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묵 칼럼니스트. 사진=nbnDB
김홍묵 칼럼니스트. 사진=nbnDB

[내외뉴스통신] 김홍묵 칼럼니스트

-전 국민에게 매년 1억 원씩 생활비를 주는 나라.

-도로 위에 포르쉐·람보르기니가 널린 나라.

-개인도 자가용 비행기로 해외 쇼핑을 하는 나라.

-주거·교육·의료·출산 비용 모두가 공짜인 나라.

-세금이 한 푼도 없는 나라.

1970~80년대 남서태평양 호주 동북쪽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Nauru)공화국의 좌표입니다. 여의도 2배 크기(21평방km)에 인구 1만여 명이 사는 지상낙원이었습니다.

수백만 년 동안 철새(알바트로스) 분비물이 쌓여 온 ‘새똥 나라’ 나우루 섬은 새똥이 산호초와 결합하여 인광석 섬이 되었습니다. 1968년 1월 독립 이후 자연산 비료(인산염) 또는 공산품 원료로 서구 열강이 인광석을 다투어 사가는 바람에 국민소득 2만 달러(당시 한국 1,088달러, 일본 9,834달러)가 넘는 부자나라가 됐습니다.

정부의 공평분배 정책으로 국민은 일을 않고, 광부·공무원이 할 일을 모두 외국인 노동자(가족 동반 허용, 주거·식비 무료 제공)에게 맡겼습니다. 집집마다 정부가 제공하는 집사와 가정부를 두었습니다.

# 술 마시러 자가용 비행기로 이웃나라 가는 호사

아무 일을 하지 않고도 풍요를 누리게 된 국민은 아낌없이 소비하고 놀면서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이 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자기기, 요트를 사들이고, 축제 땐 달러를 휴지로 썼습니다. 6~7대의 외제 고급차를 보유한 부자들은 '3보 이상 승차' 습관으로 20분 걸리는 섬 일주도로(18km) 드라이브를 낙으로 삼았고, 차가 고장 나면 그 자리에 버렸습니다.

국영 에어나우루는 승객 한두 명만 태우고도 남태평양 전역을 취항했습니다. 하와이·싱가포르에 쇼핑하러 가거나, 술 한 잔 하러 호주까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갔습니다. ‘흥청망청’이었습니다.

가진 거라곤 돈밖에 없는 정부·관리들도 무차별 해외투자를 일삼았습니다. 대통령은 1977년 호주 멜버른에 183m 높이의 나우루 하우스라는 개인 빌딩을 짓고 맨 꼭대기 층에 집무실을 두었습니다. 정부는 수천만~수억 달러를 주고 시드니와 멜버른의 호텔·병원·양조장을 사들이는가 하면, 미식축구(불독) 팀을 창단하기도 했습니다. 해외 투자로 정부 예산 수천만 달러가 증발돼도 시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돈이 떨어지면 정부에 손을 내밀면 현금을 주는 천국이었으니까.

그 나우루의 부귀영화는 30년도 안 돼 무너졌습니다. 질소비료가 등장하고 2003년부터 인광석이 고갈되면서 가난의 그림자가 덮쳤습니다. 소득은 10분의1로 줄고, 무리한 채석으로 산림이 없어진 섬의 고도가 점차 낮아져 섬 자체가 수몰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먹고 놀기만 한 성인의 90%가 비만·당뇨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난해진 국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을 새로 하려 해도 해변엔 어선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청소나 요리법도 잊어버렸습니다. 일하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그들에겐 게으름과 무기력만 남았습니다.

# 다음 세대엔 약으로 쓸 개똥도 없는 최빈국 추락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좌석 10%도 못 채우던 항공사, 수입 생필품을 실어오던 해운사, 돈으로 국적을 산 마피아·테러리스트들이 운영하던 은행도 돈세탁 혐의로 강대국들이 제재를 받고 파산해 문을 닫았습니다.

길거리엔 기름 값이 없어 버려진 차들이 널브러져 있고, 10년 전만 해도 정부가 무상급식을 해주겠다고 하면 “우리 애가 거지냐?”고 반발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손을 벌린다고 합니다. 파티는 끝났지만 남은 쓰레기를 치울 사람도 어떻게 치우는지 아는 사람도 없는 최빈국이 되었습니다. 전통문화도 사라졌습니다.

제국주의 시대 섬을 지배했던 영국·독일이 손을 떼고, 한때 섬을 점령했던 일본의 관광객도 발이 끊겼습니다. 조세 피난처, 마약 거래도 손을 댔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해외 부동산을 헐값에 팔아치웠으나 빚을 갚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2000년대 초 호주 정부가 난민(중동, 남아시아로부터 밀려오는 보트피플) 수용소를 지은 대가로 주는 지원금이 유일한 생명줄입니다. 그 난민수용소조차 폭동을 일으키는 또 다른 지옥도입니다.

석유·가스는 고사하고 내다 팔 새똥도 희토류(稀土類)도 없는 한국으로선 ‘바다 건너 불’이 아닙니다. 19세기 구아노(guano; 새똥비료)로 벼락부자가 되었다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지금은 철새보호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페루나 칠레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의 호강만 누리며 다음 세대의 삶을 망각한 정치는 정치가 아닙니다. 준비가 없는 젊은이들에겐 약으로 쓸 개똥도 없습니다.

[김홍묵 촌철]
경북고-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前한국일보-동아일보 기자
前대구방송 서울지사장
現자유칼럼그룹 공동대표
現내외뉴스통신 객원칼럼니스트
bamboo997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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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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