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초입의 분주한 일상을 피해 휴가랍시고 책 몇 권 배낭에 넣고 무턱대고 찾아온 이곳, 치악산 금대리 계곡. 아마도 이곳을 향한 평소의 그리움이 내 발을 나도 모르게 쫄래쫄래 끌어서 왔는지. 내 지기의 집 뒤에 계곡물이 떨어지고 앞으로는 속내를 알 수 없는 긴 강이 흐른다.


상쾌한 아침. 창 밖으로 들리는 물소리에 일찌감치 눈이 떠진다. 아, 아침의 설렘이 실로 얼마 만이던가. 잠에서 깸과 함께 늘 벅찬 가슴으로 열던 그 젊은 날의 여느 아침처럼 다시 맛보지 못할 것 같던 그런 설레는 아침을 잠시 만나게 해준 것이 역시 물이었다.


과거를 거슬러 물처럼 살고 싶다던 소망이 있었다. 물을 닮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주어진 길을 따라 천진한 모양새로 신나게 흐르는 물은 섭리에 순종하는 착한 성자 같았다. 흐르기에 고이지 않아 늘 새롭게 태어나는 물은 가슴에 쌓아두는 나의 용렬함을 부끄럽게 했었다. 고임이 없는 마음으로 살라고 매일 태어나라고 말없이 조용히 가르치고 있었기에.


예기치 않던 가파른 길을 만나면 쭈뼛거림 없이 몸을 던지는 물의 용기로 세상을 헤치고 싶었다. 갈 길을 다한 곳에선 큰 물을 이루려 제 모습 흔적 없이 섞여버리는 물, 버리고 난 후 더 크게 태어남을 믿는 물의 신앙이 정말이지 외경스러웠다.


초년시절, 모여드는 어떤 물도 무조건 받아 안고 그러면서도 절대 넘치는 일이 없는 바닷물의 관용이 숭고하여 많은 시간을 바라보고는, 감히 그것을 닮고 싶어하던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소망은 간절한 기원이 돼 간다.


물에 종일 던져진 나는 조금이나마 물을 닮아가고 있다는 자기도취에 빠진다. 약삭빠른 생각으로 어수선했던 것들, 뭔가 뒤처진 것 같은 비교와 열등의식으로 불안하고 조바심 쳐지던 마음, 별 의식 없이 던진 상대방의 언행에 내 마음을 스스로 할퀴어 상처를 내던 소심함들, 세상 것들 잠시 빌려 쓰다가 되돌려 주어야 함을 망각한 채 내 것이라고 놓치지 않으려 잡고 있던 손아귀의 부질없음, 이런 것들이 무슨 대단한 것들이라고 안고 이곳에 왔었는가 하며 또 나를 물에 던진다.


일찍이 노자가 물의 위대함과 소중함을 일깨운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고 한 말처럼 물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내 어찌 잊고 살았더란 말인가.


얼마 전 ‘물과 같은 지도자를 원한다’란 제하의 언론기고를 통해 ‘한없이 약하고 부드럽지만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기는데 물보다 나은 것이 없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함을 갖고 있으며, 장애가 있더라도 거스르지 않고 비켜가고 둑을 만나면 고여 넘칠 때까지 기다리며 그 안에 큰 힘을 만들어 간다’ 하고.


‘물은 또한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게 되는 적응력과 융화심을 일깨워준다. 만물에 혜택을 주면서도 결코 상대를 내치지 않는 게 물’이라며 ‘힘은 있으되 몸을 낮추어 겸허하며 포용력과 양보의 미덕을 함께 겸비하고 있는 물처럼 살라’고 우리 사회 저변의 지도자들에게 일침을 놓았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언행일치를 하지 못하고 살아왔음 에야.


가을이 뱉어낸 무요와 겨울의 시린 정적 때문에 이 계절 더욱 겉돌아 스스로 맘 닫아 걸고 못난 모습으로 떠밀려 찾아온 이 곳, 다시 또 만난 물의 행렬이 삶의 무게로 짓눌리고 찌들려 있는 내 중년의 모습을 시나브로 원숙한 향기로 아름답게 변신시켰으면 좋으련만.


이곳 탁 트인 금대리 계곡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든 아니면 숨막히는 도시의 콘크리트 벽 속에서 맞이하는 아침이든 이젠 항상 눈 뜨면 '오늘도 물처럼 살게 하소서' 하리라.

<박청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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