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칼럼] 어른들이 기득권 지키기, 익지도 않은 과실 따먹기, 경영 주도권 싸움으로 혈전을 벌이는 사이, 젊은이들은 실망·절망을 넘은 원망·저주를 퍼부으며 나라꼴을 한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헬(hell)조선 △망한민국 △지옥불 반도 △개한민국 같은 비속한 말로 조국을 혐오·비하하며 울부짖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국회는 희한한 위인(爲人)입법을 했다고 합니다.

# 이희호법
지난달 15일 국회 법사위에 상정된 '이희호 경호법'이 통과 직전 보류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이 법안은 전직 대통령과 부인에게 평생 동안 대통령경호실 경호를 제공하도록 한다는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으로 현재 수혜 대상이 이희호 여사 한 사람뿐이어서 '이희호법'으로 불립니다.

이희호법은 박지원 의원이 2012년 7월 처음 발의해 2013년 통과됐었습니다. 당시 원내대표였던 박 의원은 정부조직법 개정을 놓고 여당과 신경전을 벌이던 끝에 이희호 여사가 90대의 고령임을 들어 경호실 경호를 10년에서 15년으로 연장하는 선에서 여야합의 개정을 이루어냈습니다. 박 의원은 올 4월 또다시 이 법의 일부 개정안을 내놓았고, 국회 운영위는 이를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안에 강력한 반대 의견을 편 여당 의원들은 "한 사람의 특정인을 위해 2년밖에 안 된 법을 바꾸는 것은 법의 보편성과 일반성 원칙에 어긋난다. 이는 공론화해야 한다"(김진태), "국가 서열 2위인 국회의장도 퇴임하면 경호가 없는데, 전직 대통령 부인을 경찰 경호가 있는데도 대통령경호실 경호를 종신으로 하자는 것은 국민정서에 맞지 않다"(노철래)고 주장했습니다.

박지원 의원은 "경찰 경호도 좋지만, 연로하신 분들이 그렇게 경호가 바뀌었을 때 심리적 충격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전직 대통령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를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습니다. 박 의원은 3년 전 첫 개정안 발의 때는 "이희호 여사가 10년 동안 같이 지낸 경호실 사람들과 헤어지기 어려워 나에게 기간 연장을 부탁한 것이 법안 발의 배경"이라고 했었습니다.

# 아문법
새누리당 유승민,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전임 여야 원내대표 시절인 지난 2월 국회는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특별법'을 합의, 제정했습니다. 최근 인터넷 공방으로 일반에 알려진 이 특별법은 과거 야당의 유혜자 의원이 처음 발의한 '아시아문화궁전법'의 이름을 바꾼 것으로, 새정연이 2월 국회에서 최우선 추진 법안으로 내세운 법이었다고 합니다.

내용은 오는 9월 광주광역시 금남로 옛 전남도청 뒤쪽에 건립되는 아시아문화전당을 국가 소속 기관으로 지정하고, 운영비 등 각종 비용을 국비로 지원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 사업에는 국비 3조 3000억과 민자 1조 7000억 등 5조 원 이상의 예산이 들고, 매년 800억 원의 운영비를 정부가 지원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광역시 자체 사업으로 애초 국비 지원 계획이 없었으나, 야당이 광주를 아시아 문화 허브로 만들자는 주장과 함께 공무원연금법 처리와 빅딜하는 과정에서 여당도 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은 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치적물을 보관 전시하는 것을 전제로 한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특별법은 처리 직전까지 청와대가 반대 의견을 몇 차례 유승민 원내대표에게 전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정부가 반대한다는 사실을 의원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합의의결을 강행했다는 것이 정가의 의견들입니다.

# 국회선진화법의 소산
이런 법들이 슬쩍 국회에서 통과된 배경에는 2012년 만들어진 '국회선진화법'이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여당의 황우여 전 대표 등이 발의한 선진화법은 국회의원 60% 이상이 찬성하지 않으면 어떤 법도 통과될 수 없도록 한 법입니다. 야당이 발목을 잡으면 전혀 정책 입법을 할 수 없게 된 여당은 뒤늦게 이 법이 위헌 소지가 있다고 들먹이고 있습니다.

원래 이 법의 취지는 다수당은 날치기 강행 처리를 포기하고, 소수당은 몸싸움 저지를 자제해 밤을 새워서라도 협상을 통해 국정 협의를 도출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정부의 주요 입법을 하나도 처리할 수 없는 여당에서 먼저 볼멘소리가 나왔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은 민생 법안을 인질 삼아 국정 운영을 발목 잡는 협박 도구"(최경환 전 원내총무)라고.

'식물 국회' '불임 국회' '무능 국회'라는 질타를 받아 온 국회는 이런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대타협'이라는 빅딜을 한 것입니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주요 법안과 야당이 주장하는 우선 법안 통과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 '이희호법'과 '아문법'입니다. 수십 개의 민생 관련법을 졸속 처리하면서 끼워 넣기 식으로 탄생한 귀태(鬼胎)들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이 같은 법들의 문제점을 어느 언론 매체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온갖 잡다한 소식으로 하루 종일 뉴스특보를 늘어놓는 종편(종일 편파방송 하는 채널)조차도 입을 닫고 있습니다. 거기다 걸핏하면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을 만드는 국회가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외쳐대고 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은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요?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홍묵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에 몸담았다. 이후 (주)청구 상무이사,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주)화진 전무이사 등을 역임했다. 언론사 정부기관 기업체 등을 거치는 동안 사회병리 현상과 복지분야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기사의 기고문을 써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인의 악습과 사회구조적 문제를 다룬 '한국인 진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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