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원 교수. 사진=nbn

[내외뉴스통신=한국교육의 백년대계를 말하다] 강갑원 대진대 교수

교육은 흔히 백년 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이 말에는 국가가 국민 교육에 책무감을 가지고 장기적 관점에서 올바른 교육의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교육이 인류 역사 초기부터 등장한 것은 아니다. 그 과정을 역사적 관점에서 간략히 보자. 국가 주도의 교육은 국가 이익과 발전에 기여하는 인간 육성에 궁극적 목적을 둔 국가주의 교육(nationalistic education)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은 크게 개인과 국가의 필요에 의하여 시작되고 유지되어 왔다. 원시시대에는 당연히 생업 위주의 교육이 필요했을 것이다. 국가의 필요에 의한 교육은 일찍이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자유 시민 교육과 스타르타의 군사교육에서 엿볼 수 있다.

개인의 필요와 국가의 필요에 의한 교육은 시대마다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도 진행 중이다. 후자의 성격이 강한 국가주의 교육은 중세 기독교 시기와 문예부흥기에는 미약했지만 나폴레옹의 침략주의에 대항하기 위하여 19세기에 와서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고, 20세기에 이르러서는 민족적 국가주의 경향으로 나타난다. 나치 독일과 일본의 부국강병 교육이 대표적이다. 

애초 교육은 생업에 직접 도움이 되는 활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생업에 쪼들리는 계층은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사회·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귀족이나 왕족과 같은 지배층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다. 이들 계층은 가정 교사를 고용하여 자녀 교육을 시켰는데, 노예 중에서 지식이 있는 사람을 가정 교사로 삼았다. 이들을 페다고그(pedagogue)라고 한다. 교육학이라는 페다고기(pedagogy)가 여기서 유래되었다.

학교라는 영어의 School도 고대 그리스어 숄레(schole)를 라틴어로 스콜라(schola)로 표기한 것에 기원하고 있다. 숄레는 ‘한가하다’는 뜻이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는 한가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서 토론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였고 교육은 한가한 여유있는 계층의 사람들이나 하는 활동이었다.  

교육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목적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와 초기 로마는 공화 정치 형태를 취하였기 때문에 정치적 출세를 원하는 사람은 대중의 지지를 받는데 유용한 웅변 교육이 필요로 했다. 특히 로마 공화정 시기에는 민회가 있어서 평민도 정치 참여를 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중세 초기에는 왕족을 위한 궁정 학교가 있었고, 영주를 지키기 위한 기사교육, 그러면서도 오늘날 인문계 고등학교와 같은 문법학교(grammar school)가 있었다. 오랜 십자군 전쟁이 있었던 시기에는 동서 간의 무역이 성행하였고, 이때부터 상공업에 종사하여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 계층이 나타났고, 이들은 종전의 교양 인문 중심의 교육과는 다른 직업 교육에 대한 요구가 있었다. 직업 조합인 길드(Guild)가 운영하는 도제식 직업 훈련이 그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도 요식업이나 수공예 등의 분야에서 간간이 이어져 오고 있다.

12세기에 와서는 학생들(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과 교수(파리대학)가 스스로 조합을 구성하여 대학을 설립하고 운영하였다. 조합이 대학을 자치적으로 운영하였으며 그 전통은 아직도 오늘날 대학에서는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에는 대학 내에서 스스로 재판까지 할 정도였다.

오늘날과 같은 국가 주도의 대학은 1810년 독일의 베를린 대학이 최초이다. 중세를 관통하는 지배적 교육은 역시 교회 주도의 교육이었다. 주로 성경 교육, 성직자 교육, 교리 교사 양성을 위주였다(물론 기초적 학문 교육도 함). 

국가가 교육에 전면에 나서게 된 계기를 제공한 것은 종교개혁 운동이다. 성직자들의 부패의 원천은 신자가 성직자를 통해서만이 신앙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성경이 라틴어로 기술되어 있었기 때문에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인들은 성직자의 중개를 통해서만이 교리에 접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종교개혁기에는 각국에서 성경을 모국어로 번역하고, 초등 교육은 모국어 교육에 주력하였다.

특히 종교개혁가 루터는 국가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국가 주도의 학교 교육은 인본주의적이고 자연주의적 세속적 세계관을 형성하여 탈종교적 세속사회를 건설하는 데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 종교개혁기를 거치면서 교육에 대한 책무가 국가에 있음이 분명해진 셈이다.          

프랑스 혁명을 전후로 여러 사상가들이 비종교적 국민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공교육(public education) 개념이 대두된다. 공교육은 국가나 지방교육 당국이 학교를 설립, 운영, 관리하는 교육이다. 그러나 당시 대다수의 국가는 실질적 공교육을 할 정도의 재원은 없었다. 실질적 공교육이 구현된 것은 독일에서 의무교육이 시행되면서부터이다. 당시 독일의 수상 피히테가 주창한 국가주의 교육이 대중의 지지를 받았고, 공립학교 교육국 초대 국장 훔볼트가 본격적으로 공교육을 발전시킨다. 미국도 프랑스의 자유 사상의 영향을 받은 건국 원로들의 영향에 힘입어 공교육이 발달한다.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호레이스 만과 버나드 등과 같은 교육개혁가의 노력으로 미국의 공립학교 제도가 크게 발전한다. 

한국의 교육은 유럽처럼 격변을 통해 변천한 것은 아니지만 일부 유사한 점이 있다. 민간 주도 교육과 관 주도 교육이 병존한 것은 유럽과 유사하다. 고구려(태학), 신라(국학), 고려(국자감, 5부학당, 향교 등)가 각각 관 주도 교육을 하면서도 경당(고구려), 화랑도(신라), 서당과 서원(고려말과 조선)과 같은 민간 주도 교육도 함께 이루어졌다.

구한말에 와서는 민족 선각자나 기독교계 선교사들이 설립한 사학 설립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당시 설립된 학교 중 일부는 여전히 명문 사학으로 남아 있다. 고려대, 이화여대 등이 민족 선각자들이 설립한 대학이고 숭실대와 연세대는 선교사가, 숙명여대는 이조 황실(고종의 엄귀비)에서 각각 설립한 대학이다.

구한말에 국립대학 격인 성균관은 갑오개혁 이후 신 학제에 따라 잠시 3년제 경학과를 설치하여 운영되었으나, 일제가 강점하면서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개편하면서 문묘 기능만 남기고 교육 기능을 없애버렸다. 고려 때부터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오던 국립대학의 명맥은 그렇게 끊어졌다.

광복 후인 1946년 성균관의 정통을 계승하기 위하여 대학 설립을 위한 민간 조직이 구성되었고, 독지가 이석구가 토지를 희사하면서 그해 9월에 단과대학 성균관 대학이 설립되고, 1953년에 사립 종합대학으로 승격된다. 이렇게 국립대학 성균관은 사립대학으로 바뀐다.     

다른 한편 1920년대 초 독립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사립대학 추진 운동이 벌어진다. 일제는 이 운동을 탄압하고 식민 통치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맞대응 차원에서 경성 제국대학을 설립한다. 광복 후에는 경성대학으로 개명하였으나 미 군정이 이를 폐교하고 대신 1946년에  경성제국대학과 서울에 있던 9개 전문학교를 통합하여 서울대학교를 설립한다. 서울대학교가 경성제국대학의 본부를 본관으로 사용하고 일부 건물도 그대로 사용하면서 서울대학교와 경성제국 대학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우리나라 대표 국립대학교 격인 성균관이 국립대학으로 계승되지 못한 점은 우리에게 영원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유럽이나 한국을 막론하고 민간 주도의 교육이 선도적이었고, 사학이 교육에 기여한 바가 자못 컸다. 그러나 격변의 시기에는 국가가 나서서 교육을 주도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이라는 격변의 시기에 민간 사학이 나섰다. 많은 민족 선각자들이 설립한 사학은 민족 애국 운동 정신 고취에 앞장 선 반면 국가는 무력했다.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는 분명 사학은 한계가 있다.

오늘날은 어떤가? 국가간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경쟁은 여전하다. 국가 주도 교육의 필요는 진행형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처럼 국가의 흥망성쇠가 훌륭한 인재 양성에 의존하고 있는 처지의 국가는 그 교육의 책무는 더욱 크다. 오늘의 한국이 있기까지에는 우리 민족의 교육열이 있었기 때문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조금 경제적으로 나아졌다고 해서 우리는 혹시 인재 양성에 무감각하거나 낙관적으로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다시는 구한말과 같이 국가가 교육에 무력했던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백년 대계로서의 교육은 국가의 몫이다. 지금 우리의 교육의 백년 대계는 무엇인가? 현재와 같은 평등지상주의 교육 이념은 문제가 없나? 유행을 좇지 않고 교육 본연에 충실한 교육을 하고 있나? 그동안 완전학습, 자기 주도적 학습, 예비고사, 본고사, 수행평가, 수시모집, 사회봉사, 졸업정원제 등 수 없는 새로운 교육시도를 해 왔지만 왠지 유행으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정권이 바뀌고 교육의 수장이 바뀔 때마다 널뛰기하듯 하는 교육은 백년 대계의 교육과는 거리가 멀다.

갈수록 국가 간의 지식 재산권 보호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수한 인재 양성만이 답이다. 소수의 인재가 국민을 먹여 살리는 시대이다. 지금 널리 퍼져 있는 평등 교육 이념, 학생의 학습 부담을 줄여준다는 감성적 핑계로 초래된 교육 누수와 학습 누수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땜질식 교육 문제 해결이 아닌 근본적 교육의 틀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과거의 어느 시대 못지 않은 격변기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파고가 앞에 있다. 어떤 정치적 논리나 이념의 논리가 개입되지 않은 순수 교육 본연의 입장에서 한국 교육의 백년대계를 재검토 해보자.  

 kangkab@daejin.ac.kr

<강갑원 교수> 

중앙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교육심리학)
대진대학교 교육대학원장(역) 
대진대학교 국제교류협력대학장(하얼빈캠퍼스)(역)
대진대학교 교원연수원장(역)
한국영재교육학회장(역)
대진대학교 명예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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