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묵 칼럼니스트
김홍묵 칼럼니스트

[내외뉴스통신] 김홍묵 칼럼니스트

"천리 길도 마스크부터!'

코로나 역병이 창궐한 지난해 봄부터 바깥출입을 할 때마다 혼자 되뇌는 나 스스로의 다짐입니다. 그래도 깜박하는 일이 잦아 아예 현관문 안쪽에 ‘마스크?’ 쪽지를 붙여 놓았으나, 버스정거장이나 지하철역까지 갔다가 마스크 빠뜨린 걸 알고 아차 싶어 되돌아서는 일도 더러 있습니다. 긴장이 풀어진 탓도 있겠지만, 안 하던 짓거리가 몸에 배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예부터 사람은 전쟁터에 나가는 병졸과 말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맹견의 입에 입마개를 씌우곤 했습니다. 야간 행군이나 기습·매복 작전 때 사람 소리와 말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고, 개가 사람을 물지 못하도록 한 조치였습니다. 소를 부릴 때는 곡식을 뜯어먹지 못하게 머거리(경상도 방언)로 입을 가렸습니다. 재갈이나 머거리 모두 입이 저지르는 낭패를 막는 것이 목적입니다.

요즘 온 국민, 전 세계인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예전과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공기를 통해 전염하는 바이러스를 들여 마시거나 내뿜을 때 여과시켜 감염을 줄이는 것이 주된 목적입니다.

그러나 마스크가 입속의 바이러스는 걸러 주지만 내뱉는 막말은 막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특히 당직자와, 내년 3월 9일의 대통령선거 후보 선출을 앞두고 벌이는 정치판의 말들은 점점 더 거칠고 날이 서 있습니다.

후보자의 신상털이, 가족과 조상 비산(誹訕; 비방하여 명예를 훼손함), 과거 행적 공박, 아전인수·곡학아세 식 비판, 인격 모독 등 입에 담기 부끄러운 막말들만 난무합니다. 나라 생각, 국민 생각을 하는 정책이나 철학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잘 띄지 않습니다.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악을 쓰는지, 가늠할 수 있는 관념과 소신은 무엇인지 짐작이 되지 않습니다.

400여 년 전 중국 명나라 말 여곤(呂坤 1536~1618, 유학자·정치인)이 남긴 책 <신음어(呻吟語)>의 한 토막을 읽어 보면 입이 좀 조용해질까요?

目不容一塵(목불용일진)

齒不容一芥(치불용일개)

非我固有也(비아고유야)]

눈에 티 하나 들어가도 견딜 수 없고 이에 찌꺼기 하나 끼어도 참지 못한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0년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사람의 도리를 적시한 책을 쓴 여곤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음 속에 수많은 가시를 지니고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자신에게는 너그럽고, 남에게는 엄격하다 못해 적대적인 인간의 경망하고 간사스러움을 나무라는 경종입니다.

그래도 악화(惡話)로 양화(良話)를 몰아내는 일에 앞장서겠습니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홍묵 촌철] 경북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 前한국일보-동아일보 / 前대구방송 서울지사장 / 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 내외뉴스통신 객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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