼마나 있나요? 오페라 전문 오케스트라가 있는지요?

김덕기: 그 부분에 있어서도 시스템이 안 되어 있습니다. 그것 역시 오페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어요.  

장수동: 저는 국립오페라단 하나로 얘기할 게 아니라 합창, 발레, 오페라를 묶어서 오페라극장으로 분리시켜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임준희: 사실 문체부에서 움직여야 하는 거예요. 그게 해결책인데 쉽지 않습니다.

김종섭: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국가적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 같네요. 끝으로 70주년인데, 80주년도 바라보고 계시잖아요? 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한 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장수동: 저는 굉장히 외롭게 이 작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제가 정리했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걸 다 정리했는지 모를 정도예요. 이번 기회를 토대로 해서 일년에 한번씩 기간을 정해서 전국에서 올려지는 오페라를 총망라해 자료를 업데이트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또 이렇게 해주는 단체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야 80주년에는 명실공히 오페라 강국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 가수가, 오페라는 늘 퍼스트(first)가 되지 못했어요. 늘 세컨드(second)였습니다. 오페라에 대한, 오페라의 소중함을 아는 힘이 생기면 됩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오페라를 사랑하는 보이지 않는 큰 힘이 작용하길 바랍니다.

임준희: 80주년 때에는, 오페라전용극장에서 80주년 기념 오페라가 열리면 좋겠다는 소망입니다.(웃음)

김덕기: 앞으로는 대중화를 위해 어설프게 무언가 융합하지 말고, 오페라를 더욱 전문적으로 살리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작품의 고유성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발전의 첩경입니다.

김종섭: 네, 한국오페라 7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곧 다가올 한국오페라 80주년, 아니 1백주년 내다보는 소중한 시간에 같이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 이 원고는 뮤직리뷰의 허락을 받아 재수록한 것입니다)

뮤직리뷰 제공
뮤직리뷰 제공

 

greenp2@naver.com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2844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