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영순,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운동 지도강사로 활동중...논술학원 청주시지부장·원장 역임
- 최준 시인 "물로 흐르는 시간, 나무로 뿌리내린 삶"으로 응축

나영순 시인. 사진=nbnDB

[내외뉴스통신] 원종성 기자

"폭염속 숲의 새들은 그대를 위해 허공에 노래를 날리고, 강렬한 태양은 그대를 위해 한줄기 빛을 내리네, 꽃다운 시를 지어 한세상 품에 안겨주니 유유히 흐르는 물길에 길이길이 전하리"

희로애락의 삶은 그다지 달콤하지 않다. 그래서 인생은 시를 낳는다. 이름 하여 서사시다. 생로병사의 삶 또한 그다지 녹록치 않다. 그래서 글은 향기를 낳는다. 서정시다. 서사를 서정으로 녹여 일상의 어둔 생멸을 채록하는가 하면, 30여년 넘게 독서문화운동을 펼치고 있는 ‘영원한 문학소녀’ 나영순 시인이 시집 ‘맹물은 뜨겁다’(출판사 현대시·한국문연)를 펴냈다. 시집 ‘쥐코밥상’에 이어 10년만의 세상 나들이다.

나 시인은 그간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독서와 독서인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했다. 청주 기적의 도서관 건립추진위원, 김득신 시비(詩碑) 건립위원, 청주시 1인1책 펴내기 운동 지도강사, 증평군립도서관 추진 건립위원 및 운영위원이라는 궤적이 삶으로 점철된다.

아울러 쉼 없는 창작을 통해 여러 문집과 작품을 발간하기도 했다. 나 시인이 생각하는 문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다.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보고 느끼는 자아의 산물이라는 견해다. 이 객체들은 국가, 지구, 이념 등으로 무한증식하며 생각을 만들어낸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他者)와의 다름을 찾는 행위라고도 볼 수 있다. 나 시인은 "문학작품에서 발견하는 공감도 ‘다름’을 전제로 가질 수 있다"며 "문학은 모두가 같지만, 다름을 확인하는 과정이다"고 말한다.

시인은 책머리에서 천변 미루나무 숲 우듬지 그늘과 까치둥지를 바라보며 지나온 인생을 반추한다. 십 년 만에 새로 짓는 이소(離巢)의 거처처럼 생성과 소멸로 소급될 기억을 소환하는데 이는 몸의 은유(제1부), 층층 봄(제2부), 새의 역사(제3부)를 통해 응축되고 발현된다.

“포트의 물이 끓는다. 딸깍, 전원이 끊기고 수증기가 피어오른다. 아직은 그냥 맹물. 차 한 잔 마시려고 찻상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손잡이에서 포트의 온기가 만져진다. 내 체온보다 한결 더 높게 단 한 번 끓어오른 물. 아직은 투명하고 어떤 빛깔과도 섞이지 않은 저 말간, 머지않아 몸 안으로 스며들어 내 식은 피를 덥히고 숨을 고르고 그러고는 다시 떠날 기나긴 여정, 맹물이 뜨겁다. 생이 아직 식지 않았다고 드러난 바닥이 내게 뜨거운 숨소리로 말을 건넨다.” 詩 ‘맹물은 뜨겁다’

강원도 정선이 배출한, 시상의 한복판에 서있는 최준 시인은 ‘물로 흐르는 시간, 나무로 뿌리내린 삶’이라는 응축된 타이틀로 나 시인의 시세계를 표현한다. ‘맹물은 뜨겁다’는 어제를 성찰하고 내일을 구축하는 ‘시간’을 내밀하게 탐구해 낸 ‘시간’ 관찰기다.

자신의 경험을 주춧돌로 한 시인의 상상력은 추상과 구상의 경계지점에서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는데, 구상이 아닌 추상일지라도 결국에는 우리 삶의 자장 안으로 자연스레 스며드는 묘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시인의 의식은 같은 시간대를 더불어 살아온 공통의 발걸음으로 확산, 확대된다.

시가 지식이 아닌 감성의 산물임을 감안할 때, 시인이 지닌 감성은 대상을 껴안아 자신에게로 끌어들이는 자기력과 같은 견인차 역할을 한다. 소통이란 어쩌면 언어 이전의 원초적인 감각일지도 모른다. ‘느낌’을 담고 있는 시들을 만나기가 어려운 이즈음 시인의 시편들은 잃어버린 우리 감성의 영역을 흔들어 일깨워준다.

나 시인의 상상력은 독특하다. 시인은 인류 탄생 이전부터 존재했던, 날개를 갖고 허공을 활주하는 ‘새’를 빌어 현실의 시간대를 무한 확장한다. 상상력의 영역이 ‘허공’에 이르러 ‘시간’을 무화시킨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시인의 시가 놓여 있다. ‘아프리카는 아직도 지구인가’라는 시인의 반문은 오래도록 지속되고 있는 아프리카의 전쟁과 기아가 마치 지구 밖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세계로부터 소외된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생시는 영원하지 않다고 말한다. 시인은 태어나기 전이나 죽음 이후가 아닌 현생을 응시한다. 생전은 기억 너머에 있고, 사후는 종교에나 있다. 시인이 삶에 천착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죽음은 겪어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고, 전생은 기억에 없으니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단정이다. 종교적 입장에서 보면 이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아무도 죽음 이후를 말할 수 없는 게 사실이 아닌가. 이러한 생의 인식을 보여주는 시가 시집의 모두(冒頭)를 장식하고 있다.

‘난 나무가 아니야. 풀도 아니야’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단정적인 고백에는 ‘오늘도 없는 것만 같다’는 부재의식이 내재돼 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어떨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치열한 성찰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행간에 접힌 부챗살을 펼쳐 보면 이렇다. 시인은 ‘오늘’의 자신을 성찰하지만 정작 오늘은 ‘어제’를 지나온 시간이다. 그리고 어제는 이미 지나온 시간이기에 나에게 다시는 없을 불변의 과거가 된다. ‘어제의 나는 과연 오늘도 어제의 나인가’라고 되묻는 이유다. 시(詩)들은 ‘나’라는 화자를 중심에 들여놓는 대신에 ‘오늘’과 ‘어제’를 기록한다. 내일이 올지, 아니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한 생명이 아직은 살아 있다는 아픈 자각. 시간과 시절을 뛰어넘는 깨달음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우주’로 확장된다. ‘아득함, 너머의 아득함/시간, 너머의 시간’으로 무한 여행을 떠난다.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지만 수백 광년의 거리에서 별빛으로 ‘글썽이고 있는 너’를 언젠가는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은 별과 시선을 맞추는 화자의 순수한 소망을 읽을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이처럼 동화적 상상력은 시인이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특장이다. 꿈을 지닌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이 한결 더 소중해지는 이유다.

‘맹물은 뜨겁다’는 논제는 뜨거움과 차가움의 여정 속에서 결코 식지 않을 임계점을 뜻한다. 어쩌면 반어법일지도 모르는 그 ‘온도’는 가능성이고 곧 희망이고 긍정이다. 물이 몸 안으로 흘러들어 ‘생이 아직 식지 않았다’는 실존적 자각과 이마를 맞댄다. 물이 곧 당신이 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청자(聽者)에게 ‘나의 생과 당신의 생은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같은가’라고 본질적인 화두를 던진다. 아마도 시인은 아바타 없는 지상에서의 삶을 살아내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깊게 생각해왔을 것 같다.

김명리 시인은 나 시인의 시선을 "낮고 외롭고 멈춰있는 것들을 따라간다"고 압축했다. 시인 스스로도 "내 삶의 배경은 늘 정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속엣 마음을 사물에 걸어 담는 목소리가 간곡하면서도 나직하다. 뙤약볕 속 사보텐처럼, 내상의 고백마저도 묵언에 가까운 시집에는 시적 사유의 근원 쪽으로 귀납되는 울림이 큰 가편들이 수두룩하다.

김영찬 시인은 "겸손한 시인의 손길이 순박한 대자연에 착하게 교감하는 시편들"이라 정리했다.

사진=나영순 시인

여기에 더해 안상학 시인은 “이 시집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는 이미 사라진 존재들을 불러내어 한바탕 살풀이를 펼친다. 자세히 보면 있는 것조차 없는 것처럼 표현하며 능청을 부릴 때 오히려 없는 것이 더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을 통감할 수 있다. 심지어는 오늘의 당신에게 어제를 천연덕스럽게 꺼내 보여준다. 이 시집의 핵심매력”이라고 강평한다. 이는 화자(話者)의 입장에서 생애와 생로병사를 절충하지 않고 직진하는 결벽을 상징하기도 한다.

“우린 문명과 자연의 점이지대에 산다. 문만 열고나서면 태곳적 자연이 펼쳐져있다. 문명보다는 자연 쪽에 정서적 무게추가 더 기울어있다고 생각한다. 맑은 생각의 뿌리를 지닌 아이들도, 벼랑 끝 고독한 나목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중년도, 늙음에 호의적이면서도 늙음을 두려워하는 노년에게도 삶은 고마움의 대상이다. 우리의 내일이 오늘보다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 시인이 고백하듯 내놓는 시풍(詩風)은 ‘더불어’이다. 모두 다른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지만 결국은 하나의 종점을 향해 가는 비슷한 여정이라는 것이다. ‘나’보다는 ‘이웃’을 생각하며 살고 싶다는 그녀는 ‘문명의 뒷길에서 성찰하며 더불어 사는 것이 글의 근원적인 힘’이라고 강조한다.

나 시인의 시집 ‘맹물은 뜨겁다’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일상의 편린을 바라보며 서로를 위로하는 법, 희망을 깨우쳐가는 법을 알려준다. 그것이 소소한 시간의 반복일지라도 누구에게나 살아가야 할 명분과 합리적 사유가 필요함을 시적 언어로 보듬는 것이다.

인간은 하룻밤 새 다섯 번의 꿈을 꾼다고 한다. 평생 14만 6000번의 꿈을 꾸는 셈이다. 때문에 누구나 밤마다 시(詩)를 낳고 꿈을 낳는 몽상가로 살아간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 나 시인의 시(詩)들을 음미하며 상처와 절망, 어둠을 뚫고 결기 가득한 꿈을 꾸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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