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내외뉴스통신] 김흥두 기자 = 최근 대한민국 의전 서열 2위인 정의화 국회의장이 샌드위치 신세다.
19대 국회가 회기를 얼마 안 남기고 여야 지도부가 선거구 획정, 경제·노동 관련 쟁점 법안을 놓고 벼락치기 숙제를 하고 있지만 진도가 도무지 나가지 않고 있다.
직접 중재도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자 점점 직권상정으로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여당은 정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지 않는다고 원망하고 있고 야당은 직권상정을 하면 가만 안두겠다고 벼르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친정인 여당에서 원망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나오고 있다.
마침내 정 의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경제·노동 관련 법안의 직권 상정은 법적으로 못한다는 입장인 반면 선거구 획정은 직권상정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청와대와 국회의장 간 '입법전쟁'이 터졌다.
정 의장이 이런 입장을 밝힌 배경에는 국회 선진화법이 있다.
여야가 합의해 19대 국회부터 적용되고 있는 국회 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실제 국회법 85조에는 직권상정을 △천재지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와 합의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이것도 각 교섭단체대표와 협의해서 정하게 돼 있다.
정 의장은 경제·노동 관련 법안의 경우 현 경제상황이 국가 비상사태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선거구 인구 편차를 2대 1로 조정하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내년 1월 1일이면 현행 선거구는 법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기 때문에 그전까지 선거구를 결정하지 못하면 선거를 앞두고 혼란은 불가피해진다.
이런 상황을 정 의장은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받는 '입법 비상사태'라고 보고 직권 상정의 조건이 된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2012년 4월 정의화 당시 국회의장 직무 대행이 기자회견을 한 바로 그 장소에서 국회 선전화법 반대 의견을 발표했다.
이른바 날치기를 못하게 하기 위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고 그 대체로 의안신속처리제를 도입하기 위해 3/5 이상 의원의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은 결국 국회를 마비시킬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현 상황이 정 의장의 주장대로 가고 있다고 확정지어 말할 수는 없다. 상당수 법안이 여야 협상을 통해 통과되고 있고 입법기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쟁점 법안의 처리는 전보다 훨씬 어려워진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제는 국회에서 찾아보기도 힘든 직권상정을 해달라고 국회의장에게 요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런 의원 대다수가 국회의장 자신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 선진화법에 동의했던 의원들이다.
국회선전화법은 이미 국회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법체계가 된지 오래다.
여당 입장에서는 일단 직권상정만 하면 의석 과반을 차지하고 있어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정 의장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여당 의원 전원 명의로 ‘직권상정 요구 결의문’을 들고 찾아가 정 의장을 압박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이제 남은 방법은 두 가지다. 야당이 원하는 걸 줘서 협상을 진전시키거나 대통령 긴급명령을 발동하는 것이다. 긴급명령은 자치 선거를 앞두고 큰 악재가 될 수도 있어 청와대도 긴급 명령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것은 협상뿐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도 여야는 지금보다 훨씬 진지한 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 더 이상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비상사태'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이다.
khd@nbnnews.co.kr

내외뉴스통신, NBNNEWS

기사 URL : http://www.nb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328

저작권자 © 내외뉴스통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